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 사우스웨스트 워터프런트 재개발사업인 워프지구. 사진 왼쪽 상단에 워싱턴기념탑과  내셔널 몰이 위치한다. 인근 건물의 높이가 모두 낮다. 사진 디스트릭트 워프(District Wharf) 공식 홈페이지
워싱턴D.C. 사우스웨스트 워터프런트 재개발사업인 워프지구. 사진 왼쪽 상단에 워싱턴기념탑과 내셔널 몰이 위치한다. 인근 건물의 높이가 모두 낮다. 사진 디스트릭트 워프(District Wharf) 공식 홈페이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로 이전하겠다는 방침을 굳히면서 용산에 들어설 새 집무실의 청사진을 두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윤 당선인이 이전(移轉)의 당위성을 ‘소통’에서 찾은 만큼, 새 집무실도 소통이 최우선되는 형태로 구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은 시간 제약상 국방부 청사를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방부 청사가 아니라 새 시대정신을 구현할 집무실과 관저 그리고 공원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당선인 집무실과 용산 주변 개발 프로젝트(왼쪽). 그래픽=이은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공개한 새 대통령 집무실 조감도. 사진 인수위
당선인 집무실과 용산 주변 개발 프로젝트(왼쪽). 그래픽=이은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공개한 새 대통령 집무실 조감도. 사진 인수위

용산, 최고의 입지·상징성…화룡점정은 공간 구조

건축집단엠에이 건축사무소의 유병안 대표는 “대통령의 새 집무실은 △위치 △역사적 상징성 △공간 구조를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유 대표에 따르면, 우선 입지상 용산은 서울 구도심의 외진 곳에 있는 청와대에 비해 역사·문화의 광화문 업무 지구, 금융의 여의도 업무 지구, IT의 강남 업무 지구 등 세 허브(hub) 지역 정가운데 있어 정치·행정 중심지로서 탁월하다. 용산역 근처라 정부 부처가 집중된 세종시에서 접근하기도 광화문보다 더 용이하다.

또 오랜 기간 한반도에 주둔했던 외세의 군영지(軍營地)를 돌려받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공원으로만 활용해서는 역사적 의미가 오히려 퇴색될 수 있으며, 오히려 집무실을 통해 역사적 의미가 완성될 수 있다. 김종헌 배재대 건축학과 교수도 “용산은 19세기 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사의 흐름을 그대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땅”이라면서 “대통령 집무실은 국가의 축이 될 수 있는 만큼, 용산이 국가 상징 축으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했다.

결국 관건은 새 집무실이 어떤 공간 구조를 가지느냐다. 윤 당선인도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새 집무실의 롤모델로 거론되는 곳은 한국처럼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 백악관, 영국 다우닝가 10번지, 일본 총리 집무실 등이다. 유 대표는 “영국·일본은 국왕 등 상징적 국가원수가 따로 있고 총리나 수상은 행정 수반에 그쳐 집무실이나 공관도 정치적 상징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결국 백악관을 심층 검토해야 할 이유다.

미국의 백악관은 대통령과 그 가족이 사는 중앙 관저와 집무실이 있는 웨스트 윙(West Wing), 영부인 집무실과 연회장이 있는 이스트 윙(East Wing)으로 나뉜다. 웨스트 윙 1층에는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와 국무회의실, 핵심 참모들의 사무실, 기자회견장이 모두 모여있어 소통에 최적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백악관 남북에 맞닿은 엘립스 광장과 라파예트 공원은 시민이 아무런 허가 없이 누릴 수 있다.


국방부 청사의 한계…‘관저’와 ‘영빈관’ 포함한 마스터플랜 필요

유 대표는 “소통을 강조하는 명분을 고려하면 건축이 수직적 위계보다 수평적으로 열려있는 형태가 좋다”며 “백악관 역시 높이가 높은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열려있는 형태”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상점들이 나열된 기존의 백화점식 ‘쇼핑센터’가 아니라 액티비티 공간으로 탈바꿈한 스타필드식 ‘쇼핑몰’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오는 5월 초 출범하는 시기에 맞춰 이런 철학을 구현할 집무실을 새로 건축하기는 힘들다. 유 대표는 “현재 국방부는 굉장히 수직적인 형태의 건축물이라 국민과 소통이 쉽지는 않다. 일단 국방부로 이전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새 시대정신을 담을 수 있도록 관저와 영빈관을 포함한 마스터플랜(masterplan)을 공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관저와 영빈관은 ‘국격에 어울릴 만한 현대적 전통 건축물’이어야 한다는 것이 유 대표의 조언이다. 청와대처럼 지붕에 기와만 얹은 형태가 아니라 한옥식 공법과 공간 구조가 제대로 구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옥이 가지는 실내외의 유기적 연결이 새 시대의 수평적 리더십을 상징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관저와 영빈관이 중·장기 프로젝트라면 최대한 빨리 실현할 수 있는 단기 과제는 국방부 청사 주변 공간의 활용이다. 유 대표는 보다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국방부 청사에 외부 공간과 융합된 조경 시설을 제안했다. 한옥의 중앙정원처럼 외부 공간을 건축물 안으로 들이는, 건물이지만 실내라고는 볼 수 없는 공간을 통해 소통 창구를 꾸민다는 것이다.

강철희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도 “미국 백악관처럼 보안을 위한 단절과 시민을 위한 소통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 돼야 할 것”이라면서 “기본적인 경호·보안 시설 등을 갖춰 놓은 만큼 청와대 같은 ‘구중궁궐’이 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적어도 “대통령이 새 집무실에서 시민을 향해 손을 흔들 수 있고, 시민이 그를 직접 볼 수 있는 거리와 구조는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공원이 위치한 남쪽과 업무 부속 시설이 들어설 북쪽의 접근성에 차등을 두는 방식으로 적절한 공간 배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또 “적어도 미디어 노출이 많이 되는 회의실이라도 소통의 이미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면서 “기존의 ‘ㄷ’ 자 테이블은 상석과 참모들의 위계가 드러나는 방식이라 권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ㅇ’ 자 테이블을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대통령과 내각, 비서진 간 수평적 소통에 도움 될 것”이라고 했다.


용산 시대의 완성은 용산공원

물론 집무실만으로도 새 시대정신 절반의 구현이 가능하다. 시대정신을 최종 완성하는 열쇠는 윤 당선인이 올해 반환되는 미군 기지 공간을 활용해 일반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공원이다.

용산공원 종합 기본계획의 책임자였던 배정한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집무실 이전에서) 가장 정확하게 검토해야 할 것은 국방부 부지의 공원화”라고 했다. 이미 명확하게 수립된 용산공원 계획과는 달리, 국방부 청사를 공원화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작업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크기 면에서 서울 최대 규모인 용산공원에 인접해 있다는 점을 활용해 역사성과 문화성, 생태성 등 다양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조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공원 인근은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 D.C.의 경우 내셔널 몰(National Mall)을 중심으로 고도 제한 등 인위적·인공적인 도시의 축을 구성해 사람들이 백악관을 보고 경외감이 들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하지만 도심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용산은 이미 국방부 주변에도 고층 빌딩이 있어 인위적인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

건축그룹칸 종합건축사사무소의 방철린 대표는 “용산은 워싱턴 D.C.와 달리 이미 조성돼 있는 시가지에 집무실이 들어가는 사례라 내셔널 몰처럼 고도 제한을 적용하기는 어렵다”며 “용산 주변은 이촌동 등 아파트들이 꽤 많이 들어선 만큼, 주거 지역보다 업무 지역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