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석  한영석의 발효연구소 대표 누룩 명인 1호 사진 박순욱 기자
한영석 한영석의 발효연구소 대표 누룩 명인 1호 사진 박순욱 기자

“한영석 청명주 한 잔은 농익은 사과즙을 마시는 느낌이다. 가벼운 단맛과 풍만한 산미의 조화가 청명주의 이름에 걸맞은 맛과 향을 준다.(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

2022년 봄에 출시한 한영석 청명주가 전통주 시장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전통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한영석 청명주 마셔봤니?” “깜짝 놀랐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약주는 처음이야” “양이 적어서(375mL) 너무 불만이야” 이런 말들을 주고받기 바쁘다. 

청명주는 원래 충주 청명주가 유명하다. 충북 무형문화재 제2호인 충주 청명주는 김영섭 청명주 기능보유자가 만들어온 약주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신제품 청명주는 전북 정읍의 ‘한영석의 발효연구소’ 한영석 대표가 빚은 술이다. 그래서 기존 충주 청명주와 구분하기 쉽게 한영석 청명주로 불린다. 청명주는 특정인만 만들 수 있는 술은 아니며, 옛 문헌에 주방문(제조법, 레시피)이 나와 있는 전통술이다. 우리 조상들이 24절기 가운데 하나인 청명에 담가 먹었던 술인데, 찹쌀로 두 번 빚는 이양주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이익 선생이 저서 ‘성호사설’에서 “나는 청명주를 가장 좋아한다”며 주방문을 ‘성호사설’에 적어놓았을 정도로 즐겨 마셨던 술로도 유명하다. 

한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누룩 명인’이다. 한 대표는 척수염을 앓으면서 발효식품에 관심을 두게 됐고, 2010년 식초 만들기를 시작으로 2011년 술 빚기, 누룩 만드는 방법 등을 익혔다. 

누룩 만들어온 지 10년 만인 2020년 7월 누룩 명인으로 지정됐으며 술 빚은 지 12년 만에 자신의 술 ‘한영석 청명주’를 2022년 봄에 내놓았다. 누룩 명인 한 대표는 전북 정읍의 양조장을 찾아간 기자를 누룩 발효실로 먼저 안내했다. 

한영석 대표가 무게가 6㎏ 되는  대형 누룩을 선보이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추진 중인 한국형 고량주를 만드는 데  쓰이는 누룩이다. 사진 박순욱 기자
한영석 대표가 무게가 6㎏ 되는 대형 누룩을 선보이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추진 중인 한국형 고량주를 만드는 데 쓰이는 누룩이다. 사진 박순욱 기자

누룩실 내부 온도는 30도에 가까웠다. 누룩이 한여름을 나는 중이었다. 습도 역시 90%가 넘어 잠깐이라도 버티기가 힘들 정도였다. 한 대표는 “누룩실은 장마가 끝나는 초복에서 초가을까지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옮겨놓았다”고 말했다. 초복에서 초가을까지 90일간의 기온과 습도 변화를 절반의 기간인 45일로 압축해서 누룩실에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누룩을 처음 띄울 때는 초복이고, 누룩 띄우기가 끝날 즈음이 초가을인데, 그동안의 계절 변화를 누룩실에 옮겨놓은 것이다. 자동으로 온도, 습도, 바람, 공기까지 계절에 맞게끔 조정해두었기 때문에 일 년 내내 누룩 띄우기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한영석 누룩은 ‘자연 발효 누룩’이다. 

그렇다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한영석 청명주는 어떤 누룩을 쓸까? 네 가지 누룩을 번갈아 가며 사용한다. 첫 번째 생산에는 쌀누룩을, 두 번째는 향미주국을 쓴다. 그밖에 녹두국, 향온국도 사용한다. 쌀누룩을 쓴 청명주와 향미주국을 쓴 청명주는 미세하게 향과 맛이 다르다. 그러나 청명주의 특징인 ‘맑은 산미’는 어느 누룩을 사용하더라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한영석 청명주가 지향하는 산미는 가볍다. 청명주 한 잔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을 즈음에는 산미가 입안에 맴돌지 않을 정도로 짧다. 

사과를 한입 베어 먹으면 신맛이 나지만, 사과를 다 먹고 나서는 신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청명주 역시 술을 마시고 나서는 입안에 신맛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가볍다. 

한영석 청명주의 신맛(산미)을 얘기할 때 누룩 말고도 빼놓으면 안 되는 게 있다. ‘저온발효’다. 청명주의 가벼운 신맛, 초보자도 좋아하는 신맛은 좋은 누룩을 쓴 탓이 크지만, 상큼한 신맛을 결정짓는 것은 저온발효다. 

그리고 세 번째로 언급할 한영석 청명주 비결(가벼운 산미)은 산장법(쌀을 고두밥으로 찌기 전에, 물에 오래 불리는 것)이다. 우선 밑술보다 덧술 준비를 먼저 시작한다. 덧술에 쓸 찹쌀을 물에 담가둔다. 여름에는 3일, 겨울에는 거의 10일간 물에 담가둔다. 쌀을 살짝 삭히는 정도다. 이것이 산장법, 쌀 침지법이다. 이렇게 하면 술에 깔끔한 산미가 생긴다는 게 한 대표의 설명이다. 5년 전 정읍으로 발효연구소를 옮길 때만 해도 한 대표는 양조장을 차릴 계획은 없었다고 한다. 수원에서 시작했던 누룩 공방 규모를 키울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과 정성을 다해 띄운 한영석 누룩이 정작 시장에서는 제값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또, 한 가지 누룩 명인 한영석 대표를 절망케 한 사실은 ‘전통 누룩은 전통주를 대량으로 만드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근거 없는 얘기였다. 

전통 누룩으로 술을 빚으면, 역겨운 누룩취가 많다는 말도 떠돌았다. 그래서 한 대표는 고민 끝에 ‘전통 누룩으로 얼마든지 좋은 술을, 그것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전통주를 만들기로 하고, 그 첫 작품으로 한영석 청명주를 만든 것이다. 한 대표의 설명이다. 

“아무리 내가 만든 누룩이 좋다고 설명해도, 양조장 대표들이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영석 누룩이 좋다는 것을 말로만 얘기하지 말고, 술을 만들어 술맛으로 평가받게 하자는 게 청명주를 만든 의도였다. 술맛이 좋으면 그 술에 쓰인 누룩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이번에 한영석 청명주가 각광을 받았던 이유도, 누룩을 자연 발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갖가지 향들이 술에 잘 스며 있기 때문이다. 한영석의 술들은 한영석의 누룩을 쓰기 때문에, 자연 발효에서 나오는 독특한 특징들이 있다. 맛의 특징도 있다. 누룩의 자연 발효 때문에 나오는 향긋한 견과류의 향이 있다. 이게 다 누룩 관련이다. ‘좋은 누룩을 써야 좋은 술이 빚어진다’는 것을 청명주가 말해주고 있다. 

한영석 누룩이 다르다는 것을, 한영석 누룩으로 만든 술로 보여주고 싶었다. 누룩 자체로는 비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차피 누룩은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한 중요 재료이기 때문에 완성품인 술로 (어떤 누룩이 좋은지) 승부가 난다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한영석 청명주 출시 이후 누룩도 더 많이 팔리고 있다.”

한 대표는 청명주 성공에 힘입어 하향주, 동정춘, 호산춘, 백수환동주 등 다음에 내놓을 술들도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다. ‘발효 전문가’ 한 대표의 관심은 술에만 있는 게 아니다. 누룩이 들어간 된장, 소금, 고추장 같은 발효 조미료 생산도 곧 시작한다. 기술이전을 통해 마을공동체에서 위탁생산할 예정이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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