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이즈백 ‘돌아온 진로’ 광고. 사진 하이트진로
진로이즈백 ‘돌아온 진로’ 광고. 사진 하이트진로

두꺼비 캐릭터는 하이트진로 소주의 상징이다. 3년 만에 10억 병이 팔린 하이트진로의 효자 상품 ‘진로이즈백’의 인기에는 두꺼비 캐릭터의 힘이 컸다. 노트와 펜, 병따개, 슬리퍼 등 다양한 굿즈가 출시될 정도로 두꺼비 캐릭터의 인기는 높다.

그러나 두꺼비 캐릭터를 업고 승승장구하던 하이트진로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지난 2020년 디자이너 A씨가 하이트진로에 ‘자신이 두꺼비 캐릭터의 원조’라는 내용을 담은 ‘경고장’을 보냈기 때문이다. A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하이트진로는 두꺼비 캐릭터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거나, 디자인 실시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후 A씨가 특허심판원에 심판을 제기하면서 하이트진로와 다툼이 시작됐다. 하지만 특허심판원은 1년 6개월간의 심결 끝에 하이트진로의 손을 들어줬다. 하이트진로를 대리한 법무법인 지평은 두 디자인 간의 유사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A씨의 청구를 기각시켰다.


두꺼비 캐릭터로 승승장구한 하이트진로… “마스코트 뺏길 뻔”

하이트진로의 두꺼비 캐릭터는 1959년 광고 영상에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깊은 캐릭터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진로 소주병 디자인을 바꾸면서 두꺼비 캐릭터도 모습이 달라졌다. 하이트진로는 1983년 두꺼비 캐릭터로 상표를 출원하고 등록했다. 하이트진로는 레트로(retro·복고) 열풍이 불던 2019년 현재의 짧은 팔다리와 튀어나온 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한 두꺼비 캐릭터를 내놨다.

여자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우던 소주 업계의 관행을 깨고 등장한 두꺼비 캐릭터는 발표와 동시에 인기를 끌었다. 두꺼비 캐릭터가 그려진 소주잔과 인형 등의 굿즈를 판매하는 국내 최초 주류 캐릭터숍 ‘두껍상회’가 탄생할 정도였다. 두껍상회를 찾은 누적 방문객은 18만 명에 달한다. 두꺼비는 작년 이종 업계와 협업해 캐릭터 상품 80여 종을 제작했고, 올해도 협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문제는 A씨가 두꺼비 캐릭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A씨는 2014년 1월 개구리 완구 디자인을 출원했고, 2015년 4월 디자인이 등록됐다. 하이트진로가 두꺼비 캐릭터를 이용해 2019년부터 마케팅을 시작하자 A씨는 2020년 6월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권리를 보호해달라며 특허심판원에 권리범위확인 심판을 청구했다.

A씨는 양서류 형태의 완구 디자인 분야에서 형태적 흐름을 참고할 때 창작의 공통점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두꺼비 캐릭터의 얼굴과 몸통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곡선’으로 이뤄진 형상은 기존에 없는 참신한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양손을 배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개구리 눈이 반구형으로 돌출된 점, 입이 길게 이어진 점 등이 공통점이라고 했다.

특허심판원이 두꺼비 캐릭터 권리가 A씨에게 있다고 인정한다면, 하이트진로에는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지평의 허종(제1회 변호사시험) 변호사는 “하이트진로가 두꺼비 디자인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캐릭터 사업으로 발생하는 매출의 일정 비율을 A씨에게 지급하게 될 경우 큰 타격이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캐릭터 간 ‘유사 범위’ 좁힌 법무법인 지평

소송을 당한 하이트진로 측을 대리한 지평은 ‘디자인 무효항변’과 ‘비침해항변’을 동시에 제기했다. ‘디자인 무효항변’은 A씨의 등록 디자인이 출원되기 전 이미 비슷한 디자인이 출시돼 등록 디자인 자체가 무효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침해항변’은 이미 등록된 디자인이라고 할지라도 A씨의 캐릭터와 하이트진로의 두꺼비 캐릭터는 형상이 다르다고 다투는 것이 목적이다.

지평은 2009년 한 블로그에 올라온 ‘개구리 왕자 막대인형’과 2014년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판매한 ‘청개구리 요가 피규어’ 디자인이 A씨의 디자인이 등록되기 전 시장에 먼저 공개됐다는 사실을 특허심판원에 주장했다. A씨의 디자인권이 무효라고 변론한 것이다.

비침해항변을 위해 디자인보호법도 파헤쳤다. 디자인보호법 제92조에는 ‘디자인권자는 업으로서 등록 디자인 또는 이와 유사한 디자인을 실시할 권리를 독점한다’고 명시돼 있다. 지평은 디자인권의 권리 범위를 좁게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가 주장한 두 디자인의 공통점은 양서류의 특징일 뿐이기에 나머지 부분의 유사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평은 “두 디자인의 공통된 부분이 그 물품으로서 당연히 있어야 할 부분 또는 디자인의 기본적, 기능적 형태인 경우에는 중요도를 낮게 평가해야 하므로 이러한 부분이 동일·유사하다는 사정만으로는 두 디자인이 동일·유사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비침해항변 인정한 특허심판원…“기업 정체성 지켜”

특허심판원은 소비자가 두 디자인을 혼동할 우려가 없다고 봤다. 두꺼비 캐릭터에 ‘진로’ 로고가 붙은 점도 차별점이라고 꼽았다. 특허심판원은 “형태적 창작 모티브를 A씨는 개구리, 하이트진로는 두꺼비로 삼았다”면서 “A씨의 디자인은 뒷발을 길게 펴고 서 있는 개구리 형상으로 날렵한 미감을 형성한 반면, 하이트진로는 두툼한 몸체의 두꺼비가 양발을 앞으로 뻗고 웅크려 앉은 형상으로 친근함 내지는 진중한 미감을 형성한다”고 판단했다.

두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친근한 자연물인 양서류를 창작 모티브로 삼았지만, 이 같은 디자인은 인형이나 완구 등의 물품에 오래전부터 사용된 점도 판단 근거가 됐다. 두 디자인을 비교할 때 유사 범위의 폭을 좁게 봐야 한다는 지평의 주장을 특허심판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게다가 특허심판원은 두 디자인의 차이점을 인정한 비침해항변이 유효해 굳이 디자인 무효항변을 따져볼 필요가 없다고 봤다. 특허심판원은 “다년간 두꺼비 캐릭터가 소주 등의 물품에 사용돼 소비자가 A씨의 디자인과 두꺼비 캐릭터를 혼동할 우려는 없다”면서 “두 디자인은 미감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비유사한 디자인”이라고 했다.

사건을 승소로 이끈 허종, 황지현(제7회 변호사시험) 변호사는 지평의 지식재산(IP)·정보기술(IT)그룹에 속한 변호사다. 두 변호사는 변리사 자격도 가지고 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특허, 저작, 상표, 디자인, 부정경쟁방지 등의 자문과 소송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허 변호사는 “최근 기업들이 대중에게 브랜드의 친숙함을 보여주기 위해 동물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면서 “동물이라면 갖춰야 할 형상적 특징이 있는데, 해당 부분만으로 디자인권이 침해되지 않고 차별성 있는 창작 디자인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심결”이라고 말했다. 황 변호사는 “하이트진로는 수십 년간 두꺼비 로고를 사용해온 기업”이라며 “기업의 아이덴티티(identity·정체성)를 지킬 수 있게 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A씨(파이특허법률사무소 대리)가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권리를 고수하면서 양측의 법리 싸움은 2심 격인 특허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