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안정적이고 자율 조정적

  

 정부 시장개입 아무 소용 없다”




-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시장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정부의 잘못된 역할에서 비롯됐다.
-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시장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정부의 잘못된 역할에서 비롯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엄청난 명예와 함께 상당한 금전혜택도 받는다. 그런데, 노벨경제학상을 받는 사람들의 상금용도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모딜리아니(Franco Modigliani)는 상금전부를 주식에 투자한 것으로 유명하다.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루카스는 상금을 이혼한 전 부인에게 위자료로 줘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혼하고 싶었는데 여윳돈이 생기니 이혼을 결행했다든가 하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루카스는 늘 연구에만 매진했고, 가정사엔 무관심했다. 그래서 전처는 “당신같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언젠가 꼭 노벨상을 받을 테니 나중에 그 상금을 위자료로 달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냥 구두의 약속이 아니었다. 이혼서류에 1996년 이전에 노벨상을 받을 경우 그 상금의 일부를 위자료로 지급한다는 구체적인 조항까지 삽입했다.



루카스의 가장 유명한 업적 중 하나는 바로 이와 같이 사람들이 모든 정보를 활용해 합리적으로 미래를 예상하고 경제행동을 한다는 ‘합리적 기대가설’에 대한 연구다. 루카스의 전처는 미래를 예상하고 자신 나름대로 합리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그의 전처가 남편의 이론을 가장 잘 이용했다고 말했다. 루카스의 이론은 정보의 홍수를 이루고, 사람들이 정보를 경제행위에 활용하는 현대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경제행위자들이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로 잘못된 경제행위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정책 방향을 제공한다.



루카스는 경제학의 현상을 설명할 때 ‘기대’라는 요소를 중시했다. 기대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미래에 대한 예측’과 같다. 사람들은 자신이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동원해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고, 이에 기초해 경제행위를 한다.



사람들의 예측이 경제적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오래전부터 익히 알려진 가정이다. 만약 사람들이 어떤 상품가격이 인상될 것이라 생각하면 인상에 앞서 그 물건을 사 모을 게 뻔하다. 일명 사재기 현상이다. 이는 그 재화의 시장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때 많은 사람들이 동일행동을 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결과적으로 상품의 시장가격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반대로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임금인상의 협상 등과 같은 과정을 보면 얼마나 사람들이 현 상황뿐 아니라 미래상황에 대한 예상을 자신의 경제행위에 고려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기대란 경제현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대’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혹은 그 기대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선 많은 논쟁이 반복됐다. 기대라는 개념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가 있다. 먼저 앞으로 물가가 현재와 같은 수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앞으로 물가가 현재 물가수준과 그전에 기대했던 물가수준과의 차이 (즉 얼마만큼 예상과 실제가 변동하느냐)에 따라 자동적으로 조정되며 형성될 것이란 기대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기대를 경제학에서는 ‘적응적 기대(adaptive expectations)’라 한다.



그런데 루카스의 기대는 위의 두 가지 개념과 다르다. 모든 경제행위자는 기본적으로 앞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들의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s)’란 모든 경제행위자들이 자신이 가진 모든 가용한 수단으로 정보를 수집해 체계적인 오류 없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기대란 지속적으로 정보를 재해석하고 업데이트하며 형성된다. 바로 이때 체계적인 오류가 없다는 게 ‘적응적 기대’와 다른 점이다. 적응적 기대에서는 과거의 현재에 대한 예상과 현재의 실제치를 비교한 결과 그 변동(예측오류)만큼 미래 기대에 반영되기 때문에 체계적인 오류가 존재한다.

- 로버트 루카스는 1995년 합리적 기대가설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 로버트 루카스는 1995년 합리적 기대가설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사람들은 모든 정보로 앞날 예측

루카스가 합리적 기대이론으로 주장하고 싶은 바는 간단명료하다. 시장은 안정적이며, 자율 조정적이다. 이런 시장에서 인간은 모든 정보를 동원해 정확히 앞날을 예측한다. 때문에 정부의 시장개입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정부가 실업률을 낮추려고 재정·금융정책을 구사하는 건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아무 소용 없다.



불황에 대처하기 위한 정부지출 증가 등의 적극적인 정부정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언젠가 재정수지를 맞추기 위한 증세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를 형성하게 하고 소비를 줄이는 등의 행동으로 이어지게 한다. 따라서 이런 재정정책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한 효과가 없으며, 따라서 안 하느니만 못한 정책이 될 수 있다고 그는 경고한다.



그렇다고 루카스가 정부의 모든 정책이 효과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이 전혀 예기치 못한 정책만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가 불황이나 활황 시에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합리적으로 기대를 형성하고 행동하는 국민들에게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런 사실들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충분히 숙지하고 있으며, 이를 경제행위에 이미 반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전의 사람들의 행동에 기반해 수립된 정책은 결국 쓸모없게 되며, 이는 ‘루카스의 비판’이라 불린다.

- 정부는 뱅크 런을 방치했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정부는 뱅크 런을 방치했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

루카스의 주장은 결국 시장은 효율적이라는 ‘효율적 시장가설’과 연결된다. 그러나 효율적 시장가설은 내부정보에 적용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장에서의 정보에 의거해 소비와 투자행위를 결정하지만, 만약 시장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극히 일부분 사람만 알고 있다면 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내부 정보를 그 기업의 어느 중역이 알고 있다고 치자. 그가 주식거래를 한다면, 그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그 정보를 모르는 투자가들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다. 그래서 내부자 주식거래를 불법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이는 시장 전체로 확장해 얘기할 수 있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들이 기대를 형성하려 시장에서 입수한 정보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이에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규명된다.



올해 뱅크 런 사태로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부산저축은행 등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문제는 무모한 투자, 이를 감독하지 못한 금융위원회 등의 잘못이 어우러져서 터진 사태이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경제행위자들이 합리적 기대를 형성하는 데 정부가 잘못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거진 세계적 불황 이후 저축은행 등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부실문제가 일부 제기되기도 했지만, 정부가 사태파악에 미온적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침체에 빠진 부동산 시장에 대한 악영향을 염려한 탓일 게다. 또 부실해진 저축은행의 퇴출에도 상당히 미온적이면서 인수·합병을 지원해 부실을 더 키웠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는 정부가 저축은행 현실과 같은 시장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사람들의 잘못된 기대를 형성하게 만들었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에 비판을 받고, 정부의 적극적 시장개입을 주장한 케인즈주의의 부흥에 밀려 루카스류의 시장주의 주류경제이론이 퇴색해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하에서의 핵심인 시장의 기능을 올바르게 작동하게 하는 데 정부의 역할은 시장주의 이론에서도 참조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