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쥔 한넝박막발전 창업자
리허쥔 한넝박막발전 창업자

리허쥔(李河君·49)과 스정룽(施正榮·53).

중국에서 태양광전지 사업으로 한때 최고 부호의 자리에 올랐던 기업인들이다. 이들은 또 다른 공통점을 갖게 됐다. 지난달 20일 중국 최대 태양광 전지업체 한넝(漢能)박막발전의 창업자 리허쥔이 회장직을 사임하면서다. 2010년 세계 최대 태양광전지업체였던 샹더(尙德)가 2013년 파산하면서 물러난 창업자 스정룽처럼 불명예 퇴진하게 된 것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중국 태양광 전지업체 잉리(英利)그룹의 먀오롄성(苗連生·60) 회장도 밤잠을 설치는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계열회사인 잉리신에너지가 지난 5월 12일 채권 원금 14억위안(약 2520억원)과 이자 8610만위안(약 155억원)을 갚을 수 없다고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것이다. 작년 10월에 이어 두번째 디폴트다. 잉리그룹은 중국 1호 월드컵 후원사로 2010년 남아공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후원하는 등 중국을 대표하는 태양광 전지업체로 꼽힌다.

중국 ‘태양왕’들이 몰락하거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중국 신에너지산업이 처한 거품 문제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의 정부 주도 신흥산업 육성책이 갖는 한계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먀오롄성 잉리 회장
먀오롄성 잉리 회장

리허쥔, 최고 부호 1년 만에 사임

1996년 홍콩 증시에 상장된 한넝박막발전은 5월 20일 저녁 공시에서 리 회장이 집행이사와 이사회 주석 자리에서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5월 20일 주가 급락으로 1년간 거래정지가 된 이후 첫 대응조치로 지배구조 개편을 들고 나온 것이다. 한넝박막발전의 모회사인 한넝지주회사는 5월 22일 성명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강화를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리 회장은 중국의 부자연구전문기관인 후룬이 2015년 2월 발표한 중국 부호순위에서 1600억위안(약 28조8000억원)으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雲)을 제치고 중국 1위 부호에 올랐다. 2014년 5월 2홍콩달러(약 304원) 수준이던 주가가 2015년 초 5배 가까운 9홍콩달러(약 1368원)까지 치솟은 덕분이다.

하지만 한넝박막발전은 그해 5월 20일 홍콩 증시 개장 30분도 안 돼 주가가 47% 폭락하자 이후 1년간 거래정지라는 암흑의 터널을 지나기에 이른다. 과도한 주가 상승과 공매도 세력이 개입된 탓이라고 중국 언론들은 전한다.

특히 홍콩증권거래소가 한넝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고 고객들이 등을 돌리면서 한넝은 경영난에 처하게 됐다. 한넝박막발전의 지난해 매출은 28억1500만홍콩달러(약 4278억원)로 전년보다 70.7% 급감했다. 2014년만 해도 33억홍콩달러(약 5016억원)의 순이익을 낸 한넝박막발전은 지난해엔 122억홍콩달러(약 1조854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자금난도 겹쳤다. 한넝박막발전의 작년 말 기준 유동 부채규모는 36억홍콩달러(약 5472억원)에 달했다. 한넝박막발전의 지분인수에 나섰던 중국 업체들이 이를 없던 일로 하면서 자금난이 심화됐다.

리 회장의 몰락 배경엔 태양광 산업의 과잉공급이 있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과잉공급 뒤에는 정부의 보조금이 있다. 중국 정부가 신흥산업 육성 명분으로 보조금을 쏟아내자 보조금에 기댄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는 것이다. 한넝박막발전 역시 중국 지방정부의 보조금 덕에 헤이룽장성부터 쓰촨, 산둥, 장쑤, 저장, 하이난 등에 전지 생산공장을 세우며 과잉투자를 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정룽 샹더 창업자
스정룽 샹더 창업자

스정룽, ‘글로벌 1위’ 야망 일장춘몽

2013년 부도를 낸 샹더 역시 지방정부 보조금에 기대 성장했다가 몰락한 대표적인 사례로 통한다. 샹더의 창업자 스정룽은 해귀파(海歸派·해외 유학파) 출신의 엔지니어로 성공한 기업인의 표본이 됐던 인물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에게 창업자금을 대준 곳이 우시(無錫)시 정부였다. 샹더가 2010년 세계 최대 태양광전지 생산업체에 오르자 중국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도 그의 성공 스토리를 담느라 바빴다. 지방정부와 해귀파의 결합이 만든 성공모델로 평가됐다.

하지만 과잉공급에 채산성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보조금에 기댄 체질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했다. 당시 블룸버그 등 외신들은 샹더의 몰락을 두고 중국 정부의 보조금이 좀비기업들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중국 당국 역시 보조금이 과도할 경우 나타날 폐해를 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관계자가 최근 포럼에서 중국 당국이 태양광발전에 대한 보조금을 점차 축소해 종국적으로는 취소할 것이라고 전한 배경이다. 특히 중국 당국의 태양광전지업체에 대한 보조금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반덤핑 규제로 이어져 무역마찰을 빚기도 한다.

과잉 보조금 탓에 공급과잉 업종이 된 건 태양광전지만이 아니다. 풍력발전 역시 공급과잉 업종에 해당된다. 지난해 중국에서 풍력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송전하지 못하고 버린 규모가 적지 않아 이에 따른 경제손실이 180억위안(약 3조2400억원)에 이른다는 보도도 나온다. 풍력발전소에서 폐기되는 전기가 2010년에는 10%선이었지만 지난해 상반기 15%를 넘어섰다고 중국언론들은 전했다.

신흥산업에 대한 중국의 민관 합동 투자패턴이 청정에너지산업의 공급과잉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신증권에 따르면 2015년 청정에너지 산업에 대한 전 세계 투자는 전년 대비 4% 늘어난 3289억달러(약 394조6800억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중국의 투자는 17% 증가한 1105억달러(약 132조6000억원)에 달했다. 전 세계 청정에너지 산업 투자의 33.6%를 중국이 차지한 것이다.

중국 당국은 이미 태양광과 풍력을 대표적인 과잉업종으로 꼽고 있지만 신흥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명분에 보조금 지급을 지속하고 있다. 보조금은 초기 시장형성이 어려운 신흥산업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일정 단계를 지나도 보조금이 지속되고 과도할 경우 자칫 거품으로 이어지고 다른 나라와의 무역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 태양왕들의 몰락이 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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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귀파(海歸派) 해귀파는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 학업을 마쳤거나 현지 기업에서 근무한 뒤 중국으로 돌아온 전문 인력을 가리킨다. 돌아오다는 뜻의‘귀(歸)’자가 거북이를 뜻하는 ‘구(龜)’자와 중국어 음이 같아‘海龜派’라고 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