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이용자 A씨는 2017년 11월 12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빗썸은 10만 건 안팎이던 시간당 주문이 20만 건을 넘자 서버 과부하로 전산 장애가 발생했다고 공지하고 암호화폐 매수·매도 주문을 차단했다. 빗썸은 이날 오후 3시 53분부터 5시 3분까지 1시간 이상 시스템 안정화 조치를 취하고 거래를 재개했다.
문제는 일부 암호화폐 가격이 그사이 폭락한 것이다. 비트코인 캐시 가격은 빗썸이 서비스를 중단하기 직전 283만원이었으나 거래 재개 후 197만원으로 30% 이상 떨어졌다. 이에 빗썸 이용자 570여 명은 빗썸을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거래가 중단되는 동안 암호화폐값이 폭락해 시세 차손만큼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2심서 뒤집힌 판결
1심은 빗썸의 과실이 없다고 봤지만 2심은 판단을 뒤집었다. 빗썸의 과실로 이용자들이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며 1인당 최대 8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빗썸을 상대로 손해 배상을 받아냈을까. 빗썸 이용자 570여 명은 2017년 12월 빗썸을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법무법인 대륙아주는 빗썸에 과실(귀책 사유)이 있다고 주장했다. 빗썸 사이트 약관에 따르면 빗썸은 서버를 관리하고 통신 설비를 확충·점검하여 원활한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빗썸의 서버 과부하로 전산 장애가 발생했고 이용자들이 암호화폐를 제때 매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빗썸에 서비스 계약을 따르지 않은 과실이 있다는 것이다. 빗썸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화우는 빗썸의 과실이 없다고 맞섰다. 당시 암호화폐 거래가 짧은 시간에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산 장애가 발생했다는 취지였다. 빗썸이 평소 서버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등 전산 장애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입장이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4부(당시 재판장 이석대)는 2020년 7월 빗썸의 손을 들어주며 1심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빗썸에서 전산 장애가 발생한 것은 인정하지만, 빗썸이 전산 장애 전부터 서버 과부하를 개선하려고 노력해 과실이 없고 손해 배상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회사 측이 전산 장애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 통념상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조치를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고법 민사16부(재판장 차문호)는 올해 8월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빗썸의 과실을 인정하고 2심에 참여한 원고 190여 명 중 130여 명에게 총 2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인당 배상액은 최소 8000원에서 최대 800만원이었다. 재판부는 빗썸이 접속 및 주문 폭증으로 서버 과부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서버 과부하로 전산 장애가 발생했고 원고들이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거나 매도 주문을 하지 못하는 등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다”며 “빗썸은 서비스 이용 계약에 따른 채무를 불이행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서버 개선을 위한) 기술적 시도가 실패했을 때 발생하는 부담이나 비용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인 빗썸이 책임져야지 서비스를 이용하고 수수료를 지급하는 회원에게 전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은 암호화폐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는 장세에서 전산 장애로 자신이 원하는 가격에 매도 주문을 할 수 없다는 초조함과 상실감을 겪었다”며 “이로 인해 입게 된 정신적 충격에 대해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빗썸의 채무불이행 책임 주장
재판 쟁점은 암호화폐 거래소의 안정성이 취약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지였다. 대륙아주는 민법 제390조를 내세웠다. 해당 조항은 채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대륙아주는 빗썸의 신용 평가 보고서를 분석해 빗썸이 2017년 순이익의 0.37%만 데이터베이스(DB) 서버(암호화폐 거래 체결 서버) 과부하 개선에 투입했다며 거래소 측 과실을 주장했다. 빗썸의 회원 수는 2017년 5월 50만 명에서 그해 11월 150만 명으로 세 배 늘었다. 빗썸에서 암호화폐 거래가 급증하자 수수료 매출은 2016년 수십억원에서 2017년 수천억원으로 늘었다. 서버에 문제가 생길 위험도 그만큼 증가했다. 빗썸은 이미 2017년 7월에도 사이트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등 전산 장애가 생길 전조(前兆)를 보였다. 최의상 대륙아주 변호사는 “당시 빗썸이 연간 순이익의 1~2%만 서버 개선에 투입했어도 전산 장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재판부에 설명했다”고 말했다.
대륙아주는 빗썸 데이터센터에서 전산 장애로 거래가 중단된 순간 피해자들이 암호화폐 매매 주문을 몇 번 클릭했는지 수치로 입증했다. 이를 통해 피해자들의 초조함과 정신적 충격을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전산 장애가 발생한 후 사이트 접속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10분 동안 80번 가까이 매도 주문을 반복한 피해자가 있었다”며 “피해자들이 절박한 심정에서 마음을 졸이면서 매도 주문을 반복했다는 점을 정리해 법원에 제출했다”고 했다. 대륙아주는 빗썸이 서버 관리에 사용한 마이에스큐엘(MySQL·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이 과부하에 취약하다는 점도 재판부에 설명했다. 이용자 접속이나 주문이 폭증하는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마이에스큐엘 시스템을 서버 관리에 이용하면서도 빗썸이 과부하를 분산시키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암호화폐는 주식 등과 달리 365일 24시간 거래가 이뤄지고 안전장치도 미비하다. 그동안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은 많았지만, 암호화폐 거래소의 책임을 묻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최 변호사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증권사보다 수수료를 높게 받으면서 안정성은 취약하다”며 “암호화폐도 주식에 준하는 안정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빗썸의 피해자 배상이 암호화폐 거래소의 손해 배상을 인정하는 첫 판결로 알고 있다”며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시스템과 서버 관리에 신경을 쓰고 추가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줄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