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감 도장 대신 인감 서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도장보다 본인이 손으로 직접 쓴 ‘사인(Sign)’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인은 그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어서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자연스럽게 흘려 쓰는 사인 하나만 봐도 그 사람의 품위가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사인으로 한번쯤 고민해본 당신이라면, 주목!

예전에는 사인이 주로 직급이 높은 사람이나 운동선수, 연예인 등 유명인사에 한정돼 사용되는 편이었지만, 요즘에는 일반인도 하루에 몇 번씩 사인을 하는 일이 있을 정도로 보편화됐다. 회사에서는 결재 서류에 늘 사인을 하게 되고,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식사를 한 뒤 카드 결제할 때마다 혹은 보험 가입 시나 은행 등에서 사인을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사인을 할 일이 많아지면서 간혹 자신의 사인이 멋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해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12년 12월1일부터 서명이 인감도장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본인 서명 사실 확인제’가 시행되기 시작해 그전까지 도장으로 서명해야 하는 일을 서명이 대신할 수 있게 됐다. 인감도장을 분실해 다시 만들려고 하면 동사무소에서 만나는 수많은 서류들로 난감했던 경우도 이젠 없어졌다. 사인은 분실의 우려가 없다는 점과 함께 도장보다 도용이 어렵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개인마다 쓰는 특유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연습을 통해 도용하려고 마음먹지 않는 이상 같은 이름을 써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때로는 같은 글자를 같은 사람이 써도 달라질 때가 있는 것이 사인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인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유의 곡선미가 넘치는 사람, 짧으면서 강한 선을 사용하는 사람, 정자체 위주로 사인하는 사람 등 개성이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손사인 전문 업체 ‘굿싸인(www.good-sign.co.kr)’의 최귀성 대표는 “성격이 침착하거나 혹은 다소 거칠거나 남성스럽거나 꼼꼼하거나 하는 특징들이 그대로 서명에도 나타난다”며 “요즘처럼 자신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 때에 사인은 자신만의 또 다른 아이콘으로 사용된다. 또한 사인은 도장처럼 만들어진 느낌이 아닌 자연스런 세련미를 나타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좋은 사인과 나쁜 사인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인은 도장을 대신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도용하기 쉬운 단조로운 사인이 가장 나쁜 사인이라고 한다. 멋이 느껴지지 않는 사인도 좋지 못한 사인의 예다. 반대로 도용이 어렵고 이름이 잘 표현되었으며 품격이 느껴지는 사인이 좋은 사인이다.

[모방하기 쉬운 사인]
[모방하기 쉬운 사인]
[모방하기 어려운 사인]
[모방하기 어려운 사인]
[개성있는 사인]
[개성있는 사인]

10년 가까이 사인 디자인을 공부하고 연구해온 최귀성 대표는 그동안 사인을 직접 만들어준 이들이 1만명을 넘을 정도로 다양한 사인을 만들어왔다. 근래에는 많은 이들이 사인 디자인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어 인터넷을 통해 연락해 오거나,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의뢰가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사인 의뢰자들을 만나오며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고.

한번은 급하게 한 남성 고객으로부터 의뢰를 받게 됐다. ‘하루 만에 사인 디자인을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외국 회사와의 중요한 계약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인 의뢰와 함께 했던 또 다른 주문 사항이 있었다. ‘계약에 성공할 수 있는 복이 들어오는 사인’을 만들어 달라는 것. 최 대표는 “물론 좋은 사인을 만들어 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계약에 성공할 수 있을지를 사인이 결정할 일이 아닌 듯해서 난감했다. 계약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디자인하겠다고 약속드렸다”고 전했다. 며칠 뒤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는데 바로 그 사장님이었다고 한다. 받자마자 계약을 체결했다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왔다. 최 대표는 “한사코 사장님의 능력이지 제 사인의 공은 아니라고 말씀드려도 수차례나 감사하다고 하시더라”며 웃었다.

대기업 회장실로부터 난감한 부탁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비용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사주를 토대로 만사형통하는 기운을 낼 수 있는 길한 사인을 제작해 달라는 것이었다. 최 대표는 “사인을 만들 때 어떤 미신적 내용보다는 그저 의뢰자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지만, 마치 부적을 만들어 달라는 것과 같은 의뢰는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인이 다양하게 쓰이면서 최근에는 어린 자녀들에게 사인을 선물하는 부모들도 많다. 최 대표는 “대학생 자녀의 졸업 선물이나 취직 선물로 사인을 의뢰하거나 스승의 날에 은사에게 사인을 선물하는 분도 있다”고 전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등 유명 인사들의 사인 의뢰도 종종 들어온다. 인기 남자 배우 L씨는 ‘악필이어서 쓰던 사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의뢰를 해왔다고 한다. 여배우 J씨는 ‘개인적으로 사인에 관심이 많다’며 직접 전화를 걸어와 사인 제작 과정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의견을 더하는 등 적극적이었다고.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인에 특히 많은 공을 들인다. 팬서비스 차원에서 사인을 만드는 경우 개성 있고 캐릭터나 모양이 들어간 사인이 좋다고 한다. 또 강한 느낌의 사인보다는 둥근 형태의 사인을 선호한다.

그런가 하면 회사 대표, 간부, 직장인들의 경우엔 주로 서류의 결재칸 안에 사인을 하기 때문에 정사각형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형태의 사인을 선호한다. 최 대표는 “직급이 높을수록 이름 전체를 사용하는 서명을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이름 전체가 잘 드러나 있어야 하고, 이름에 불필요한 꾸밈을 주지 않고, 공문서 하단에 대표자 이름을 넣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가로로 약간 긴 형태의 사인이 좋다”고 설명했다.

손사인 전문가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최 대표는 매우 난감한 경험을 한 적도 있다. 공문서에 사인을 대필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외국 회사와의 계약 서류인데 서명한 당사자가 급하게 서류에 사인을 하고 외국에 나갔다고 하더군요. 서류에 잘못된 것이 있어 다시 출력해 사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 서류에 있던 사인은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복잡한 형태였습니다. 그에 대한 사례는 충분히 하겠다는 제의였지만, 남의 사인을 대신해 서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중요 서류에 사인이 도용돼 입을 수 있는 피해는 엄청날 수 있다. 도장에 비해서는 어렵지만 손사인도 얼마든지 도용 우려는 있다. 개인마다 필체에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도용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몇 시간만 연습하면 엇비슷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인을 만들 때 단순한 직선 패턴보다는 곡선을 많이 넣고 나만이 알 수 있는 비표를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사인 제작 비용은 얼마나 될까. ‘굿싸인’의 경우 간결한 결재형 사인(한글 이름 한 글자, 혹은 두 글자, 영문 이니셜)은 3만원, 고급형 서명+결재형(전체 이름+결재형 사인)은 5만원, 연예인·운동선수 사인(개성 있는 디자인)은 10만원이라고 한다. 최귀성 대표는 “1차로 디자인을 여러 개 만들어드리고 그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보완 작업을 추가로 여러 번 해드린다”고 전했다. 사인을 연습할 수 있는 사인북을 주기 때문에 여러 번 따라 그려보면서 자신의 사인을 손에 익힐 수 있다.

- 최귀성 대표는 “사인은 자신을 알리는 또 다른 아이콘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간혹 부적과 같은 길한 사인을 만들어 달라는 분들이 있어 난감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
- 최귀성 대표는 “사인은 자신을 알리는 또 다른 아이콘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간혹 부적과 같은 길한 사인을 만들어 달라는 분들이 있어 난감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