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논쟁이 뜨겁다. 경제민주화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불문하고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을’의 지위에 있던 경제주체들은 이를 주로 ‘상생협력’ 또는 ‘동반성장’ 차원에서 이해한다. 반면 재계에서는 이를 대략 ‘대기업 때리기’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경제민주화 논의의 핵심 사안 중 하나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 정책이다. 그런데 일감 몰아주기를 포함한 계열기업 간 내부거래는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음에도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이를 일반적인 경제민주화와 결부시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어 다소 오해와 혼란이 있는 듯하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단일기업 체제가 아닌 기업집단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집단이란 두 개 이상의 회사가 기업 간 지분 출자 등을 통해 공동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는 흔히 ‘그룹’으로 통칭된다. 이러한 기업집단은 대개 다양한 사업 분야를 영위한다는 측면에서는 GE를 포함한 미국의 복합기업(conglomerate : 사업 내용이 전혀 다른 사업부문을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과 유사하나, 후자의 경우 단일기업 또는 단일지주회사와 100% 자회사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이러한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주체가 특정 자연인을 중심으로 한 가문일 경우 우리는 이를 재벌이라고 부른다. 기업집단 체제 하에서는 태생적으로 소속 회사 간 내부거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업집단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인력과 자금, 그리고 기업이 필요한 기타 재화와 용역을 시장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기업집단 내부에서 조달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시장 기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 더 빈번히 나타난다.

  대기업이 MRO(소모성자재구매대행) 사업 등 중소기업 또는 소상공인의 사업영역을 침범해 손쉽게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가격으로 이뤄지지 않는 내부거래가 문제
그렇다고 모든 형태의 내부거래가 다 제한 없이 인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래의 사례를 통해 내부거래의 잠재적 위험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아래의 사례는 2008년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에 게재된 쟝코프, 라포르타, 로페즈 더 실라네스, 슐라이퍼의 논문에서 발췌했다.

‘제임스씨는 상장 식품제조업체 A의 지분 60%와 비상장 소매공구유통업체 B의 지분 90%를 보유 중이다. 그런데 최근 B는 상당수의 매장 영업을 중단해 보유 중인 트럭들이 유휴 설비화됐다. 제임스씨는 A의 총자산의 10%에 해당하는 트럭들을 A가 사들여서 식품 유통에 활용할 것을 제안했고, 이에 따라 B는 보유 트럭을 전량 A에 매각했다.’

이와 같은 거래는 우리 기업 현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사례다. 이 사안에서의 핵심은 과연 이 거래가 시장가격으로 이뤄졌는가 여부다. 제임스씨 입장에서는 본인이 지분을 더 많이 소유한 B에게 유리하도록 트럭 가격을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책정할 유인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결과적으로 A가 트럭을 비싼 값에 사게 돼 A의 주주에게 손해를 입히게 되므로 감독 당국에서는 이를 규제하게 되며 이것이 바로 부당내부거래 금지의 논리적 배경이다.

즉, 부당내부거래를 규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A가 필요한 물건을 계열회사로부터 조달함으로써 외부의 납품업자가 납품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장회사인 A가 비싼 가격으로 계열사로부터 물품을 조달해 B(의 주주)에는 이익을 주고 A(의 주주)에는 손해를 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내부거래가 비시장가격으로 이뤄지는 경우 문제가 된다.

일감 몰아주기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의 한 유형으로 특정 재화와 용역의 상당 부분을 특정 계열사로부터 조달하는 경우를 통칭한다. 이러한 일감 몰아주기는 내부거래의 일종이므로 부당내부거래의 법리가 적용돼 비시장가격으로 거래하는 경우, 즉 위의 사례처럼 계열사에 비싼 값을 주고 물품을 조달하는 경우 현행 제도상으로도 당연히 규제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일감 몰아주기에는 일반적인 내부거래와는 다른 고유한 측면이 있다. 일감 몰아주기로 이익을 보는 계열회사는 매출의 대부분 또는 상당부분을 다른 계열회사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즉 그룹 전체가 일감을 몰아주기 때문에 지원을 받는 회사는 특별히 유리한 가격이 아닌 정상적인 시장가격으로 거래하더라도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감 몰아주기는 주로 여행, 광고, 시스템통합(SI) 등 그룹 차원에서의 수요가 꾸준히 있는 업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비공식적으로는 특정 꽃집, 술집 등에도 그룹 차원의 일감이 집중된다는 풍문도 있다. 매일 해당 기업집단과 관련 있는 누군가는 결혼하고 누군가는 사망할 터이니 얼마나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일감 몰아주기의 핵심은 지원을 받는 기업을 과연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룹 차원에서의 지원으로 대부분의 피지원기업은 급속히 성장한다. 문제는 이러한 피지원기업의 대다수를 지배주주 일가가 직접 설립해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배주주 일가는 설립 초기의 급속한 성장 이후 기업공개(IPO)를 통해 당초 투자지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된다. 결국 일감 몰아주기로 인한 이득은 상당 부분 지배주주 일가의 사익으로 귀속되는 것이다.

이렇게 편취된 사익은 향후 기업집단의 지배권을 상속, 승계하는 데 활용된다. 그렇다면 일감 몰아주기가 요술봉도 아닌데, 어떻게 이처럼 특정인에게 엄청난 이익을 제공할 수 있었을까. 이는 회사의 사업기회를 통해 새로이 창출된 가치가 일반 주주들에게 공동으로 귀속되지 않고 지배주주 일가에 독점적으로 배분됨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이다. 편법 상속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주로 탈세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더 큰 문제는 여타 주주로부터의 ‘부의 이전’이며 이것이 바로 일감 몰아주기로 인해 야기되는 폐해의 핵심인 것이다.

영·미법상으로는 이러한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회사기회의 유용(expropriation of corporate opportunities)’을 금지하는 법리가 예전부터 발달해 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1년 상법 개정 시 이 법리를 도입한 바 있다. 개정 상법 제397조의 2에서는 이사가 회사의 이익이 될 수 있는 회사의 사업기회를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상장기업의 영업활동을 통해 얻어진 사업기회 와 이를 통한 이익은 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한 모든 투자자, 즉 주주들이 공유하는 것이 마땅하며 이를 특정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기존 주주에 대한 의무 위반이라는 점에 착안한다.

  최근 빵집 논쟁에서 아쉬운 점은 질 좋은 빵을 값싸게 먹을 수 있다는 소비자의 관점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 사회적 합의 필요
최근 정부에서 규제하고자 하는 일감 몰아주기는 이와 같이 특정인이 회사기회를 유용하는 형태의 일감 몰아주기로 이는 논란의 여지가 별로 있을 수 없다. 이러한 거래는 회사(궁극적으로는 주주)의 자산을 특정 개인의 사익을 위해 편취하는 소위 터널링 (tunneling)의 일종으로 본질적으로 자기거래이며 교묘하게 위장됐지만 본질적으로는 절도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기업 차원에서 이러한 회사기회의 유용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피지원회사를 지배주주 일가가 직접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계열회사의 사업 부문을 통해 또는 완전(100%) 자회사를 설립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활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사업기회를 통해 발생한 이익을 계열회사의 모든 주주가 공유하게 되기 때문에 회사기회의 유용 또는 편취에 해당되지 않는다.

한편 일각에서는 경제민주화 또는 일감 몰아주기를 대기업의 사업 영역 확장과 연결지어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대기업이 빵집,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등 중소기업 또는 소상공인의 사업영역을 침범해 손쉽게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물론 빵집 또는 MRO업체의 지분을 지배주주 일가가 소유하고 있고, 계열회사 건물마다 이 빵집을 입점시키거나, 계열 MRO업체를 통해 모든 소모품을 구입한다면 회사기회 유용에 해당되고 따라서 규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 문제가 된 일부 기업의 사례는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빵집이 계열회사의 100% 자회사(또는 사업부문)이고, 다른 빵집들과 동일한 조건 하에서 일반적인 경쟁을 하는 상황이라면 이는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회사기회 유용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경우 매출의 원천이 계열사가 아니라 일반 소비자이므로 내부거래로 보기도 어렵다. 마찬가지로 MRO업체를 지배주주 일가가 직접 소유하지 않고 계열회사의 자회사 또는 사업부문으로 운영한다면 그 이익이 회사에 귀속돼 모든 주주들이 공유하게 되므로 역시 회사기회 유용으로 볼 여지가 적다.

물론 중소상공인의 육성이 건전한 국민 경제 발전에 중요하다는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대기업들이 약탈적 가격정책을 통해 동네 상권을 장악한 후 가격을 올릴 개연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빵집 논쟁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소비자의 관점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만약 값싸게 질 좋은 빵을 먹을 수 있다면 이 또한 소비자의 후생 증진을 통해 국민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즉, 이 문제는 일감 몰아주기에 비해 내재돼 있는 이해관계가 훨씬 복잡하고 따라서 보다 치열한 논의와 심층적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최근 모 회사에서 계열사에 발주하던 물량을 중소기업에 발주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상생협력의 모범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의사결정을 주주의 입장에서 엄밀히 판단해 보면 좋은 사업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측면에서 주주에 대한 의무 위반으로 볼 여지도 있는 것이다. 즉, 이 회사기회는 기업 스스로 또는 자회사를 설립해 내부화하는 것이 주주 입장에서는 더 타당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과 각종 주식형 연금 상품 등을 통해 많은 일반 국민들이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을 최소한 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주주로서의 국민의 지위 또는 이해관계에 대한 인식이 보다 더 강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향후 경제민주화 추진 과정에서는 상대적으로 명확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보다 신속하고 확실하게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엄정한 법집행을 해 나가되, 빵집 논쟁과 같이 쟁점이 있을 수 있는 사안은 보다 엄밀하고 광범위한 사회적인 합의를 형성해 가는 이원적인 접근 방식을 제안해 본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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