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지금 고개만 돌리면 어디서든 크레인을 볼 수 있어요. 재개발·재건축이 활발하거든요. 이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곳곳이 천지개벽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공급량이 많아 당분간 새로운 정비사업은 어렵겠지만, 이미 주요 상권과 교통 중심지 주변으로는 웬만큼 진행됐다고 봐도 돼요.”
9월 15일 찾아간 대구 동구 신암뉴타운 일대 도로에서는 끊임없는 레미콘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뉴타운 공사 현장으로 들어서자 한쪽 길을 따라 설치된 공사장 펜스도 끝을 모르게 이어져 있었다. 근처 A공인중개사는 대표는 투자 가능한 재건축 물건을 가리키며 “이 일대에 1만 가구 가까운 아파트들이 들어설 것”이라고 소개했다.
대구의 모습이 크게 변하고 있다. 정비사업이 진행되는 곳만 242곳에 달할 정도로 재개발과 재건축이 활발하다 보니 구도심 상당수가 대단지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대구역 개통 등 다양한 호재를 따라 주거지역도 변하고 있다. 중구 동성로로 압축되던 주요 상권 역시 백화점 등 유통시설의 변화에 따라 다양해지는 모양새다.
줄줄이 정비사업 중인 동구
이날 찾은 신암뉴타운은 대구 최대 정비사업지로 꼽힌다. 대구 동구 신암동 일대 76만6718㎡ 부지에서 이뤄지는 대규모 주택 정비사업으로, 6개 재개발 구역과 1개 재건축 구역(10구역) 등 7개 구역으로 구분된다. 신암뉴타운이 속한 동구에서 이뤄지고 있는 정비사업을 모두 합하면 33개에 달한다.
신암동에는 동대구역이 있다. 이전엔 모텔촌에 오래된 주거지가 모여있던 동네다. 2010년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일부 구역은 착공에 들어갔지만, 4구역과 10구역 등은 아직 노후화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A공인중개소 대표는 “착공 전에는 6·25(난민)촌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오래된 동네였다”며 “동대구역에 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오가는 사람이 많아졌고, 일대가 변하기 시작하면서 지지부진하던 정비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신암뉴타운 사업이 마무리되면 이 지역에는 약 8700가구의 새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 동대구역뿐 아니라 대구 지하철 1호선과도 근접해 있어 자연히 인구가 늘고 새로운 활력이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대구의 대표적 부촌인 수성구도 큰 변화가 기대된다. 대구에서 정비사업이 진행되는 242곳 가운데 수성구에서 진행 중인 정비사업 비중은 67곳이나 차지한다. 다만 이 중 정비 예정 구역이 43곳 정도로, 아직 관리처분과 착공 비중은 7%에 불과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구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수성구는 여전히 대구의 부촌이고 학군이 좋기 때문에 개발사업이 진행되면 수요도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방치됐던 서대구역 일대 맛집 거리
지난 3월 개통한 서대구역 일대 역시 크게 변하고 있다. 서대구역은 한때 ‘대구의 관문’으로, 섬유산업 등이 활발해 대구 경제를 견인한 곳이다. 그러나 동대구가 발전하면서 한동안 방치된 곳으로 여겨졌다.
서대구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대구 지하철 2호선 죽전역 근처는 이미 높은 주상복합과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죽전네거리에서 본리네거리까지 이어지는 길목에는 주상복합 1~2층에 들어선 식당들로 ‘맛집 붐’이 일기도 했다.
B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서대구역에는 KTX 이외에도 구미역과 경산역을 오가는 대구광역권 철도망이 들어설 예정이고, 특히 구미로 출퇴근하는 이들의 문의도 꽤 있다”며 “내년에 이전이 예정된 대구시청과도 인접해 인근 아파트들의 전세 문의는 계속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일대는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기보다는 역세권 주변으로 건설사들이 직접 부지를 사서 올리는 주상복합 단지들이 주로 들어서는 모양새다. 인근 C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이 근처가 죽전역 역세권이고, 상업용지라 주상복합이 많은 편”이라며 “큰 도로 뒤쪽으로는 아직 노후 단지가 많은데, 대구가 현재 공급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 지역이 재개발 구역으로 묶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는 동성로, 뜨는 교동…카페 성업
도시가 변화하면서 중심 상업지구도 확장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동안 대구의 상권은 중구 동성로로 집중돼 있었지만, 최근 대구백화점이 문을 닫으면서 “근처 상권이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D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대구백화점 근처는 이제 예전이랑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면서 “대구역이 있는 롯데백화점 근처 역시 재건축 등 공사하는 곳이 많아 다니는 사람이 줄어드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반면 근처 현대백화점 주변으로는 쇼핑 인구가 꾸준히 몰리고 있다고 한다. 동성로에서 살짝 벗어난 교동 역시 젊은이들이 몰리며 활발한 분위기였다.
대구에서 택시 기사를 하는 E씨는 “교동 거리는 금요일 저녁이면 차가 들어설 수 없을 정도로 젊은 사람이 많이 몰리고 있다”면서 “이들이 좋아할 맛집이나 카페가 계속 새로 들어서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며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시장은 전국 최대 공급량을 자랑하면서 미분양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다. 올해는 수성구를 포함한 대구 모든 지역이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됐지만, 부동산 시장에는 여전히 찬 바람이 불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주택통계 자료를 보면 8월 대구의 미분양 주택은 8301가구로 전달에 비해 10.3% 늘었다. 7월 기준으로 미분양 가구는 7523가구로, 6월에 비해 12%나 늘면서 연속으로 10% 이상씩 증가했다. 대구는 전국 시·도 가운데 미분양 물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실제로 유일하게 조정대상지역으로 남아있던 수성구가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이후에도 아파트 가격 하락세는 계속됐다. 대출 규제와 금리 상승 부담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자료를 보면 9월 26일 기준 수성구의 아파트 가격은 일주일 전에 비해 0.35% 떨어지며 하락 폭이 전주 0.33%보다 오히려 커졌다.
A공인중개사 대표는 “최근엔 2000만~ 3000만원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까지 나왔다. 아파트 가격이 2019년 수준까지 내리면 정상가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거의 다 온 분위기”라면서 “추가 공급이 계속되고 있어 어디까지 내려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구에 그동안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진 배경에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는 공급량이 지나치게 많고 미분양 증가 속도도 가팔라 당분간 시장이 반등하기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부동산 시장이 좋을 때만 해도 계속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공급 계획을 늘렸던 것”이라면서 “국지적 시장은 수급 물량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1~2년 안에 가격이 반등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도 “미분양이 적정 수준에서는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는데, 전국 미분양이 3만 가구 정도인데 대구가 7000가구에 달한다는 것은 가격 반등이 당분간 어려울 정도로 많다는 의미”라며 “연초만 해도 2000~3000가구였던 것에 비하면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