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섹 로스토스키(Jacek Rostowski) 런던정치경제대 경제학 박사, 폴란드 재무장관 및 부총리
자섹 로스토스키(Jacek Rostowski) 런던정치경제대 경제학 박사, 폴란드 재무장관 및 부총리

최근에 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중앙유럽대학에서 열린 노동경제학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다룬 주제 중 하나는 ‘장기 실업을 해결하려는 헝가리 정부의 노력이 얼마나 효율적인지’였다. 세미나에 참석한 이들은 헝가리 정부를 위해 여러 가지 기술적인 조언을 건넸다.

하지만 세미나가 진행될수록 나는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서구의 경제학자들이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3연임에 성공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독재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사위와 측근들의 부패 스캔들, 언론에 대한 통제, 반(反)난민 정책 등 여러 논란 속에 있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정부에 도움을 주겠다고 기술적인 조언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런 행동이 도덕적인지를 따져봐야 하는 게 아닐까.

확실히 장기적인 실업을 줄이는 건 사회악을 완화시키는 일이기는 하다. 공공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쓰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노력으로 경제 지표가 좋아지면 헝가리의 나쁜 정권이 더 오랫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헝가리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터키, 폴란드에 이르는 많은 국가에서 경제학자들이 직면한 딜레마다. 서유럽과 북미 같은 ‘민주주의 중심지’에 있는 경제학자들이라고 해서 미래에 비슷한 딜레마에 직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랜 시간에 걸쳐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기계적인 업무를 정당화하기 위해 세 가지 설명을 해왔다. 첫 번째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설명한 것처럼, 당시의 지도자가 ‘자비로운 전제군주’라고 가정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케인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지만 말이다.

이런 논리는 1970년대 유럽의 정반대에 있는 미국 경제학자들의 반박을 받았다. 이들 경제학자는 정부나 관료 역시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비롭지 않은 존재’로 가정했다. 정부의 관료들 역시 사회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관심이 없고, 단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익을 챙기는 데 몰두하는 집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규제 기능을 믿지 않는 ‘개입 회의론자’가 된다. 규제의 필요성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에는 시장 중심적인 해결책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 두 가지 입장 사이에서 늘 왔다갔다 한다. 이런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늘 자비롭다고 여기지도 않고, 늘 자비롭지 않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정부를 이끄는 정권이 민주적인 절차에 따른 합법성을 가지고 있다면 정책에 조언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공산주의 독재정권 아래 있던 경제학자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더 많은 연구 결과와 기술적인 제안을 하는 게 계획경제를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흐루쇼프가 권력을 잡은 1950년대 소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시대는 끝났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경제학자들은 악인에게 조언을 건네는 게 도덕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따져야 한다. 미사일이나 무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엔지니어나 과학자들이 하는 고민을 경제학자들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직면한 새로운 도덕적 딜레마는 공공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같은 국제금융기구에서 기인한다. 많은 경제학자가 이런 국제금융기구에서 일한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지난 3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지난 3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소련식 공산주의 시스템이 몰락한 후, 국제금융기구들은 중국, 러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공산권 국가들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시스템을 수용할 것이라고 보고 이들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제 이들 지역에서는 퇴보한 민주주의가 만연해 있다. 과연 이들 국가를 위한 활동이 인류 전체에 도움이 되는 건지 경제학자들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힘이 세계 질서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커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경제학자도 직업 윤리 신경 써야

경제학자들은 국제금융기구 내에서 독재정권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두 가지 종류의 국제기구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다양한 이념, 심지어 적대 국가들끼리도 공존할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하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뚜렷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모이는 곳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첫 번째 사례일 것이고, 유럽연합(EU)이 두 번째의 대표적인 경우다. IMF나 세계은행은 둘 사이 어딘가에 있다.

이런 분류를 경제학자들이 지켜야 할 도덕적인 지침에도 적용할 수 있다. 독재정권이 이끄는 국가가 다른 나라와 분쟁이나 전쟁을 피할 수 있게 하는 조언은 여전히 도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말처럼 ‘협상이 전쟁보다 낫다(jaw-jaw is better than war-war)’. 좋은 예로 중동 국가들 간에 담수를 효율적으로 공유하는 방안을 경제학자들이 연구해 분쟁을 막은 사례가 있다.

반면에 독재정권 유지에 도움이 될 만한 정책적인 조언을 건네거나 연구를 진행할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경제학자들의 연구나 조언이 독재정권의 비도덕적인 행보를 강화하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에게 장기 실업을 줄이는 방안을 알려주는 일을 경제학자들이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매번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은 그때마다 상황에 맞춰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과거처럼 권위적인 독재정권과 함께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라는 직업 전체의 윤리에 대해서 말하자면, 도덕적인 결과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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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오르반

헝가리의 정치인. 1998년 35세의 나이로 유럽 최연소 총리에 올랐다. 2002년 총리에서 물러난 뒤 잇따라 두 차례 총선에서 패했지만, 2010년 총선에서 오르반이 이끄는 피데스당이 승리하며 다시 총리로 선출됐다. 

올해 4월에 열린 총선에서도 승리하며 오르반 총리는 3연임에 성공했다. 오르반 총리는 측근들의 부패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반난민, 반유럽연합(EU) 같은 포퓰리즘 정책과 경제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정권을 이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