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 뒤편 북악산 남측 면 등산로를 오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4월 6일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 뒤편 북악산 남측 면 등산로를 오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기로 하면서 청와대를 세계적 명소로 만들 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가의 역사를 간직한 대통령 집무실은 외국인 관광 필수 코스다. 경복궁처럼 청와대도 국가적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루브르 모델 vs 세인트제임스 모델

외국에서는 대통령 집무실이나 궁전을 옮긴 사례가 꽤 있다. 궁전에서 박물관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궁전은 궁전대로 두고 공원만 개방한 영국 세인트제임스 파크가 세계적 명소로 부상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은 과거 프랑스 국왕이 쓴 궁전(루브르궁전)을 박물관으로 탈바꿈해 일반에 개방한 사례다. 왕실이 베르사유궁전으로 이사하며 텅 빈 루브르궁전은 왕실 후원을 받는 예술가들이 모인 아틀리에(작업장)로 쓰이다 박물관으로 변신, 세계적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외국에선 이전 집무실을 이 같은 ‘루브르 모델’로 개방한 곳이 많다. 루브르, 영국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불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도 과거 러시아 제국의 ‘겨울궁전’이 박물관으로 변신한 사례다. 대만도 현재의 타이베이 총통부 건물을 쓰기 전 1949년까지 이용한 난징 총통부 건물을 근현대사 박물관으로 용도를 바꿔 개방했다.

청와대도 루브르 모델 도입으로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가 수십 년간 수집한 미술품을 활용해 미술관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건축계에선 이건희 기증관에 들어설 미술품을 아예 청와대에 들여놓자는 의견도 있다. 

대구스타디움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국립경기장, 중국 윈난성 쿤밍 꽃박람회 컨벤션센터 등을 설계한 강철희 홍익대(종합건축사사무소 이상 대표)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다수의 국보급 미술 작품이 있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기증품을 청와대로 들여와 미술관으로 조성하면 역사적 건물이라는 청와대 상징성과도 잘 맞고, 시민들도 큰 관심을 보일 것”이라면서 “기증관을 새로 지을 필요도 없어 미술관 건립 비용까지 줄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루브르 모델과 정반대인 ‘세인트제임스’ 모델도 종종 등장한다. 건물 용도를 바꾸지 않고 국가 소유 제2 공관으로 남기거나 있는 그대로 개방하는 방식이다. 

영국 런던의 세인트제임스궁전은 버킹엄궁전에 왕궁 지위를 내준 뒤 왕립공원을 일반에 개방해 런던 시민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세인트제임스궁전은 여전히 왕실 소유로 개방되지 않았음에도 공원은 런던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박물관 같은 대형 집객 시설이 없음에도 열린 공간으로 사랑받는 장소다. 김기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청와대는 개발보다 보존 방향이 맞다”면서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개방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대통령 기념관 등을 짓는 방안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미국 보스턴 프리덤 트레일(왼쪽·붉은색 실선)과 실제 거리(오른쪽). 사진 프리덤 트레일 재단
미국 보스턴 프리덤 트레일(왼쪽·붉은색 실선)과 실제 거리(오른쪽). 사진 프리덤 트레일 재단

도심 역사·문화 관광벨트 화룡점정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 청와대 인근은 세계적인 명품 관광벨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 도심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과 종묘를 비롯해 경복궁, 광화문 등 명소가 많다. 또 세종문화회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덕수궁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문화·예술 공간도 많다.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는 “미국 ‘보스턴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자유의 길)’ 사례처럼, 청와대 개방을 계기로 서울 도심에 우리 역사를 따라 걸어가는 길을 조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김수근건축연구소에서 일하며 여의도 개발 마스터플랜을 짰고, 최근에는 광화문시민위원회 위원장으로 광화문광장 조성 의견 수렴을 이끌어 왔다. 국립국악당과 한국종합전시장(현 코엑스)도 설계했다.

미국 보스턴에는 프리덤 트레일이 있다. 독립혁명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유적지를 연결한 길이다. 1951년 3월 보스턴 헤럴드 트래블러’의 기자 윌리엄 스코필드가 “적은 예산으로 도시에 개성을 더하고 관광객들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며 유적지를 연결하는 보행 구간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 시초다. 그해 6월 존 하인스 보스턴 시장은 이 제안을 곧바로 정책으로 실현했다. 기존 회색 인도(人道)에는 적갈색, 적갈색 인도에는 회색 벽돌을 깔아 관광객이 이 길을 따라 걷도록 했다.

프리덤 트레일의 길이는 약 4㎞다. 1634년 지어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정원 보스턴 코먼에서 시작한다. 독립전쟁 관련 장소인 올드 사우스 집회소를 거쳐 독립전쟁 전투지인 찰스타운 벙커 힐까지 이어진다. 총 16개 유적을 잇는다. 프리덤 트레일 재단은 연간 2200만 명의 관광객이 보스턴을 방문하며, 이 중 400만 명이 프리덤 트레일을 찾는다고 추산한다. 청와대 인근도 집무실 개방과 함께 우리나라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길을 설계할 수 있다. 종묘, 창덕궁, 광화문, 경복궁, 청와대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방안이다.

김 대표는 “프리덤 트레일은 200년 역사를 담는데, 서울은 전 세계에 유일 ‘500년 왕조’ 조선의 역사를 품고 있고, 고려 남경(서울)의 이궁(수도 밖의 별궁)이 과거 청와대 땅에 건립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려 1000년의 역사”라면서 “광화문과 경복궁에선 이성계와 정도전이 조선을 건국한 이야기, 종묘와 사직단에선 조선 시대 도시계획인 좌묘우사(左廟右社·좌측에 종묘, 우측에 사직단) 이야기, 청와대에선 일제강점기 총독관저가 들어선 이야기 등 희비가 교차하는 이 땅의 흔적을 길을 걸으며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3월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종로구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가 한눈에 보인다. 사진 뉴스1
3월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종로구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가 한눈에 보인다. 사진 뉴스1

조선 왕실 ‘시크릿 가든’도 기대

청와대 개방으로 북악산과 광화문, 용산을 잇는 서울의 남북 녹지 축이 연결되는 것도 관심거리다. 청와대 개방으로 그간 반쪽짜리였던 북악산이 제 모습을 갖추게 되면 서울의 주요 경관 축을 형성하게 된다. 등산객들이 청와대 개방을 기대하는 이유다.

현재 북악산 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삼청공원 후문 이남의 길은 미개방 상태다. 이곳에는 북한의 전투기·탄도 미사일 요격을 위한 군사시설이 배치돼 있고 많은 인력이 청와대를 경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공간까지 개방되면 50년 넘게 막혀있던 공간이 열리고 다양한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서울 ‘걷기 좋은 길’ 조성 자문위원과 ‘걷는 도시, 서울’ 시민위원 등으로 활동한 도보 전문가 손성일 코리아트레일 대표는 “청와대가 개방되면 청와대에서 숙정문 인근까지 등산로 형태로 연결하는 코스가 생길 것”이라면서 “숨겨진 자연환경과 ‘김신조 루트(김신조 사태 당시 서울에 침투한 무장 공비들이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고 도주했던 길)’ 등 볼거리가 많아 상당히 드라마틱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수십 년간 감춰져 있던 ‘시크릿 가든’이 열리는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