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고혈압 신약 ‘듀카브’. 사진 보령
보령의 고혈압 신약 ‘듀카브’. 사진 보령

제약 분야 특허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의약품 생산과 공급의 권리를 갖는 제약 주권이란 용어가 이를 뒷받침한다. 제약·바이오 분야의 기술력이 미흡한 인도 사례를 예로 들면 인도 국민은 결핵의 기본 치료비가 1인당 100만원이 넘어, 약 280만 명에 달하는 환자 중 일부만 혜택을 보고 있다.

신약 개발은 신약 물질 발굴에서부터 임상시험, 최종 승인까지 10년 이상 걸리고, 비용도 1조원 이상 들어가기에 기업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분야다. 더군다나 신약은 실패 확률이 높아 기업 입장에서 위험 부담이 크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글로벌 제약사의 신약을 위탁 생산하고, 특허 보호 기간이 지나면 제네릭(복제약)을 만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신약 연구개발(R&D)의 불모지로 꼽히는 우리나라에서 보령(옛 보령제약)은 고혈압 신약인 ‘듀카브’를 개발해 2016년 출시했다. 연 매출 1000억원을 넘는 대형 블록버스터 카나브(성분명 피마사르탄)에 암로디핀이란 성분을 조합해 알약 형태로 만든 제품이다. 듀카브는 올해 450억원대 매출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기대작이다.

듀카브가 상당한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자 국내 제약사들은 특허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제네릭 출시를 시도했다. 일반 공산품과 달리 제약 분야는 특허 분쟁을 해결해야 제네릭을 허가해 주는데, 이를 허가 특허 연계 제도라고 한다. 이는 제약 업체가 제네릭 허가 신청 시 신청 사실을 특허권자에게 통보하고 이에 대해 특허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특허 분쟁이 해결될 때까지 제네릭의 제조와 시판을 유보하는 제도다.

알리코제약과 신풍제약, 에이치엘비제약, 한국휴텍스제약은 지난해 3월 제네릭 특허 사건 수임 건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골드제이특허법률사무소를 선임해 보령을 상대로 소극적 권리 범위 확인 심판을 청구했다. 보령은 약사 출신의 박금낭(사법연수원 31기) 변호사가 이끄는 법무법인 광장의 헬스케어팀을 방패로 내세웠다.

소극적 권리 범위 확인 심판은 기업이 개발하려는 제품이 특허권자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특허심판원을 통해 입증받는 분쟁 방식이다. 자신들이 개발 중인 제네릭이 보령의 듀카브 특허의 권리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해 달라는 주장이다. 보통 심판을 청구하는 쪽이 치밀하게 증거를 모은 뒤 공세에 나서기 때문에 특허권을 가진 쪽이 이긴 사례는 1% 미만이다.

그러나 특허심판원은 지난 3월 알리코제약 등 네 개 기업의 사건을 심리한 뒤 제네릭사의 복제약이 듀카브 특허를 침해한다는 취지의 심결을 내렸다. 이번 심결은 국내 제약사가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한 대규모 제네릭사의 도전을 방어한 최초의 사건이자 한국 제약사의 의약품에 대한 특허의 균등침해를 인정한 첫 사례다. 업계에서는 남은 40개 기업의 심판 사건도 이번 심결의 기준을 따를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알리코제약 등 제네릭사들은 특허심판원의 소극적 권리 범위 확인 심판 과정에서 ‘금반언의 원칙(출원 경과 참작의 원칙)’을 주장했다. 이는 특허권자가 특허 출원 절차 과정 중 한 번 의견을 개진해 권리 범위에서 제외한 사항은 등록 이후에 다시 권리 범위에 속한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보령이 특허 심사 과정에서 기존 특허 청구항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고 일부는 삭제했는데, 최종적으로 특허 출원 명세서에 기재된 청구항의 문언대로만 해석해 권리 범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령은 듀카브의 특허를 등록하면서 청구항 1번에 ‘안지오텐신-2-수용제 차단제로서 피마살탄 칼륨염 또는 이의 수화물 및 칼슘 차단제로서 암로디핀 베실레이트염을 포함하는 혈압 강하용 약제학적 조성물’로 기재했고, 이후 특허 출원을 위한 심사 과정에서 ‘피마살탄 칼륨염 또는 이의 수화물 30㎎ 및 칼슘 채널 차단제로서 암로디핀 베실레이트염 5㎎’이란 구체적 용량을 담으면서 범위를 축소했다.

알리코제약 등은 해당 청구항의 축소 변경을 근거로 내세웠다. 특허법상 특허 발명의 보호 범위는 청구 범위에 기재된 사항에 의해서 정해지는데, 침해 제품이 특허 발명의 청구 범위에 기재된 모든 구성요소와 그 유기적 결합 관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야 원칙적으로 침해에 해당한다는 ‘문언 침해’를 주장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제네릭이 보령이 청구항에 기재한 용량에서만 벗어나면 권리 범위를 비침해하는 것이라며 “특허 출원 과정에서 권리 범위를 축소한 이상 그 축소한 내용은 권리 범위에서 제외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허 출원인이 특허심사관의 거절 이유를 회피하기 위해 청구항을 축소 보정한 경우 등록 후 이미 감축한 부분에 대해서는 침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광장은 균등침해 법리로 반격했다. 이는 특허 발명의 실질적 가치를 보호하고 문언 침해에 따른 판단만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나타나게 되는 불합리성을 보완하기 위해 인정되는 법리다. 대법원은 균등침해와 관련해 명세서에 적힌 발명의 상세한 설명 기재와 출원 당시의 공지 기술 등을 참작해 선행 기술과 대비해 볼 때 특허 발명에 특유한 해결 수단이 기초하고 있는 기술 사상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실질적으로 탐구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광장은 듀카브 이전의 선행 기술에 대한 명확한 해석 기준을 제시하면서 듀카브 특허가 관련 기술 분야에 기여한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큰 발명은 크게 보호하고, 작은 발명은 작게 보호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균등침해 법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또 다국적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이 우리나라에서 허가받은 사례를 통해 듀카브 특허항을 축소하거나 삭제한 부분은 화학 구조상 ‘통상의 기술 상식’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특허심판원은 “알리코제약 등의 제네릭이 보령의 듀카브 특허 청구항의 문언을 그대로 침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듀카브의 핵심적 기술 사상을 고려하면 제네릭이 듀카브 특허로부터 변경한 부분은 통상의 기술자가 어려움 없이 변경한 것에 불과하다”며 “특허 심사 과정에서 보령이 권리 범위를 축소했더라도 제네릭을 권리 범위에서 제외하려는 의사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박금낭 변호사는 “국내 제약사가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 특허권자로 승리한 최초의 사건이며 나아가 국산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해 이 정도로 큰 규모의 제네릭사가 도전한 것도 전례가 없는 사례”라며 “이번 심결로 보령은 연 매출 1000억원이 넘는 대형 블록버스터 카나브 패밀리에 대한 첫 번째 제네릭 도전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특허심판원은 5월 23일 하나제약·환인제약·한국유니온제약이 보령을 상대로 제기한 듀카브 특허에 대한 소극적 권리 범위 확인 심판에서도 청구 기각 심결을 내렸다. 나머지 제약사가 청구한 소극적 권리 범위 확인 심판 결과는 6월 중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김종용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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