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웅 변호사 서울대 독어독문학,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사진 남희웅법률사무소
남희웅 변호사 서울대 독어독문학,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사진 남희웅법률사무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물’, 코웨이 하면 소비자가 떠올리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시장에서 오랜 기간 ‘깨끗한 정수기’로 자리매김했던 2016년, 코웨이(당시 웅진코웨이)를 향한 소비자의 분노가 빗발쳤다. 얼음정수기에서 중금속이 발견됐고, 이를 알고 있었던 코웨이가 1년 가까이 숨긴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크게 분노한 약 2500명의 소비자가 집단소송에 나섰다. 코웨이를 상대로 한 같은 소송 내용이었지만, 세 건의 집단소송이 진행됐다. 국내 재판 특성상 기판력(소송효력)이 소송 당사자에게만 미치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피해자가 잇달아 집단소송을 낸 건이다. 편의상 시간적 재판 접수 순서에 따라 1·2·3차 소송으로 구분한다.

6년여가 흐른 올해 5월 26일 이 사건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코웨이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근거는 계약서상 채무불이행에 해당하는 ‘고지의무 위반’이다. 코웨이가 소비자(정수기 계약자)에게 알릴 의무를 저버렸다는 취지다. 특히 이 판결과 같은 내용으로, 같은 날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도 판단을 내놨다. 1·2·3차 소송 최종심에서 모두 같은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코웨이는 문제가 생긴 정수기 계약자에게 각각 100만원씩을 배상하게 됐다. 더군다나 문제가 생긴 얼음정수기 모델은 약 8만7000여 대가 팔렸는데, 이를 구매한 소비자 모두가 소송하면 동일한 판결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016년 8월 서울 중구 코웨이 본사 정문 앞에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코웨이의 얼음정수기 사태 책임 회피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2016년 8월 서울 중구 코웨이 본사 정문 앞에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코웨이의 얼음정수기 사태 책임 회피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알고도 숨긴 코웨이, 은폐는 얼마 못 갔다”

2015년 8월, 코웨이는 소비자 제보로 판매 중이던 얼음정수기 세 개 모델(한뼘얼음정수기·커피얼음정수기·스파클링아이스정수기)에서 니켈(섭취 시 암 유발 가능성이 있는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것을 인지했다. 모두 회수해 보니 에바(증발기·얼음을 만들어내는 부품)의 색이 변하면서 도금이 벗겨졌고, 니켈이 검출된 것이다. 직원들이 사용하던 정수기 20여 대에서도 니켈이 나왔다. 하지만 코웨이는 소비자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동시에 코디(정수기 점검·관리 등 서비스를 해주는 직원)를 소비자에게 보내 “정수기 성능을 업그레이드해준다”며 정수기 에바에 거름망을 씌운 것이다. 이 작업은 2015년과 2016년에 걸쳐 진행됐는데, 코디들은 소비자에게 얼음이나 물에 니켈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후 코웨이가 해당 모델 1010대의 수질을 조사해본 결과 90% 이상에서 니켈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7월 언론을 통해 모든 사실이 낱낱이 공개된 뒤에야 코웨이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해당 보도에 대한 원론적 내용이었다. 문제가 생긴 제품은 생산된 제품 중 일부이고, 1년 전부터 안전장치를 설치해 97% 이상 문제없도록 조치한 데다, 사용료를 반환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민관 합동 제품결함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들어갔고, 문제가 발생한 모델의 정수기 100대 중 22대에서 니켈 도금이 벗겨지는 손상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엇갈린 1심 판결

남희웅(남희웅법률사무소) 변호사는 1심에서 제조물 책임법 위반, 민법 제750조상 불법행위, 민법 제390조상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코웨이 측은 니켈이 검출된 제품은 단 한 대로 제조물 결함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니켈은 어떤 자연환경에서도 미세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독성물질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맞선 것이다.

주장이 첨예하게 갈린 만큼 결과도 갈렸다. 우선 1차 소송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당시 부장판사 김동진)는 2018년 11월 남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결함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전제돼야 하지만, 인정하기 어렵다”며 제조물 책임법 위반·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주장을 기각했다. 다만 “하자가 발생했고, 계약(렌털 계약)의 목적 달성을 위해 계약 당사자가 해야 할 고지의무를 저버렸다”며 100만원을 배상토록 판결했다. 하지만 2차 소송 1심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당시 부장판사 김인택)는 원고의 모든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들이 사용한 정수기에서 니켈이 검출됐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코웨이가 사후 조치를 한 점 등이 근거였다. 3차 소송 1심에서는 남 변호사가 이겼다.


일부 주장 포기가 2심 승소 이끌어

2심에서 남 변호사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남 변호사가 1차 소송의 2심에서 주위적 청구(원고의 주된 재판 청구 원인)를 포기한 것이다. 주위적 청구는 제조물 책임법 위반과 민법상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이었는데, 재판부별 판단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에 남 변호사는 계약상 채무불이행 책임을 묻기 위해 ‘고지의무 위반’만을 강조하면서 청구 액수를 줄였다. 또 자신의 소송인단에 포함된 원고뿐만 아니라, 문제가 된 정수기를 구매한 약 8만7000명 전체 소비자를 고려한 영향도 있다. 승소 판결을 받음으로써 이 사건으로 피해 본 모든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남 변호사는 “소비자가 코웨이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건강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며 “특히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코웨이에 고도의 책임이 있으며 ‘깨끗한 수질’을 광고한 코웨이는 철저하게 고지하고 알려야 했다”고 주장했다. 1차 소송의 2심을 심리한 서울고법 민사12-1부(부장판사 천대엽)는 남 변호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계약은 사용 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그 안전성·신뢰성을 책임짐으로써 깨끗한 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는 코웨이의 약속”이라며 “이에 따라 고지의무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소비자가 니켈 검출 사실을 알았더라면 문제 된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며 “정당한 선택의 기회를 상실한 데 따른 소비자의 상당한 정신적 충격 등을 손해 발생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2·3차 소송의 2심도 천 부장판사의 결론과 같은 판단을 내놨다. 

1차 소송의 2심을 심리한 당시 천 부장판사(현 대법관)가 재판 과정에서 “이 사건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면, 8만7000대에 대해서 판결하는 것과 같다”며 “8만7000명의 원고가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언급함에 따라 선택과 집중을 위해 주위적 청구를 포기했다는 것이 남 변호사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