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선 한화솔루션 실장, 임세령 대상그룹 부회장 등 재벌 3세들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식당이 젊은층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유학 시절 맛집을 경험한 이들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와 관련 없이 독립적으로 식당을 열고 소셜미디어(SNS)에서 적극 홍보하고 있다. 외식 업계에서는 “자주 다니며 많이 먹어본 사람들이 요리를 잘한다는 말이 있다”며 “자본력 있는 재벌 3세가 수준 높은 문화를 경험하고 외식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통 업계에 따르면 김동선 실장은 서울 종로 소격동에서 일식당 스기모토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 사진가 스기모토 히로시에게 영감을 받아 작년 7월 식당을 열었다. 수십 년간 심도 있는 작품을 선보이는 사진가처럼 장인 정신을 추구하는 요리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100% 예약제로 맡김차림(오마카세) 기준 점심 12만원, 저녁 20만원 수준이다. 고등어 봉초밥, 지라시 스시(그릇에 생선, 달걀 부침, 채소 등 다양한 재료를 흩뿌리듯 올린 초밥) 등의 메뉴가 있으며 사케와 샴페인 등을 판매한다. 김동선 실장은 지난 3월 말 자신의 SNS 계정에 초밥 사진을 올리고 “배달합니다. 많이 이용해주세요”라는 글을 게시했다.
김동선 실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미국 다트머스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2014년 한화건설에 입사했다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2017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후 독일로 건너가 식당 개업을 준비했다. 당시 현지 인터뷰에서 “아시아 요리의 창조적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김 실장은 2020년 한화에너지 상무로 복귀해 작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로 선임됐다. 올해 2월 한화솔루션 갤러리아 부문 신사업전략실장으로 발령 났다. 김 실장은 승마 국가대표로 활동했는데 그룹 내에서 승마를 프리미엄 레저 사업으로 확대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에게 석유화학·태양광 사업을,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에게 금융 사업을, 김 실장에게 호텔·레저·유통 사업을 각각 넘기는 방향으로 경영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세령 부회장은 서울 청담동에서 프랑스 식당 메종 드 라 카테고리를 운영하고 있다. 2013년 문을 연 이곳은 배우 이정재 맛집이자 임 부회장의 동생인 임상민 대상그룹 전무가 결혼 당시 상견례를 했던 장소로 알려졌다. 스테이크가 포함된 코스 등 식사부터 디저트까지 맛있는 프랑스 식당을 표방한다. 2020년 미슐랭 가이드 맛집으로 선정됐다. 최근에는 이색 빙수 등 디저트로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에게 입소문이 났다. 유기농으로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재배한 60년 전통의 도요 복숭아로 만든 복숭아 빙수부터 국산 초당옥수수와 아이스크림, 캐러멜 팝콘 등을 넣은 옥수수 빙수 등이 대표적이다. SNS에 관련 게시글만 1만7000여 건이다. 메종 드 라 카테고리 측은 “요리 대신 빙수만 따로 먹으러 오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메종 드 라 카테고리는 1층부터 2층까지 넓은 통창으로 디자인됐다. 메종은 프랑스어로 집을 의미한다. 그만큼 편하고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친 손님이 다시 찾게 만든다는 게 메종 드 라 카테고리의 철학이다. 임 부회장은 미국 뉴욕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한식뿐만 아니라 서양 요리에도 조예가 깊어 정통을 추구하며 프랑스 음식을 선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의 아들인 김지운 셰프(요리사)는 쿠촐로·마렘마·볼피노 등 이탈리아 식당을 강남과 이태원 등에서 운영하고 있다. 안심 카르파초와 파스타, 리소토 등이 대표 메뉴다. 청담동에서 영업하던 한식당 오월한식은 지난 5월 말 영업을 종료했다. 쿠촐로 측은 “계약 기간이 끝나 (오월한식) 영업을 종료했다”고 했다.
김 셰프는 영국 이튼칼리지 출신으로 세인트앤드루스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역사학을 전공했다. 해병대를 전역하고 이태원 식당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해 2015년 쿠촐로를 열며 외식업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재벌 3세지만 직접 주방에서 요리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요리가 취미인 재벌도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쿠킹 스튜디오를 마련해 지인들에게 요리를 대접하고 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작년 2월 “요즘 중국 식당은 여기가 최고인데 주방장이 조금 눈치가 보이고 부담스러움”이라는 글과 정용진 부회장이 요리하는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웍질’이라고 해야 하나. 지난번에도 한번 들어봤는데 보통 무거운 무쇠가 아니어서 잘못하면 손목 나갈 듯. 나는 얌전히 받아먹는 편을 택했음^^”이라는 글도 올렸다. SSG랜더스 야구단 선수들과 방송인 등도 정용진 부회장의 쿠킹 스튜디오를 찾았다고 한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도 요리하는 모습을 자주 내비친다. 박 전 회장은 지난 2020년 제임스 티렐 국제금융센터(IFC) 서울 전무의 유튜브에 출연해 양파 써는 솜씨를 발휘했다. 박 전 회장은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자를 위한 무료 도시락 나눔 봉사에도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해본 이들이 유행에 민감한 외식 사업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재벌 1~2세가 주로 프랜차이즈 외식업을 했다면 재벌 3세들은 힙(hip·유행에 밝은)한 상권에서 개성 있는 식당을 열며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추세다.
노희영 식음연구소 대표는 “프랑스 요리사가 프랑스 음식만 먹는 게 아니라 방콕에도 가서 음식을 맛보는 것처럼 해외 요리사들은 여행을 자주 다니며 여러 음식을 맛보는 경우가 많다”면서 “먹는 것은 한순간에 단계가 높아질 수 없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외식업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일부 재벌은) 기업을 물려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다”며 “외식업을 통해 자기 삶과 취향을 즐기고 행복을 찾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