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왼쪽)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 메이리드 맥기네스 EU 금융안정·금융서비스 및 자본시장연합 집행위원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지속가능한 금융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왼쪽)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 메이리드 맥기네스 EU 금융안정·금융서비스 및 자본시장연합 집행위원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지속가능한 금융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뉴스1

‘No one left behind(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2015년 제70차 유엔(UN) 총회. 한자리에 모인 전 세계 192개 회원국 대표들은 2016년에서 2030년까지 15년 동안 유엔이 추진할 새로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로 ‘포용적 금융(Financial Inclusion)’을 꼽으며 이렇게 선언했다. 2022년은 딱 그 중간 지점에 서 있는 해다.

포용적 금융이라는 단어는 다소 낯설다. 그러나 그 원류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결국 제도권 금융에서는 돈을 빌릴 수 없는 빈민들을 위한 소액 금융과 맞닿는다. 7년 전 유엔이 다가올 15년간 중요 과제로 꼽았던 포용적 금융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수치를 보면 그동안 글로벌 금융산업은 공익성이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세계에서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백만장자는 지난해 5610만 명을 기록했다. 성인 인구 대비 백만장자 비율은 처음으로 1%를 넘어섰다. 

동시에 1일 생활비 1.9달러(약 2300원) 이하로 살아가는 극빈층 역시 백만장자 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특히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극빈층은 약 1억1400만 명이 증가한 7억2900만 명으로 조사됐다. 조사 이래 극빈층이 가장 많이 증가한 해였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확산 이후 서민 중심 금융의 중요성은 다시 부각되고 있다. 다가오는 20대 대선에서도 포용적 금융은 주요 쟁점으로 올라섰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우리보다 먼저 포용적 금융을 실시한 금융 선진국 사례를 참조해 관련 정책을 속도감 있게 내놨다. 이들이 참조한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에서는 20세기 중후반 이후 완성된 형태의 포용적 금융 관련 사업이 자리를 잡았다. 아직 국내에서는 미소금융(저신용·저소득층 대상 소액 대출) 사업조차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던 때다.


미국의 ‘커뮤니티 금융’ 지역 중심 형성 

미국은 신자유주의로 빈부 격차가 심해지자 1970년대 이후 도시 재건과 금융 소외계층 지원을 위한 ‘커뮤니티 금융’을 강화했다. 여느 국가들보다 주(州)와 도시별 행정 자립도가 높고, 절대적인 국토 면적도 넓어 제도권 금융으로만 빈부 격차 문제를 다루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중부 켄터키나 오하이오, 아이다호, 테네시처럼 인적이 드문 농업 지대에서는 제도권 금융기관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돈을 빌리려면 오로지 전당포와 사채업자들을 찾아가는 방법뿐이었다. 사람들은 돈을 맡길 곳이 없어서 침대 밑에 숨기는 등 집 안에 현금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강도들의 침입으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지역사회 리더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알음알음 돈을 모아 신용협동조합 형태로 커뮤니티 금융을 시작했다. 이때 생긴 신용협동조합은 지금도 미국 내 포용적 금융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자생적으로 발달한 커뮤니티 금융이 도시 재생의 불씨를 살리자, 1990년대 중반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지역사회의 사회·경제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커뮤니티 개발금융기관(CDFI·Community Development Financial Institution)’을 지원하는 CDFI 펀드를 설립했다.

마을 단위 조합과 주요 은행, 정부를 포함해 미국 내 1000여 개 금융기관이 참여한 이 펀드는 정부 출연금만 1000억달러(약 119조원)에 달했다. 사실상 미국 전역에 걸친 공공 금융기관 역할을 하나의 큰 펀드가 대신한 셈이다.

서민금융진흥원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미국 내에서 유동성이 대거 풀렸지만, 여전히 서민층이나 중소기업의 자금 수요가 매우 높은 데 비하면 신용이나 담보 여력이 없는 자금 수요자에게 제공하는 기존 금융 서비스의 한계치가 분명하다”며 “CDFI는 이런 기존 은행을 대신해 지역사회에서 행정기관과 상호작용을 하거나, 일부 분야에서는 행정기관을 대신하면서 공동체의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 일본의 사물인터넷 서비스 스타트업 베이컨은 2016년 설립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일본정책금융공고(JFC)의 지원을 받아 개발 자금 조달과 서비스 확장에 성공했다. 사진 베이컨  2 164년 역사를 자랑하는 스페인 대표은행 BBVA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대두되는 금융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대규모 지속가능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 로이터뉴스1
1 일본의 사물인터넷 서비스 스타트업 베이컨은 2016년 설립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일본정책금융공고(JFC)의 지원을 받아 개발 자금 조달과 서비스 확장에 성공했다. 사진 베이컨
2 164년 역사를 자랑하는 스페인 대표은행 BBVA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대두되는 금융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대규모 지속가능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 로이터뉴스1

EU·일본, 정부 차원에서 포용적 금융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같은 유럽 각국은 일찍부터 고용 유지, 지역 경제 활성화 같은 사회 가치를 실현하면서 포용적 금융에 눈을 떴다. 

개별 국가가 아닌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포용적 금융에 손을 뻗은 시점은 2010년이다. 이 해 EU는 ‘유럽 2020 전략’을 발표하고 ‘스마트하고 지속가능한 포용적 성장(smart, sustainable and inclusive growth)’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2020년 2000만 명 빈곤 탈출, 20~64세 인구 75% 고용’을 목표로 내걸었다.

EU는 ‘프로그레스 마이크로파이낸스(Pro-gress Microfinance)’라는 이름으로 유럽위원회(EC·European Commission)와 유럽투자은행(EIB·European Investment Bank)에서 각각 1억유로씩(약 1388억원) 지원을 받아 총 2억유로(약 2776억원)를 밑천으로 포용적 금융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여러 정책 금융기관을 합쳐 만든 일본정책금융공고(JFC)가 소상공인·자영업자·중소기업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JFC는 지난 2008년 기존 서민, 소상공인, 농어민 대상 정책 금융 기관들이 합쳐져 출범했다. 서민·자영업자 대상 국민생활사업본부, 농어민 대상 농립수산사업본부, 중소기업 대상 중소기업사업본부로 각각 구성됐다.

JFC는 일본 정부로부터 직접 차입하는 재정융자, 자체 채권 발행, 정부 출자금 등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단순히 돈을 빌려줄 뿐만 아니라 재무 구조 개선, 판로 개척, 경영 컨설팅부터 가업 승계나 매각까지 지원한다. 채무 보증 등도 주요 사업에 속한다.

JFC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2020년 1월부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저리 특별 대출을 시행하고 있다. 다나카 이치호(田中一穂) JFC 총재는 “JFC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재해나 경영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민간 금융기관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며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라고 말했다.

유진우·허지윤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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