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촬영한 서울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전경. 사진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2020년 6월 촬영한 서울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전경. 사진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천편일률적인 ‘성냥갑 아파트’는 우리나라 아파트를 상징하는 오명이지만 반례도 있다. 서울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올림픽선수촌)는 정가운데 올림픽프라자 상가를 중심으로 5540가구가 부채꼴 모양으로 개성 있게 펼쳐져 있다. 낮은 동은 6층, 높은 동은 24층으로 부채꼴의 외곽으로 갈수록 건물 이 높아지는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단지 내로는 성내천이 Y 자 모양으로 흐른다. 주동 배치와 건축설계로 국내 가장 개성 있는 단지다.

이 아파트는 1988 서울올림픽에서 선수(현 2·3단지)와 외신기자(현 1단지) 숙소로 쓰였다. 올림픽 폐회 이후 일반인들이 입주해 아파트로 쓰이고 있다. 분양 과정에서도 독특한 점이 많았다. 올림픽 기부금을 많이 낸 순서대로 당첨자가 결정되는 ‘기부금제 분양’이 이뤄졌다.


서울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전경. 1층 입주자가 거실 발코니 전면부 공간을 독점해 쓸 수 있도록 특화 설계한 모습이 보인다. 사진 고성민 기자
서울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전경. 1층 입주자가 거실 발코니 전면부 공간을 독점해 쓸 수 있도록 특화 설계한 모습이 보인다. 사진 고성민 기자

‘성냥갑 아파트’ 상식을 깨다

1988 서울올림픽은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전 세계에 알리는 행사였다. 이 대회를 위해 방이동 66만2196㎡(약 20만 평)에 올림픽선수촌이 지어졌다. 서울시는 아파트 설계를 위해 당시 국내에서 드문 국제현상설계 공모를 진행했다. 공모 입찰서(1984년)는 “단순한 주거공간 제공뿐 아니라, 한국 주거건축문화에 대한 하나의 획기적 전기(轉機)인 동시에 영원히 남겨질 기념비적인 장소적 의미를 갖는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총 39점의 작품이 제출됐고, 황일인 일건건축사사무소 대표와 재미(在美) 건축가 우규승씨의 설계가 이듬해 최종 선정됐다. 기념비적 장소가 되게끔 주동 배치를 부채꼴로 독특하게 설계한 것이 특징이었다.

건축가 우규승씨는 1985년 6월 22일 조선일보에 “부채꼴 방사형을 택한 것은 일직선으로 나열·획일화된 기존 아파트단지의 단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모습의 아파트단지를 만들기 위함이었다”면서 “88 올림픽을 상징하기 위한 기념비적 측면과 쾌적한 주거환경의 조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함께 조화시킨 것”이라고 했다.

평면에서도 독특한 시도가 펼쳐졌다. 전용면적이 62~163㎡(분양 면적 25~64평형)로 다양하고, 49평형 516가구, 50평형 50가구, 53평형 348가구, 64평형 238가구는 복층형이다. 또 1층 입주자가 발코니 전면부 실외 공간을 독점해 쓸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아파트 가운데 최초로 지하주차장도 지었다. 47평형 이상 가구를 대상으로 ‘1가구 1면’, 1면당 285만원에 지하주차장을 함께 의무분양했다. 지금도 이렇게 분양된 주차장이 가구별 전용 주차장으로 쓰인다. 올림픽선수촌 지하주차장에 가보면 주차면 위에 ‘239동 502호’처럼 전용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집주인에게 감사 편지 보낸 선수들

올림픽 기간에 이 선수촌은 대내외 호평을 받았다. 올림픽을 200일 앞두고 선수촌 내부를 미리 둘러본 IOC 관계자들은 “이전까지 비좁은 대학 기숙사 등을 숙소로 이용해온 각국 선수단을 흥분시킬 만한 시설”이라고 평가했다. 고(故) 박세직 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은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선수촌의 주거면적은 1인당 7.5㎡였는데, 서울 선수촌은 1인당 20㎡였다”면서 “역대 올림픽 가운데 주거공간이 가장 넓고 깨끗했다”고 했다.

선수촌에서 묵은 각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림픽선수촌 소유주들에게 ‘편지 쓰기 운동’을 벌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988년 9월 25일 조선일보는 “선수촌의 각국 선수·임원들은 올림픽 기간 중 자신들에게 기꺼이 숙소를 빌려준 올림픽선수촌 소유주들에게 감사의 편지 보내기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쓰고 있는 아파트가 모두 주인이 있는 곳이며, 값도 평당 3000달러(200만원) 선이라는 말을 듣고 감사의 뜻을 전하기로 결정, 쓴 편지를 각 동 입구에서 모으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독특한 분양 방식’ 올림픽 기부금

올림픽 폐막 이후 올림픽선수촌엔 그해 12월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분양은 이보다 앞선 1985년부터였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한 시기에 5540가구를 분양해야 해, 사업 주체인 서울시는 분양 촉진책을 적극 펼쳤다. 당시 1순위는 청약예금 가입 후 9개월이 경과한 사람에게 주어졌는데, 올림픽선수촌은 분양 신청일 이전까지 가입한 사람에게 모두 1순위 자격을 줬다. 재당첨 금지 기간도 민간아파트에서 5년이 부과됐지만 올림픽선수촌은 예외였다. 서울시는 입주자 자녀를 보성고·진명여고에 우선 배정해주겠다고도 홍보했다.

분양가는 34평형이 약 3600만원, 47평형이 약 6300만원, 64평형이 약 8600만원이었다. 아울러 수분양자들은 올림픽 기부금을 필수로 내야 했다. 올림픽선수촌 분양은 ‘기부금부 입찰제’로, 기부금 약정을 많이 한 순서대로 아파트를 분양해주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가구별로 500만~3000만원의 기부금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분양은 1987년 3월부터 1988년 5월까지 5차례, 1년여에 걸쳐 이뤄졌다. 온갖 청약 규제를 풀어 수요자가 몰리며 경쟁률은 높았는데, 기대보다 웃돈이 형성되지 않으며 계약에서 상당수가 포기했다. 미달도 발생했다. 1987년 3월 첫 분양에선 전체 5540가구 가운데 2796가구가 분양에 나서, 908가구(32%)만 분양됐다. 그해 5월 2차 분양에서도 4542가구 중 1458가구(32%), 같은 해 9월 3차 분양에서도 3170가구 중 1328가구(39%)만 분양됐다.

분양 당시인 1987년 6월 기준, 압구정현대 48평형은 시세가 8000만~1억원, 잠실우성 43평형은 7000만~8700만원이었다. 올림픽선수촌 47평형은 주차장 분양가와 올림픽 기부금을 더해 약 7000만~8000만원 수준이었으니 이미 고가 아파트인 셈이다. 올림픽선수촌은 지금도 전용면적 83㎡(34평형)가 24억7000만원에 거래되는 고가 단지다.

올림픽선수촌은 현재 재건축을 추진하며 투자자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입지가 좋고 5540가구 대단지에다 용적률(137%)이 낮아 ‘잠룡(潛龍)’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재건축 연한(30년)을 채웠다. 아직 토지 등 소유자의 과반수 동의를 얻지 못해 추진위원회가 공식 출범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1차 안전진단을 통과했고, 2차 안전진단을 앞두고 있다.

고성민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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