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모리 시게노부 나이덱 창업주 겸 회장. 사진 블룸버그
나가모리 시게노부 나이덱 창업주 겸 회장. 사진 블룸버그
이필상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아시아태평양 리서치본부장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이필상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아시아태평양 리서치본부장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우리는 흔히 전기자동차 산업을 배터리만으로 한정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e-파워트레인(구동시스템), 전력반도체, 800V 플랫폼, 공조 시스템 등 배터리만큼 중요한 부품이 많이 있다. 

어떤 면에서 배터리 기업들은 그들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볼 수 있다. 배터리팩 단가를 지난 10년 사이 80%나 낮췄으니 말이다. 이제는 배터리 말고 다른 부품 영역에서 전기차 대중화에 기여할 여지 혹은 기회가 많아 보인다. 이번에는 이런 역할을 담당할 아시아 기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전기차에서 배터리만큼 중요한 것이 e-파워트레인이다. e-파워트레인은 배터리의 전기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내연기관차의 파워트레인인 엔진 및 변속기가 하는 역할과 비슷하다 하겠다. 전기차를 처음 타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전기차의 최대 매력 포인트는 머리가 쭈뼛 설 정도의 가속력이다. 요즘 웬만한 전기차라면 출발해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데 5~6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고성능의 고급 엔진 차가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10초 이상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빠른 것이다. 

이러한 초기 가속력이 주는 짜릿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쉽게 전기차 팬이 된다. 그러니 전기차의 핵심 상품성은 e-파워트레인에 달려있다고도 할 수 있다. e-파워트레인과 관련해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아시아 기업들이 있다. 일본의 나이덱과 중국의 이노밴스가 그들이다. 

참고로 e-파워트레인은 크게 모터, 인버터(전력 변환 장치), 감속기로 구성된다. 이 중 인버터가 가장 중요하다. 여느 인버터와 마찬가지로 직류를 교류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한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하는 만큼의 출력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바꿔줘야 한다. 또 출력의 변화를 위해 스위치 온·오프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 기능과 회생제동 기능도 담당한다. 

또한 전기차용 모터는 초고속 회전을 장기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보통 전기차 모터는 가솔린 엔진 차 대비 3~4배가량 빠르게 회전한다. e-파워트레인의 감속기는 내연기관의 변속기와 비슷한 위치에 있지만 실제 기능은 훨씬 단순하다. 왜냐하면 전기차 모터는 어떤 속도에서도 최고 토크(내연기관의 크랭크축에 일어나는 회전력)를 낼 수 있으니 다단 변속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나이덱 e-파워트레인을 탑재한 광저우자동차 자회사 아이온(Aion)의 ‘Aion Y’ 모델. 사진 블룸버그
나이덱 e-파워트레인을 탑재한 광저우자동차 자회사 아이온(Aion)의 ‘Aion Y’ 모델. 사진 블룸버그

중국 e-파워트레인 시장 개척한 일본의 나이덱

나이덱은 한국에 ‘일본전산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잘 알려진 기업이다.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매출 성장을 수십 년째 지속하는 기업 중 하나다. 이 회사는 교토의 괴짜 기업으로 유명하다. 이를테면 ‘직원을 채용할 때 밥 빨리 먹는 순으로 뽑았다’ 또는 ‘한 번도 인수합병(M&A)에 실패한 적이 없다’ 등의 에피소드로 알려져 있다. 창업 초기에는 데이터 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에 들어가는 소형 정밀모터를 생산했다가 이후 많은 인수합병을 통해 모터 부문에서 글로벌 1등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최근 전기차용 e-파워트레인에 도전장을 내놨다. 창업주인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은 전기차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과 함께 e-파워트레인 부문에서 본인들이 글로벌 1등을 하겠다는 비전을 수시로 밝혀왔다. 

그는 현재 1200~1900달러(약 141만1200원~232만9400원) 수준의 e-파워트레인 공급단가를 2025년까지 700달러(약 85만8200원) 수준까지 낮추겠다고 장담했다. 이렇게 되면 전기차 원가경쟁력은 더욱 강화된다. 나이덱은 중국의 주력 전기차 브랜드 중 하나로 떠오른 광저우자동차 자회사인 아이온(Aion)에 e-파워트레인을 납품하면서 트랙 레코드(Track Record)를 쌓고 있다.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완성차 업체 BYD나 테슬라 등을 제외하면, 나이덱은 이미 중국 e-파워트레인 시장 점유율 1위 자리에 올랐다. 

흥미로운 것은 이 회사가 주력하는 시장은 본국인 일본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자동차 강국 일본은 전기차에 대해 가장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나라다. 대신 나이덱은 모든 생산기지 및 고객을 중국에 두고 있다. 자신들의 기술력과 중국의 저렴한 생산원가를 결합해 최고의 품질과 원가 경쟁력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e-파워트레인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나이덱의 도전은 인상적이다. 일본 기업으로서 중국에 주요 생산기지를 가져가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전 세계 전기차 수요의 50%를 점하는 중국 본토에서 생산과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모습은 공격적인 기업가 정신의 전형이다.

 

전기차 납품 업체로 변신한 中 이노밴스

중국 선전의 이노밴스(Inovance)도 주목을 받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2003년 에머슨과 화웨이 출신 엔지니어들이 나와서 창업한 회사다. 초기에는 엘리베이터용 인터버 컨트롤러 사업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중국의 대표적인 인버터 및 자동화 기업으로 성장했다. 

산업용 인버터와 자동차용 인버터가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산업용 인버터는 자동차에 준하는 혹은 그 이상의 고압과 고열을 다룰 수 있게 제작된다. 이런 점에서 이노밴스가 전기차 인버터에 뛰어드는 것이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회사가 이미 2010년대 초부터 전기차 인버터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지만 한동안 전기 버스가 가장 큰 고객이었다. 이노밴스는 위통버스(Yutong Bus)에 전기차용 인버터를 납품하면서 자동차용 인버터에 대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 후 매출 침체기를 겪었지만, 다시 2020년부터 전기차 인버터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중국 전기차 업계의 신예 리오토와 샤오펑(小鵬)과의 협력 관계 덕분이다. 이들 기업의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면서 이노밴스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샤오펑은 2021년 새롭게 출시한 모델 P5 등이 호평을 받으며 2021년 10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이들 회사들의 전기차 모델들에는 이노밴스의 인버터 혹은 e-파워트레인이 탑재됐다. 역으로 말하면 리오토, 샤오펑 같은 전기차 벤처 기업들이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이노밴스와 같은 부품사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노밴스는 다른 이유로도 주목받고 있다. 중국 산업계 전문가들은 이 회사가 중국의 지멘스와 같은 산업재 글로벌 기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곤 한다. 이 회사가 수행하는 신사업 중에서는 전기차용 인버터뿐만 아니라 PLC, 로봇용 서보모터 사업부, 심지어는 스카라 로봇(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로봇) 생산 사업부도 있다. 이노밴스는 그동안 신사업부를 비교적 단기간에 시장 점유율 상위에 랭크시키는 저력을 보여 왔다. 어떤 면에서는 중국 산업의 발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이기도 하다.



고속충전 핵심 키로 떠오른 전력반도체 

인버터의 성능을 좌우하는 것은 그 안에 들어가는 전력반도체다. 앞서 언급한 나이덱, 이노밴스 등은 인버터나 e-파워트레인을 만들 수 있지만, 정작 전력반도체는 외부에서 구매해야 한다. 전력반도체의 역할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현재 전기차의 최대 단점은 충전 시간이 길다는 것인데 이를 해결하는 유력한 방안이 고속충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동차 전압 시스템을 현재의 400V에서 800V로 높여야 하는데 이때 고성능 전력반도체가 필요하다. 현재 포르쉐, 현대차그룹, 폴크스바겐 등이 800V 시스템에 기반한 플랫폼을 도입했다. 이 플랫폼에서 생산된 전기차 모델들은 충전을 10%에서 80%까지 하는 데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획기적이다. 

하지만 800V 시스템 도입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반도체 회사들이 전기차용 전력반도체 개발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맥쿼리증권에 따르면 2025년까지 전력반도체(Si IGBT 혹은 SiC MOSFET)에 대한 수요는 연평균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반도체는 어떤 회사가 만들까. 이 분야 글로벌 리더로는 유럽 기업 인피니온과 에스티 마이크론(ST Micron), 미국 기업 울프스피드(Wolfspeed)와 일본 기업 롬(Rohm)이 유명하다. 중국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전력반도체 기업도 있다. 스타파워, 비야디(BYD), 중처시대전기(中車時代電氣) 등을 주목할 수 있다. 스타파워는 사업 초기에 인피니온의 IGBT 칩을 사와 모듈 설계를 해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하다가 2016년부터는 직접 IGBT 칩을 설계해 공급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차세대 전력반도체로 떠오르는 SiC (실리콘 카바이트)의 경우는 설계뿐만 아니라 생산도 직접 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회사는 비교적 젊은 반도체 기업인데도 중국의 대표 전력반도체 업체로 떠올랐다.

한편 전기차에서 열 관리, 즉 공조 시스템의 중요성도 더욱 부각되고 있다. 엔진에서 나오는 폐열을 회수해서 난방을 할 수 있었던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에서는 겨울철 난방(실내 및 배터리 등)을 위한 특별한 대처가 필요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e-컴프레스와 히트펌프다. 이 부문에서 한국의 한온시스템과 일본의 덴쏘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산화(Sanhua) 같은 기업들이 EXV(Electric Exchange Value·전자팽창밸브) 등 핵심 부품을 테슬라에 공급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기차가 빠르게 성장하는 아시아 각국에서는 배터리 기업뿐만 아니라 e-파워트레인, 전력반도체, 공조 시스템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부품 기업들의 부상이 눈에 띈다. 과연 이들 신예 기업이 기존 부품 기업들과 어떻게 경쟁해나갈지가 전기차 시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