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레저 대시보드 화면. 사진 젠레저 홈페이지
젠레저 대시보드 화면. 사진 젠레저 홈페이지
박순우 메인스트리트인베스트먼트 대표 전 한빛소프트 해외 마케팅 상무, 전 더나인 부사장, 전 알리바바 게임담당 총괄이사, 전 LB인베스트먼트 중국법인 대표
박순우 메인스트리트인베스트먼트 대표 전 한빛소프트 해외 마케팅 상무, 전 더나인 부사장, 전 알리바바 게임담당 총괄이사, 전 LB인베스트먼트 중국법인 대표

디지털자산 기본법 입법을 통해 비트코인,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 등 가상자산으로 발생한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리해 250만원이 넘는 수익금에 대해 20%의 세금이 2024년부터 부과된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자들은 매년 5월에 직전 1년치 거래 소득을 직접 신고해 세금을 납부하게 됐다. 2021년 국내 암호화폐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은 11조3000억원으로 국내 코스닥 거래 대금(11조80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대표적인 가상자산인 암호화폐 투자 인구도 5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수많은 NFT, 코인, 토큰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가상자산 거래량은 더욱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영국 등 주요국 정부 역시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위해 규제 및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지만, 시행 초기이다 보니 기준과 범위가 모호해 투자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가상자산으로 발생한 소득을 잘못 계산해 신고해야 할 금액보다 적거나 초과한 금액을 납부할 경우 발생되는 책임은 전적으로 투자자의 몫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세금 신고 부담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2021년 미국 국세청(IRS)이 본격적으로 암호화폐 과세를 시작함에 따라 현재 미국에서는 투자자의 거래 내역을 소프트웨어로 정리해서 국세청이 제시하는 과세 기준에 맞게 발생한 이익, 손실과 세액을 계산해주는 암호화폐 세금 신고 소프트웨어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400개 거래소 내역 통합, 세금 신고까지 30분

 

2017년 미국 워싱턴주에 설립된 젠레저(ZenLedger)는 암호화폐 세금 신고 소프트웨어 전문 스타트업이다. 암호화폐 세금 신고 소프트웨어란 암호화폐로 발생한 손익을 계산하여 세금 신고 및 납부, 내역 관리 등을 편리하게 해주는 서비스로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국세청 홈택스에서 제공하는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의 암호화폐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미국은 2014년부터 가상자산 양도소득에도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이런 스타트업이 등장할 수 있었다. 

얼핏 생각하기엔 투자자들이 직접 국세청에 신고하면 해결될 일을 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암호화폐 세계에서는 홈택스처럼 모든 거래 내역을 한꺼번에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중앙거래소가 없다. 투자자들이 저마다 다양한 거래소들과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같은 다양한 암호화폐 지갑, 서로 다른 곳에서 발행된 NFT들을 각각 거래하기 때문에, 이들 거래 내역에 대한 투자 원금과 이익, 손실 등을 모두 추적해 계산하고 회계 처리하기란 쉽지 않다. 젠레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양의 복잡한 거래들을 한꺼번에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분석 솔루션을 개발했다. 

젠레저는 주로 개인 투자자와 그들을 대리하는 회계사, 세무사들을 겨냥한 서비스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 중 가장 많은 규모인 400개 이상의 거래소, 40개 이상의 블록체인, 20개 이상의 암호화폐 지갑과 직접 통합적으로 연동돼 있다. 

덕분에 이용자들이 손쉽게 자신이 거래했던 내역들을 불러올 수 있다. 연동돼 있지 않은 거래소나 지갑의 경우에도 수동으로 입력이 가능하다. 그 결과 젠레저 이용자들은 자신이 이용하는 모든 거래소와 지갑에서 발생한 거래 내역을 하나의 시트로 정리해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보유 자산 현황과 거래 수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젠레저에서 얻은 거래 내역 데이터를 세무 전문가에게 보내서 세금 신고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연말정산 소득세 신고 소프트웨어인 터보텍스(Turbo tax)와 연동 기능을 이용해 이용자가 직접 세금을 신고할 경우, 30분 이내에 모든 신고 절차가 완료되기 때문에 젠레저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이용 요금은 연간 거래 건수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연간 5000건의 거래 내역을 지원하는 요금제(149달러·약 19만원)를 이용하는 이용자가 많다. 


암호화폐 범죄 수사에도 활용

젠레저는 배츠(Bats)라는 서비스를 통해 정부 기관을 대상으로 암호화폐 거래 추적 소프트웨어도 제공하고 있다. 해당 서비스는 암호화폐 자산의 거래를 추적할 수 있어 암호화폐 거래와 관련한 범죄 추적 등의 업무에 사용된다. 테러리스트, 마피아 등의 자금 세탁과 탈세, 무기, 마약 등 거래와 인신매매 등의 범죄에 암호화폐를 통한 결제가 많이 사용돼 미국 국세청에서는 젠레저의 배츠 서비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을 비롯한 연방 정부 기관은 물론 주(州) 정부에서도 젠레저의 도입을 검토 중이다. 

거래 내역 수집 및 분석 자동화가 가능해 암호화폐 거래 추적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고,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형적인 거래 패턴을 분석해 비정상적인 거래를 포착할 수 있다는 점이 배츠의 강점으로 꼽힌다. 젠레저는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260만달러(약 3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2021년 같은 기간 대비 260% 성장한 수치다. 

벤처 업계에 따르면, 최근 진행된 투자 라운드에서 젠레저의 기업 가치가 8000만달러(약 1019억원) 정도로 평가됐다.

창업한 지 5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젠레저는 ‘투자자들이 부담 없이 투자할 수 있도록 돕자’는 사업의 본질에 집중한 덕에 암호화폐 세금 신고에 있어 필수적인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암호화폐 산업의 성장을 곧 회사 매출 성장으로 인식한 결과다. 젠레저는 미국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 진입도 준비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암호화폐 시장은 루나(Luna) 사태 등으로 혼돈 상황이다. 젠레저 같은 암호화폐 산업을 건강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기업이 한국에도 등장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