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경기 성남시 삼평동 에이비엘바이오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훈 대표. 사진 최정석 기자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 서울대 생물학과 석사, 오하이오주립대 생물학과 박사, 전 아스트라제네카 보스턴 수석연구원, 전 한화케미칼 바이오 본부장
2월 10일 경기 성남시 삼평동 에이비엘바이오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훈 대표. 사진 최정석 기자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 서울대 생물학과 석사, 오하이오주립대 생물학과 박사, 전 아스트라제네카 보스턴 수석연구원, 전 한화케미칼 바이오 본부장

지난 1월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 최대 행사로 꼽히는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놀라운 소식이 나왔다. 국내 제약사 에이비엘바이오가 프랑스 글로벌 빅파마인 사노피와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올해로 창립 6년밖에 되지 않은 한국 제약사가 연초부터 조(兆) 단위 ‘잭팟’을 터뜨렸다는 이야기에 국내는 물론 해외 유명 제약사들의 시선 또한 달라졌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이사는 “올해 JP모건 행사 전후로 우리 회사를 향한 관심도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매일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번 기술이전 계약 대상은 에이비엘바이오가 파킨슨병 치료를 위해 개발 중인 신약 후보 물질 ‘ABL301’이다. 파킨슨병은 뇌 속 단백질인 ‘알파-시뉴클린’이 비정상적으로 응집해 뇌세포를 죽이면서 발병·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ABL301은 혈액-뇌 장벽(BBB·Blood Brain Barrier)을 뚫고 뇌 안으로 들어가 ‘알파-시뉴클린’으로 불리는 응집된 단백질을 분해하는 식으로 파킨슨병을 치료한다.

에이비엘바이오는 회사가 탄생한 2016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200억~300억원가량의 자금을 신약 후보 물질 연구개발(R&D)에 아낌없이 쏟아왔다. 이런 행보 탓에 한때는 ‘대한민국에서 돈은 최고로 많이 쓰지만 수준은 낮은 회사’라는 비아냥도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신약 개발’이라는 회사의 비전을 이뤄내려면 연구개발 이외엔 방법이 없다는 생각으로 손해를 감수해왔다. 그 결과 이번 사노피와 계약을 기점으로 에이비엘바이오는 창립 6년 만에 흑자 전환을 앞두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3월 중 사노피로부터 기술이전 계약금 900억원을 받고, 임상 1상이 올해 안에 시작되면 단기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540억원을 추가로 받게 될 예정이다. 이어 ABL301에 적용된 이중항체 플랫폼 기술인 ‘그랩보디-B’의 기술이전 논의를 현재 글로벌 제약사 두 곳과 진행 중이다. 에이비엘바이오에 따르면, 올해 안에 기술이전이 성사돼 계약금이 들어올 경우 회사는 3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이 대표를 2월 10일 경기 분당구 삼평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올해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기술이전 계약을 했다. 협상이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JP모건뿐만 아니라 바이오USA, 바이오유럽 등 다양한 행사에서 글로벌 빅파마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보니 이곳저곳에 우리 기술을 소개했다. 대부분 ‘괜찮은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중 하나가 사노피였다. 사노피와 기술이전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건 작년 JP모건 행사 때였다. JP모건으로 시작해서 JP모건으로 끝난 셈이다.”

협상을 1년 동안 했다는 건가.
“그렇다. 기술이전 논의부터 실제 계약서에 사인이 이뤄지기까지 1년 걸렸다. 여러모로 진이 빠지는 과정이었다.”

협상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우리 데이터를 그쪽에서 검증하기 위해 실사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상대 회사에서 우리 제품에 대한 데이터를 요구하면, 그 데이터를 뽑아내기 위한 시험을 설계하고 진행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데이터를 제공하면 보통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회사에서 직접 한국에 사람을 보내 실사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입국이 어려워지면서 비대면 실사를 진행하게 됐다. 비대면 실사를 위해 우리가 물질 레시피를 상대 회사 공장 쪽에 전달해야 했다. 그런데 막상 그쪽에서 우리 레시피를 따라 만든 신약 물질로 시험을 했더니, 우리가 시험했을 때와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 이러면 책임 소재를 파악하는 데만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우리가 시험을 잘못한 건지, 상대가 시험을 잘못한 건지, 아예 레시피 자체가 잘못된 건지, 상대가 레시피를 제대로 따르지 않은 건지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다행히 상대 회사 쪽에서 레시피를 제대로 따르지 않아 시험 결과가 다르게 나온 것으로 마무리됐다. 본사는 프랑스에 있는데 공장은 독일에 있는 등 소통 과정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실수가 나온 모양이다. 지금이야 해프닝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당시엔 정말 심장이 철렁했다.”

그 험난한 과정을 뚫고 사노피의 선택을 받은 건가.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사노피를 선택한 면도 있다. 지난해 JP모건 때부터 시작해서 사노피와 마찬가지로 우리 기술에 관심을 가진 회사가 여럿 있었고, 데이터 검토와 실사 등 모든 과정을 마쳤을 때는 사노피를 포함해 두 개 회사가 남았다. 우리가 그중에서 사노피를 자신 있게 선택했다. 사노피가 제시한 계약 조건이 더 좋았고, 일하는 과정에서 소통하는 과정이 더 잘 맞았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사노피에 간택받은 건 아니다.”

계약 규모가 총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걸 어떻게 나눠서 받나.
“초기 계약금이 7500만달러. 한화로 따지면 약 900억원이다. 올해 안에 임상 1상 첫 투여를 계획 중인데, 여기서부터는 단계별로 540억원씩을 더 받는다. 임상 1상 통과를 위해 한국과 미국 등에 제출할 IND(임상시험계획서)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임상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사노피 쪽에서 1440억원을 받게 되는 셈이다. 1조3000억원이라는 숫자도 의미가 상당히 크다. 2021년에 국내 제약·바이오 회사가 총 28건의 기술이전을 성사시켰는데, 계약 규모가 전부 다 해서 11조4041억원이다.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전체 기술이전 계약 규모의 10%를 에이비엘바이오가 연초부터 달성한 거다.”

연구개발에 상당한 비용을 쓴다고.
“매년 200억~300억원 규모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많이 쓰는 편이다. 덕분에 이번 사노피 계약처럼 눈에 띄는 성과가 없을 땐 비아냥도 많이 들었다. 대한민국 최고로 돈 많이 쓰지만 수준은 낮은 회사라나. 솔직히 말해 지금껏 벌어들인 돈에 비해 연구개발 투자가 너무 많이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연구개발을 열심히 해서 신약을 만들고 기술을 팔아야 우리 같은 새내기 제약·바이오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모두 그렇다.”

에이비엘바이오의 향후 목표는.
“단기적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기술이전을 성공적으로 매듭짓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당장 임상 3상에 돌입해 곧바로 내년에 치료제를 출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향후 재정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기술이전에 몰두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이중항체 플랫폼 기술을 지속해서 개량해나갈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술이전, 재정안정, 연구개발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계속 키워내 명실상부한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하고 싶다. 조 단위 매출과 1만 명대 직원들을 거느린 거대 기업이 되고 싶다. 미국 글로벌 제약사인 엑셀레시스, 제넨텍 등을 보면 모두 하나같이 기술이전으로 큰돈을 벌어 몸집을 키우고 안정화 기간을 거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다. 그런 식으로 에이비엘바이오를 한국 제약·바이오 회사의 모범답안 같은 존재로 키워내고 싶다.”

최정석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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