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법무법인 태평양
사진 법무법인 태평양

온라인 게임 산업이 성장하고 위상도 커졌지만,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우고 있다. 게임을 좀먹는 기생충으로 표현되는 불법 사설 서버가 대표적이다. 사설 서버는 저작권을 가진 개발사의 동의 없이 게임을 복제해 개인이 별도로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게임사들은 사실상 사설 서버를 못 본 체했다. 운영자들의 신원을 파악하기도 힘들뿐더러 사설 서버로 인한 게임사의 손해를 법정에서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운영자를 찾아내더라도 주로 대포통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손해를 배상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에서 불법 사설 서버의 운영이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국내 토종 게임의 대표 주자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바람의나라’ 사설 서버 운영자들에 대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법원은 2021년 12월 “넥슨코리아(이하 넥슨)에 수억원의 손해를 배상하고, 서버를 폐기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에서 사설 서버 운영자들은 10여 명의 변호인단을 꾸려 대응했다.

사설 서버는 정식 서버와 달리 유료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일종의 후원금을 받고 희귀 아이템의 획득 확률을 높이거나, 게임 머니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사설 서버를 운영하는 인물들은 홍보책·개발책·자금책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게임 업계는 불법 사설 서버로 인해 연간 1600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고 있다.

온라인 게임 ‘바람의나라’ 서버 초기 화면(왼쪽)과 사설 서버 초기 화면. 사진 법무법인 태평양
온라인 게임 ‘바람의나라’ 서버 초기 화면(왼쪽)과 사설 서버 초기 화면. 사진 법무법인 태평양

바람의나라 사설 서버를 만든 운영자들도 업무를 분업화했다. A씨는 2017년부터 전국 각지의 PC방에서 바람의나라 사설 서버 클라이언트를 자신들이 운영하던 사이트에 올려 유저를 모집했다. B씨는 게임 머니인 ‘말보루’를 유저들에게 판매한 뒤 그 돈의 일부를 C씨와 D씨의 계좌로 받았다. 이들은 자금 흐름 추적을 피하기 위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이용하거나, 암호화폐 입금 또는 문화상품권 PIN 번호를 전송받는 방식을 사용했다.

사설 서버가 활개를 치자 넥슨은 태평양을 선임해 2018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이듬해 11월 운영자 3명을 검거한 뒤 게임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했고, 법원은 이들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 300만원,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이후 넥슨은 2020년 12월 A씨 등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정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넥슨은 “A씨 등은 저작권자인 자신들로부터 사용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바람의나라와 유사한 게임을 불특정 다수의 게임 이용자에게 복제·전송·배포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A씨와 B씨는 사설 서버 운영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맞섰고, 자신의 계좌를 빌려준 C씨와 D씨는 “범죄 행위에 대한 관여도가 매우 낮으며, 실제로 이익을 얻은 바도 없어 손해배상 또는 저작권 침해 정지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태평양은 저작권 침해를 입증하기 위해 불법 사설 서버에 접속해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했다. 변호사들은 바람의나라 본 서버와 사설 서버를 동시에 켜고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유저 보기 화면, 공지 사항 화면 등을 비교 대조하는 방법으로 화면을 캡처해 제출했다.

법원은 운영자들의 저작권 침해 행위와 방조자들의 공동 불법 행위를 전부 인정했다. 재판부는 “바람의나라를 복제·전송·배포하거나 컴퓨터를 통해 실행되는 게임으로 사용할 수 없고, 주소·거소·사무소·영업소 등 서버에 보관 중인 게임을 폐기하라”고 판결했다. 또 운영자들이 공동으로 넥슨에 4억52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했다.


은밀하고 신속하게 움직인 변호사들⋯007 작전 방불케 한 ‘위장 수사’

이번 사건의 핵심은 운영자들의 신원을 특정하고, 그들의 재산을 신속하게 찾아내는 것이었다. 보통 사설 서버 운영자들은 전국 여러 장소에 서버를 두고 게임을 운영하면서 수익도 대포통장을 통해 받거나 암호화폐 등으로 수령한다.

태평양은 먼저 인터넷에서 확인 가능한 정보들을 전부 수집했다. 게이밍에 특화된 음성 채팅 프로그램인 디스코드 아이디(ID), 서버 인터넷 주소(IP), 구글 드라이브 계정, 암호화폐 주소 등을 긁어모았다. 

그다음 운영자와 연관 있어 보이는 정보를 추출하고, 다른 명의로 가입한 것들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 등을 통해 당사자를 추적했다.

이후에는 재산 찾기에 나섰다. 민사 소송에서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내더라도 재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무의미한 판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신원을 특정하고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알아채면 불법적으로 얻은 수익을 세탁할 수 있어 은밀한 움직임이 필요했다.

태평양은 이들이 문화상품권 PIN 번호를 받은 뒤 특정 계좌로 환불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해당 계좌를 추적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다른 사람 명의로 만들어진 대포통장이었다. 이후에도 지급 방식이나 계좌가 수시로 바뀌어 지속적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계좌들을 찾아내야 했다. 가까스로 계좌를 확인했으나 해당 계좌에는 1만~2만원만 남아 있었다.

이때 스파이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위장 수사가 빛을 발했다. 이들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암호화폐 후원을 원하는 유저에게 비공개 링크를 제공했는데, 넥슨과 태평양 변호사들은 실제 후원하는 방식으로 암호화폐 거래 계좌를 확인했다.

운영자들의 계좌를 확보하니 자금 흐름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이 제3의 계좌로 게임 머니 판매비를 입금받아 서로 분배한 금액, 암호화폐로 송금한 내역 등이 일부 발견됐다. 이후 민사소송 단계에서는 금융거래 정보 제출 명령 등을 통해 거미줄처럼 퍼진 수익의 이동 경로를 확인했다. 이들은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두 곳의 계좌로 비트코인을 받았고, 국내 시중 은행을 통해 환전했다.

태평양은 운영자들의 신원이 특정된 이후 임대차보증금 가압류도 바로 진행할 수 있었지만,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법원에서 가압류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 운영자들이 다른 재산을 빼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변호사들은 이들에게서 찾아낼 수 있는 모든 계좌를 확보한 뒤 동시다발적인 가압류를 시도했다.

강태욱(사법연수원 31기) 변호사는 “불법 서버 사건의 특성은 운영자를 제대로 특정하기가 어렵고, 신원을 확정하더라도 이들이 보유한 재산을 확보하는 것이 힘들며, 민사소송을 통해 실질적으로 손해를 보상받는 절차까지 진행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전체적인 전략을 잘 수립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사건 재판은 방조 행위로 공동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 두 명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에 계류 중이다.

김종용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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