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여권을 등록해 출입국절차를 간소화시킨 것도 트리즈가 말하는 조건과의 분리에 따른 결과다.
사전 여권을 등록해 출입국절차를 간소화시킨 것도 트리즈가 말하는 조건과의 분리에 따른 결과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피치 못할 일을 많이 겪는다. 예를 들어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났다면 취할 수 있는 선택이 어떤 것이 있을까. 제일 좋은 것은 원수는 물에 빠트리고 자신은 안전하게 건너는 것이다. 그러나 원수를 물에 빠트리려면 힘을 가해야 한다. 그것이 힘들다고 판단되면 다리 건너는 것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또 이마저도 싫다면 서로 합의하고 물리적인 충돌 없이 비켜가는 방법도 선택할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다.

기술적 문제 해결과정에도 이 같은 상황에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다. 사람 출입이 많은 건물을 예로 들어 보자. 여름철에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갈 때 더운 공기가 건물 내로 들어오게 되면 에어컨을 틀어도 실내는 덥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출입하면서 공기는 차단하는 현관문이 필요하다. 칫솔모가 쉽게 휘어지지 않고 꼿꼿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굵기가 일정 정도를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너무 굵을 경우 치아 사이의 이물질을 쉽게 제거할 수 없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은 작용과 반작용, 즉 모순투성이의 문제가 혼재돼 있다. 앞서 우리는 원하는 결과(Wanted Result)를 얻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단계를 살펴봤다. 이 과정에서는 대상(물질, 물체)에 대한 작용을 어떤 도구를 통해 만드는 것이 중요한지를 알아봤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나쁜 결과(Unwanted  Result)로 이어질 수 있다. 위의 예에서 보면, 건물에 사람들이 출입하기 위해 문을 열면 그 순간 외부의 더운 공기가 건물 내로 들어오게 되는 부작용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칫솔모가 어느 정도 힘을 갖도록 굵게 만들면 치아 사이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닦아낼 수 없고, 부드럽게 만들면 칫솔모가 음식물 찌꺼기를 깨끗하게 제거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다.

물리적 충돌을 피하는 것도 기술
그 다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부작용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처음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없는 경우다. 즉 건물에 사람들이 출입하기 위해 문을 열면 그 순간 외부의 더운 공기가 건물 내로 들어오게 되므로 문은 닫혀 있어야 한다고 가정할 때 이런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어쩔 때는 물리적 모순 때문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트리즈는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답은 ‘피한다’다. 최근 건물마다 에어커튼 등 다양한 형태의 공기 차단 기구가 등장하는 것도 물리적 모순과 원하는 것의 충돌을 피해 제3의 결론을 도출해냈기 때문이다.

결국 창조적 사고에서 피하는 방법은 ‘기술’이다. 여기서 트리즈는 4가지 분리 원리를 설명한다. 첫 번째가 공간분리(Separation in Space) 원리다. 앞의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는 예를 토대로 살펴보자. 마주보는 원수가 서로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고 다리를 건너는 방법은 서로 껴안고 반 바퀴를 도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간분리의 기본 원리다. 이중고가(二重高架)로 된 교차로를 예로 살펴보자. 아랫부분은 횡행 차량이 진행하고 윗부분은 직진 차량이 진행하는 것은 공간을 상하로 나뉘어 서로 충돌하는 조건을 회피한 예다.

두 번째가 시간분리(Separation in Time)다. 교통시스템의 신호등이 대표적인 예다. 도로 위로는 자동차도 사람도 다녀야 하는데, 함께 이용하게 되면 사고가 난다. 이 때문에 도로를 사람이 사용할 때와 자동차가 사용할 때를 분리해서 사용하게 해주는 기구가 횡단보도의 신호등이다.

세 번째는 조건분리(Separation in Condition)다. 건물 에어커튼처럼 현관문이 사람에게는 항상 열려 있는 상태지만, 외부 공기에게는 항상 닫혀 있는 상태가 바로 조건분리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런 예를 무수히 볼 수 있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에게는 게이트가 열려 있어야 하고 무단 승차하는 사람에게는 게이트가 닫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하철공사는 모든 지하철역마다 카드인식시스템을 설치해 카드를 인식한 사람은 통과시키고 카드가 인식하지 못한 사람은 통과시키지 않도록 한다.

네 번째가 전체로부터의 부분분리(Separation in Scale)다. 전체 의미와 부분의 성질, 의미가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얇은 유리의 모서리를 가공하고자 할 때 한 장의 유리는 너무 얇아서 파손되기 쉽다. 이런 경우 여러 장의 얇은 유리를 겹쳐서 고정시키고 전체를 한 장의 유리인 것처럼 만들어서 가공을 한다. 한 장의 유리는 얇지만 여러 장의 유리를 겹친 전체로서의 유리 묶음은 강한 성질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서울 용산역 앞 계단에 가보면 각 계단의 측면에 페인트칠이 돼 있는데 하나하나씩을 보면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지만 멀리서 보면 전체 광고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역사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계단이 있어야 하는데, 넓은 공간을 광고로 활용하고 싶어 계단의 측면을 조각 그림으로 그려 멀리서 볼 때 이미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것이 운동경기를 할 때 많이 등장하는 카드섹션이다. 카드 한장 한장으로서는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전체로서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창의성 또는 창조적 사고라는 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 세상은 물질과 물체 간 뚜렷한 상호관계 속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물질과 물체 사이는 엄격한 원리와 원칙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에어커튼은 건물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으면서 외부 공기를 차단시켜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에어커튼은 건물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으면서 외부 공기를 차단시켜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확보한 관련정보를 원리와 원칙에 맞게 조합해야
인간이 무엇을 창조한다든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단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을 하나 더 찾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생각할 수 없게 설계돼 있다. 자기 경험이나 지식이라는 과정을 거쳐 머릿속에 넣어둔 것조차 필요할 때 정확하게 꺼내어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위대한 발명자들은 생각의 과정에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들과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효과적으로 꺼내 원리와 원칙에 맞게 관련 정보들을 조합하도록 궁리해왔다. 그리고 이렇게 잘 떠오르지 않는 것들을 쉽게 떠올리게 하자는 것이 창조적 사고 기법들이다. 따라서 자연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원리와 원칙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것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관련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해 필요에 따라 원리와 원칙에 맞게 정확하게 조합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생각해낼 수 있는 창의력이다. 이런 훈련을 반복하는 것이 트리즈가 말하는 창조적 사고의 기본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