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그래프로 성분 표기가 돼 있는 LG생활건강 화장품 브랜드 빌리프 제품. 사진 빌리프
막대그래프로 성분 표기가 돼 있는 LG생활건강 화장품 브랜드 빌리프 제품. 사진 빌리프
김운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고려대 법대, 듀크대 로스쿨, 사법시험 33회, 사법연수원 23기, 전 대법원 지식재산권전담조 연구관, 전 서울고등법원 지식재산권 전담부 판사 사진 광장
김운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고려대 법대, 듀크대 로스쿨, 사법시험 33회, 사법연수원 23기, 전 대법원 지식재산권전담조 연구관, 전 서울고등법원 지식재산권 전담부 판사 사진 광장

화장품 성분이 한눈에 보이는 ‘막대그래프’를 용기에 표기하는 방법은 한 브랜드만 사용할 수 있을까. LG생활건강이 2010년 8월 출시한 화장품 브랜드 ‘빌리프’엔 150년 된 영국 허브 브랜드 네이피어의 제조법에 기반해 원료, 처방, 안전성 등에서 소비자에게 믿음(belief)을 준다는 의미가 담겼다. 특히 천연 유효 성분의 첨가량과 유해 화학 성분이 ‘0%’라는 표시를 용기 앞면에 내세운 점이 특징이다.

빌리프는 이미 지난 2011년 막대그래프 표기법을 따라 한 중소 화장품 회사와 소송을 겪었고, 이에 따라 제품 출시 후 3년만 외형의 독점권이 보호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2019년 2월 또 다른 화장품 브랜드 토니모리가 빌리프의 막대그래프 표시법과 비슷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빌리프 제품이 출시된 지 10년 가까이 됐으니 누구나 자유롭게 화장품 도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빌리프의 ‘막대그래프 표기법’이 브랜드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화장품 외형이 단순한 포장을 넘어서 브랜드 가치 등의 ‘성과’로 인정될 경우 부정경쟁방지법에 의해 보호될 수 있다는 첫 소송 판례를 남긴 것이다.


부정경쟁방지법 항목별로 꼼꼼히 입증

서울중앙지법 민사63-3부(재판장 이민수)는 1월 20일 LG생활건강이 토니모리를 상대로 낸 부정경쟁행위금지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토니모리는 LG생활건강을 상대로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됐다. 재판부는 “빌리프의 표장은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구축된 독자적인 표기 방법”이라며 “빌리프 제품을 나타내는 차별적인 특징이 됐다”고 설명했다.

재판의 쟁점은 화장품 용기 성분 표기법을 비슷하게 따라 한 것이 부정경쟁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빌리프는 용기 전면에 제품에 포함된 유효성분 또는 효능을 위에서 아래로 표기한 뒤 각 성분을 표시하고, 그 비율을 가로 막대그래프로 나타냈다. 막대그래프의 오른쪽 끝부분에는 구체적 수치를 퍼센트(%)로 적었다. 유효성분이나 효능의 표기 밑에는 제품에 포함되지 않은 유해 화학성분을 표기한 뒤, 오른쪽 옆에 막대그래프 없이 0%라고 표시했다.

이후 토니모리는 빌리프와 마찬가지로 유효성분 등의 명칭과 막대그래프, 퍼센트 수치를 나란히 표기하고 그 밑에는 제품에 포함되지 않은 유해 화학성분의 명칭과 0%까지 똑같이 적은 화장품을 출시했다. 피부과 검사 완료(dermatologically tested)라는 문구와 표시 위치까지 그대로 따라 했다. 이에 LG생활건강 측은 “실질적으로 유사할 뿐만 아니라 현저히 유사한 정도에 이르렀다”며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반발했다.

재판 과정에서 빌리프의 발목을 잡았던 건 과거 승소 사례였다. 빌리프가 상품 형태 모방행위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자)목에 따라 화장품 도안은 3년간 보호됐다. (자)목에서 정하는 상품 모방행위의 보호 기간이 3년이기 때문이다. 3년이 지난 이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도안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에 LG생활건강을 대리한 법무법인 광장은 빌리프의 막대그래프 표기법이 단순한 도안이 아닌, 10년 이상의 광고와 투자를 통해 얻은 성과라고 주장했다. 성과를 보호하는 부정경쟁방지법 (카)목의 성립 여부는 (자)목으로 보호받은 과거 사실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판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정경쟁방지법 (카)목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뜻한다. (자)목은 제품의 형태에 대해서만 보호하는 것이지만, 성과로 인정될 경우 별개의 주장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는 성과로 인정될 경우 (카)목에 의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첫 사례다.

재판부는 빌리프의 손을 들어줬다. 부정경쟁방지법 (자)목에 의한 보호 기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빌리프의 독자적인 표시 방법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공공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고,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서 “(자)목에 따른 보호와 별도로 (카)목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빌리프(좌측)와 토니모리 화장품 용기의 막대그래프 성분 표기법 비교. 사진 광장
빌리프와 토니모리 화장품 용기의 막대그래프 성분 표기법 비교. 사진 광장

100여 개 간판·진열대 사진 증거로 제출

광장은 빌리프의 막대그래프 표기법을 ‘상당한 성과’로 인정받기 위해 백화점, 면세점 등에 있는 100여 개 점포의 간판과 계산대, 진열대 등 사진을 모아 재판부에 제출했다. 단순한 용기 포장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빌리프 간판에도 성분에 ‘돋보기’를 더한 이미지를 사용해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방식으로 홍보해왔다고 강조한 셈이다.

김운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막대그래프로 표기하고, 성분을 돋보기로 강조하는 것 자체가 브랜드 가치를 갖고, 소비자도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인터넷에서 소비자들의 댓글을 하나하나 분석해 재판부에 냈다. ‘빌리프는 모든 성분을 %로 정확하게 표시’ ‘모두 표시하기 때문에 신뢰가 쌓이고 믿음직’ 등의 소비자 반응을 통해 빌리프의 막대그래프 표기법이 제품의 특장점으로 인지되고 있음을 증명했다. 소송에는 지식재산권 전문가 최하나(로스쿨 7기) 변호사도 활약했다.

빌리프의 막대그래프 표기법이 브랜드에 투자한 성과라는 점도 강조했다. 빌리프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제품 광고에 약 138억1300만원을 쏟아부었다. 같은 기간 빌리프의 매출액은 4344억9000만원에 달했다.

빌리프가 막대그래프 디자인으로 한국 디자인단체 총연합회(KFDA)가 발간한 2010년도 디자인 연감에 수록된 점도 증거로 제출했다. 한국패키지디자인협회(KPDA)의 패키지 디자인 어워드에서 화장품 부문 ‘PACKSTAR’상을 받은 점도 주장했다.

결국 재판부는 빌리프의 막대그래프 표기법이 독자적인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빌리프 제품같이 제품 용기 앞면 대부분을 차지하도록 성분의 명칭과 비율을 나타낸 막대그래프를 크게 표기하거나 이른바 ‘유해 화학 성분’을 강조해 ‘성분 명칭·공백·0%’라는 형태로 된 문자를 연속해 아래로 배치하는 독자적 방법을 사용한 제품은 없었다”고 판시했다.

광장은 증거 자료들을 토대로 토니모리가 더는 막대그래프를 이용해 제품을 광고할 수 없도록 하고, 손해배상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토니모리(법무법인 화우 대리)가 여전히 막대그래프 표기법을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양측의 법리 싸움은 2심으로 이어지게 됐다.

김민정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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