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일봉 율촌 변호사 서울대 법학 학사·석사·박사, 사법연수원 20기, 현 한국증권법학회 이사, 현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현 서울고등검찰청 영장심의위원회 위원 허진용 율촌 변호사 서울대 법학 학사·석사, 사법연수원 35기, 전 Kobre & Kim LLP 근무사진 율촌·셔터스톡
문일봉 율촌 변호사 서울대 법학 학사·석사·박사, 사법연수원 20기, 현 한국증권법학회 이사, 현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현 서울고등검찰청 영장심의위원회 위원 허진용 율촌 변호사 서울대 법학 학사·석사, 사법연수원 35기, 전 Kobre & Kim LLP 근무 사진 율촌·셔터스톡

회사채 인수 과정에서 증권사들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굴지의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했다고 하자. 이에 주요 증권사들이 앞다퉈 회사채 인수인으로 참여했다. 회계법인 등 외부평가기관으로부터 감정도 받았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해당 회사가 적지 않은 액수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기업과 회계법인은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렇다면 투자자 입장에서 증권사에도 ‘주의의무 소홀’ 책임을 따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증권사는 책임이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와 관련, 증권사를 상대로 한 첫 손해배상 소송 판례다. 그동안 주의의무 소홀에 대한 대우조선해양과 안진회계법인의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판례는 있었지만, 회사채를 인수한 증권회사와 관련된 선례는 없었다. 


국민연금 "위험 발견 못 한 것은 '업무태만'"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은 2017년 4월,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인수 관련 투자설명서, 증권신고서 등에 중요 사항의 허위 기재 및 누락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회사채의 인수인인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증권사들이 ‘기업실사 및 평가 의무’를 소홀히 해 분식회계 사실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고 그에 따라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분식회계가 없었다면 2860억원에 샀을 텐데, 거품이 껴서 고평가돼 비싸게 샀고 그 손해가 736억원이니 이를 증권사가 물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측은 회사채 인수 당시,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들이 있었다는 점을 제시했다. 이른바 ‘위험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는데 발견하지 못한 것은 대형 금융기관으로서 업무 태만이라는 주장이었다.

구체적으로 ‘정황 제시’에 주력했다. 당시 재무제표상 실적은 좋았지만, 실제로는 조선업계의 저가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고 대우조선해양이 산업은행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경영 상황이 악화됐다는 점을 나열했다. 즉, 대형 금융기관으로서 한 번쯤은 의심을 가져볼 수 있는 정황들이 넘쳐났다는 지적이다. 또 안진회계법인에서 감사보고서를 냈을 때,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점도 문제 삼았다. 주의 깊게 보지 않고 그대로 믿은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 측은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는데 의심하지 않은 것”은 주의의무 소홀이라고 봤다. 대외적인 여건도 증권사 측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 사건 분식회계와 무관하게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경징계를 받는 등 대형 증권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전에는 옵티머스 및 라임 같은 형사적 사건으로도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았다. 사건을 대리한 허진용 변호사는 “금융회사들이 이 사건 분식회계와 무관하게 최근 DLF 사태나 옵티머스 및 라임 사태 등을 겪으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면서 “‘왜 자꾸 이런 사고를 터뜨리냐’며 이른바 관리·감독 이슈가 부상하면서 질타를 많이 받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에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증권사 3곳을 대리한 법무법인 율촌은 무엇보다 원칙대로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증권사들이 성실하게 금융투자회사의 ‘기업실사 모범규준’에 따라 기업실사를 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기업실사 모범규준은 증권의 인수·주선업무와 관련한 기업실사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이 마련한 것으로, 실사를 수행함에 있어 필요한 사항을 원칙 중심으로 제시한 기준이다. 

또 재무제표 허위성을 의심할 만한 사유가 없었던 점, 인수인의 기업실사는 재무제표의 진실성을 독립적으로 재검증하는 절차가 아닌 점에 초점을 맞춰 재판부를 설득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증권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허 변호사는 “모범규준을 도입한 취지 자체도 재무제표나 회계 이슈를 스스로 리뷰하라는 취지가 아니라고 반박했다”면서 “상대방 측에서 투망식으로 던진 여러 정황을 조목조목 반박하다 보니 오히려 소송 초기부터 재판부 심증을 우리 측에 유리하게 형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정보’ 미국 판례까지 찾아낸 율촌

율촌은 ‘감사보고서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증권사의 업무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전문정보에 관한 미국 판례도 찾아냈다. 우리나라에는 해당 쟁점과 관련한 명시적인 법이 없다. 해당 판례는 이른바 전문정보와 비(非)전문정보를 다루고 있다. 회계사가 재무제표를 검토한 의견서나 변호사가 쓴 법률의견서 등 전문정보를 믿는 것이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특별한 점이 있는 경우에만 의심해봐야 한다는 내용이다. 반면 비전문정보라면 이와 반대로 원칙은 ‘한 번 더 리뷰’하는 것이다. 다만 아주 예외적 사유일 때만 믿는 것으로 돼 있다. 결국, 이 주장은 승소를 이끈 중요 요인이 됐다. 기본적으로 외부감사를 맡은 안진회계법인도 공신력 있는 회사라는 점에서 전문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허 변호사는 “사실 회계업무는 회계사들이 재무제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회계사들이 제일 잘 안다. 그런데 회계 자격증 없는 증권회사가 ‘이거 이상하다’ 문제점을 찾을 수 있겠나”라며 “예를 들어 로펌에서 법률검토 의견을 만들었는데 비(非)법조인 일반 금융회사에서 ‘너희 법리가 잘못됐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해 증권 인수인의 손해배상책임 판단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율촌의 송무 부문 부문장을 맡고 있는 문일봉 변호사는 “분식회계 방지의무는 일차적으로 대상 회사가 직접 책임을 지고 이차적으로 감사인이 책임을 진다”면서 “재무제표 등 전문정보를 신뢰한 것에 과실이 없는 인수인 측 입장에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회사채 인수인의 책임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판단 기준을 제시하며 사실상 선례가 된 것도 고무적”이라고 덧붙였다. 문 변호사는 “이 사건은 2017년 4월에 소가 제기돼 약 4년 9개월 동안 치열하게 변론을 진행했다”며 “율촌은 증권회사들의 전부 승소 판결을 도출함과 동시에 인수인의 자본시장법 및 민법상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좋은 선례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현재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우정사업본부, 공무원연금공단, 중소기업중앙회 등 나머지 기관투자자들도 각각 증권사들을 상대로 소를 제기해 관련 사건만 5건에 달한다. 따라서 이번 승소가 나머지 재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패소한 국민연금 측은 현재 항소한 상태다.

이미호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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