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택 1단지 전경. 2008년 한보광업소가 폐광한 이후 이 사택은 오랜 기간 흉가로 방치됐다. 사진 고성민 기자
한보사택 1단지 전경. 2008년 한보광업소가 폐광한 이후 이 사택은 오랜 기간 흉가로 방치됐다. 사진 고성민 기자
지난해 12월 23일 찾은 강원 태백시 통동 한보사택 1단지에 가설 창고가 설치돼 있다. 이 사택이 지어진 토지는 국유지여서 개인이 임의로 사용할 수 없지만, 오랜 기간 폐가로 방치되자 일부 주민들이 불법으로 텃밭을 일구고 창고를 설치했다. 사진 고성민 기자
지난해 12월 23일 찾은 강원 태백시 통동 한보사택 1단지에 가설 창고가 설치돼 있다. 이 사택이 지어진 토지는 국유지여서 개인이 임의로 사용할 수 없지만, 오랜 기간 폐가로 방치되자 일부 주민들이 불법으로 텃밭을 일구고 창고를 설치했다. 사진 고성민 기자

지난해 12월 23일 찾은 강원 태백시 통동. 1982년 개광(開鑛)해 2008년 폐광한 ‘한보광업소 통보탄광(한보탄광)’ 옆에 쓰러질 듯 서 있는 아파트 단지가 하나 보였다. 한보광업소 광부들을 위한 사택으로 지어진 한보사택 1단지다. 폐광 이후 광부들은 모두 떠나갔지만, 이 아파트는 이후 14년째 폐가로 방치되고 있다. 외벽은 부서지거나 갈라져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고, 내부도 벽지와 마감이 뜯겨 오래된 시멘트 벽돌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대낮에도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밤에는 흉가체험 마니아들이 종종 찾아오는 장소다.

한보탄광을 운영하던 한보그룹은 한때 재계서열 14위까지 올랐던 기업이다. 상사를 시작으로 탄광, 주택, 철강으로 덩치를 키웠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지은 건설사가 한보그룹이다. 그러나 1997년 부도로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단초를 제공하며 한보그룹은 공중분해됐다. 한보사택도 한보그룹 부도 이후 1단지는 폐가로, 2단지는 철거로, 3·5단지는 일반분양으로 각각 쪼개졌다. 한보그룹 흥망성쇠와 한보광업소 사택의 처지가 닮았다.


지난해 12월 23일 찾은 강원 태백시 통동 한보사택 1단지 내부. 오랜 기간 방치되며 시멘트 벽돌이 훤히 드러나 있다. 사진 고성민 기자
지난해 12월 23일 찾은 강원 태백시 통동 한보사택 1단지 내부. 오랜 기간 방치되며 시멘트 벽돌이 훤히 드러나 있다. 사진 고성민 기자

태백 상징하는 민영 탄광, 당시로선 드문 아파트형 사택

한보광업소는 한보그룹이 1982년 한보탄좌개발(같은해 한보탄광으로 상호 변경)을 설립하고 유창물산으로부터 광업권을 매입하며 운영을 시작했다. 한때 민영 4대 광업소로 불릴 정도로 규모가 컸다. 연간 석탄생산량이 53만t에 달했고 직원이 1000명을 넘었다. 이때 석탄은 ‘검은 진주’로 불렸다. 한보광업소(태백)와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정선), 삼척탄좌 정암광업소(정선), 경동 상덕광업소(삼척)가 국내 4대 민영 광업소로 꼽힌다.

한보사택은 한보그룹이 광부들 숙소 용도로 지었다. 1단지는 1983년 8개 동 144가구, 2단지는 1985년 5개 동 126가구, 3단지는 1987년 19개 동 390가구, 한보 5단지는 1988년 7개 동 150가구로 지어졌다. 총 39개 동 810가구다. 지하층 없이 지상 3층, 가구당 15~16평이다. 거실과 방 2개, 화장실 구조다.

1~5단지는 착공에서 준공까지 짧게는 5개월, 길어도 1년 4개월이 걸렸다. 한보 1단지는 특히 착공에서 준공까지 단 5개월이 걸렸다. 빠른 시일 내 많은 광부를 수용하기 위해 시멘트 벽돌을 쌓아 올려 외벽을 세우는 조적(組積) 구조로 건설됐다. 조적 구조는 단독주택이나 1970년대 이전 아파트에 쓰인 건축 방식으로, 1970년대 이후엔 철근콘크리트(RC·철근을 세운 뒤 거푸집을 만들어 콘크리트를 타설해 넣는 건축 구조) 공법이 주로 쓰였다. 한보사택은 건축 기술을 10년 이상 역행해 세워진 건물인 셈이다. 같은 해(1983년) 수도권에선 개포주공·과천주공이 최고 15층,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졌다.

한보사택은 이들과 비교하면 열세지만, 다른 광산촌 사택과 비교하면 최고급 주거지였다. 한보사택 이전의 탄광촌 사택은 마치 집단수용소를 연상케 했다. 5~8평, 방 1개, 공동화장실, 슬레이트 지붕의 단층짜리 주택이 탄광촌 사택의 표준이었다. 이런 열악한 사택마저 전체 노동자의 절반만 들어갈 수 있던 시절이라 아파트형 사택은 최고급 주거지에 속했다. 지난해 12월 23일 1단지 앞에서 만난 태백시민 김모(73)씨는 “한보광업소에서 19년 동안 광부로 일했고, 한보사택에서 19년간 살았다”면서 “1980년대 당시 태백엔 1층짜리 주택만 즐비했지, 이런 아파트는 없었다. 한보사택에 산다는 건 산업 전사라는 자부심의 상징이었다”고 말했다. 

탄광촌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한보사택에는 폐광보다 부도가 먼저 찾아왔다. 한보그룹이 1997년 1월 부도가 나며 공중분해됐기 때문이다. 한보광업소는 법정관리 과정에서 2004년 태안광업에 인수됐다. 주인이 바뀐 한보광업소는 석탄산업 사양으로 2008년 곧 폐광했고, 한보그룹도 2009년 법인을 청산했다.


2~5단지 다 팔아놓고⋯국유지 1단지는 못 팔고 폐가로 방치

한보사택은 한보광업소 폐광 이후 1단지는 폐가로, 2단지는 철거 후 매각으로, 3·5단지는 일반 분양으로 제각각 쪼개졌다.

1단지만 폐가로 남은 이유는 토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1단지는 특이하게도 2~5단지와 달리 국유지에 산림청의 사용허가를 받아 지어졌다. 2~5단지 토지는 한보광업소 소유 사유지인데, 1단지만 국유지다. 당시 광업이 국가 경제 기반이어서 국유지를 쓸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도 1단지 소유주는 산림청이고, 지목은 임야다. 폐광 이후 태안광업은 사택을 철거하고 국가에 반환해야 하는데,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10년 넘게 방치됐다.

태백시 관계자는 “폐광 이후 광업시설과 사택 등 광산의 폐시설물은 관련법에 따라 소유권자 동의를 받아 한국광해관리공단이 철거한다”면서 “한국광해관리공단은 철거 후 토지를 원상복구하고 산림청에 반환하는 방식인데, 건물 소유주인 태안광업이 철거에 동의하지 않아 현재까지 폐시설물로 남아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광해관리공단 관계자는 “1단지에는 한 채권자로부터 가압류도 걸려 있어 강제철거를 할 수 없다”면서 “건물 가압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건물을 강제철거하면 공단이 채무자가 되기 때문에 가압류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철거할 수 있다. 조속히 건물을 철거하고 산림을 복구하고 싶지만, 공단 입장에서도 골치가 아픈 상황”이라고 했다.

태안광업은 국유지라 매각할 수 없는 1단지 건물을 제외한 2~5단지는 모두 매각했다. 2단지 부지는 경기 안양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우일학원이 2010년 54억원에 매입했다. 우일학원은 연수원 신축 명목으로 해당 부지를 매입했으나, 아직 착공에 들어가지 않았다.

태안광업은 3단지와 5단지는 리모델링을 거쳐 일반에 분양했다. 2009~2010년 2700만~3100만원에 분양했다. 하지만 석탄 사양화로 인한 지역경제 침체와 인구 감소 영향으로 최근 집값은 오히려 떨어졌다. 3단지(하나연립) 전용 45㎡는 지난해 11월 1100만원, 5단지 전용 47㎡는 지난해 12월 15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12월 23일 찾은 1단지에는 심지어 텃밭과 창고 같은 가건물도 보였다. 가건물 안에는 농기구 몇 개가 보였는데, 한 폐가 마니아가 2020년 한보사택을 찾아 온라인에 게시한 방문기를 보면, 가건물에는 닭이 길러지고 있었다. ‘이곳은 국유지로 불법으로 훼손하거나 무단으로 사용할 시 산지관리법 53조에 의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산림청 안내문이 붙어있었으나, 유명무실해 보였다.

고성민 조선비즈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