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데어 터너(Adair Turner) 영국 금융감독청장, 신경제사고연구소 운영위원장, 영국산업연맹(CBI) 대표, 메릴린치 유럽법인 부회장
아데어 터너(Adair Turner) 영국 금융감독청장, 신경제사고연구소 운영위원장, 영국산업연맹(CBI) 대표, 메릴린치 유럽법인 부회장

 미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수·이하 출산율)이 1.75명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소식은 충격과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1.75명은 197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미국 경제가 활기를 띠자 1.8~1.9명에 그쳤던 출산율이 2~2.05명으로 증가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다르다. 최근 5년 동안 미국 경제는 갈수록 빠르게 좋아지고 있지만, 과거처럼 출산율이 함께 증가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런 흐름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은퇴자에 비해 노동자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렇게 되면 연금 기금과 의료 복지에 심각한 재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낮은 출산율이 항상 나쁜 건 아니다. 경제가 좋을 때 늘 출산율이 높았다고 볼 만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미국의 출산율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만한 수준은 아니고, 오히려 약간의 혜택을 가져온다고도 볼 수 있다.

모든 주요 선진국의 출산율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감소했다. 당시 출산율은 인구대체율로 불리는 2.05명을 밑도는 수준이었다. 인구대체율은 현재 수준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을 말한다. 지역별로 보면 1970년대 후반에 북유럽 지역이 1.8명, 서유럽은 1.65명, 미국은 1.77명 정도였다. 

1990년대 들어서 미국의 출산율이 유럽보다 높아졌던 것을 놓고 여러 의견이 있다. 일각에서는 유럽보다 미국 경제가 더 활력이 있고 자신감이 높아진 증거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미국 흑인과 백인의 출산율은 인구대체율을 크게 밑돌았고, 미국의 출산율이 증가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건 히스패닉계의 출산율이었다. 이민 1세대의 출산율은 그들이 떠나온 지역의 출산율과 대체로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데, 미국에 정착한 히스패닉계의 높은 출산율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라틴 아메리카 지역도 출산율이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멕시코는 2000년 2.9명이었던 출산율이 지금은 2.1명으로 낮아졌고, 브라질은 2.5명에서 1.7명으로 낮아졌다. 히스패닉계 이민자 덕분에 높아졌던 미국의 출산율도 덩달아서 고소득 선진국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출산율 수준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민으로 인한 일시적인 영향이 없다면, 모든 주요 선진국의 출산율은 1.2~2명 수준을 유지한다. 대체로 1.3~1.9명 수준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경기 후퇴가 일시적으로 출산율을 낮추고, 그 뒤에 다시 출산율이 반등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면 경제 성장과 출산율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를 찾을 수는 없다.


경제 성장과 출산율 상관관계 없어

캐나다는 출산율이 낮지만 미국 못지않게 경제 상황이 좋고, 지난 20년간 강력한 경제 성장을 유지해온 독일의 출산율은 1.4~1.5명 수준이다. 그에 비해 경제적으로 독일보다 나을 게 없는 프랑스의 출산율은 1.98로 높은 편이다. 한국은 출산율이 1.2~1.3명에 불과하지만, 경제 성장을 유지해왔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경제가 가장 번성한 칠레의 경우 출산율이 1.76명에 불과한데, 경제적으로 항상 위기에 처해 있는 아르헨티나는 출산율이 2.27명이나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의 출산율이 감소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제가 될 만큼 낮은 수준까지 간 게 아닌 만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기대 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은 낮아지면서 전체 인구에서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줄어들 것이다. 반면에 부양을 받아야 하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계속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게 되는 건 마다할 일이 아니고, 은퇴 연령을 높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면 된다. 사실 로봇에 의한 자동화가 급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노동 가능 인구가 급증하는 것도 그렇게 유익한 일은 아니다. 노동력의 공급이 감소하게 되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실질임금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여성의 역할에 대해 현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선진국 국가들에서 인구대체율보다 낮은 출산율은 불가피한 동시에 환영할 만한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물론 출산율이 1.4명에 불과한 일본처럼 극도로 낮은 수준이 오래 유지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국제연합(UN)에 따르면 지금부터 2050년까지 아메리카 대륙의 인구는 지금보다 15~20% 증가하고 21세기의 나머지 기간에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의 인구는 현재 1억2500만명 수준에서 약 8000만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이 정도 규모의 인구 감소는 고령화하는 사회를 지탱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의 출산율이 1.75명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저출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의 출산율이 1.75명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저출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적정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 시장에서의 차별을 없애고, 육아 휴직이나 보육 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여성이 자신의 커리어를 유지한 채 원하는 만큼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걸 어렵게 만드는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게 사회가 할 역할이다. 스칸디나비아의 국가들은 이런 면에서 모범적인 사례다. 이들 국가의 출산율은 인구대체율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1.75~1.9명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이런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1.75명보다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건 지금 당장 출산율을 높이겠다고 나서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출산율이 낮아지는 게 불가피한 일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불필요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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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저출산 대책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들은 1.8명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저출산 대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확립된 양성평등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출산과 양육에서 남녀 간의 차이를 두지 않고 남자에게도 충분한 육아휴직 기간을 보장한다. 이밖에도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미혼모 지원, 입양 확대, 주택 시장 안정 등 다양한 정책적인 뒷받침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