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 옥스퍼드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미국 경제조사연구소 소장, 미국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 옥스퍼드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미국 경제조사연구소 소장, 미국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

미국 가계저축률을 높이려면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1960년부터 1980년까지, 가계저축률은 세후 연봉의 10~13%를 차지했고, 공장과 설비 투자를 위한 자금 창구 기능을 했다. 그 후로 가계저축은 급격히 감소했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평균저축률은 5.5%에 불과했다. 현재(2월 기준)는 3.4%에 머물고 있다.

저축률 하락의 원인은 불분명하다. 은퇴 후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 까닭에 근로 연령층이 더 이상 노후를 대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설명도 그럴 듯하다. 사회보장제도가 1930년대에 만들어졌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보수층의 반대 때문에 정치적으로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우려가 널리 퍼졌었다. 그러나 사회보장제도의 재원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1982년에 매우 보수적인 성향의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이를 구해냈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등 노년과 빈곤층을 위한 의료보험제도 덕분에 노후 의료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1981년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자유방임주의 부활을 통해 경제를 재건하고 군비확장을 통해 ‘미국의 부활’을 외쳤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정부 지출 감소와 감세, 저금리의 보수주의 경제정책인 ‘레이거노믹스’로 미국 경제를 다시 회복시켰고 임기 말인 1988년의 저축률도 6.9%를 유지했다. 레이거노믹스는 경제회생을 불러 왔지만, 대량감원과 빈부격차 등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면서 미국의 저축률은 1993년 5%대로 하락했다.

원인이 무엇이건 현재의 낮은 가계저축률은 정치적 결단을 필요로 하는 심각한 문제다. 다행히 미국 의회의 시각도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었다. 대공황의 기억이 남아 있던 제2차세계대전 초기에는 경제 불황에 대한 케인스 스타일의 공포가 정치인들이 저축률 하락을 선호하도록 만들었다. 저축률이 낮을수록 소비지출이 늘면서 수요가 따라 늘고, 고용이 증가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책 입안자들이 저축률이 높으면 실제로 투자가 늘어나고 성장이 빨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의회는 개인 저축을 장려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위한 일련의 대응 방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주들이 직원 퇴직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401(k) 계좌의 등장이었다. 401(k) 프로그램은 고용주가 후원하고 관리한다. 의회는 또한 세금우대 개인퇴직계좌(IRA)를 개설해 연간 최대 5500달러(약 615만원)를 적립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IRA로 들어가는 자금은 전액 세금 공제 대상이다. 관련 투자 수익도 인출 시까지 면세 대상이다. 401(k) 프로그램과 IRA는 세후 실질 수익률을 보장해 저축률을 높이는 촉매 역할을 했다.

두 프로그램이 저축률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저축률은 여전히 매우 낮다. 수백만 개의 중소기업들이 개설과 관리에 수반되는 비용 때문에 401(k) 프로그램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다. 기업들은 직원들이 임금을 줄여가며 (퇴직할 때까지 넣어둔 자금을 사용할 수 없는) 은퇴 준비 프로그램에 가입하도록 강요하진 않았다.

의회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법을 바꾸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작은 기업들은 서로 협력해 401(k) 프로그램을 만들어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들이 해당 프로그램에 ‘자동등록’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직원들이 401(k)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저축을 유지하도록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자동등록을 선택하면 직원들은 401(k) 프로그램에 가입해도 퇴직 연령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원할 때 자금을 인출할 수 있다.

자동등록이 매우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신입사원들이 월급의 5%를 401(k) 프로그램에 적립해야 할 경우 자발적인 참여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비율을 적립하더라도 (자동등록으로) 원할 때 해당 자금을 인출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대부분의 직원이 401(k) 프로그램 가입을 선택하고, 가입 후 은퇴할 때까지 자금을 인출하지 않는다.

이 법안이 현 의회에서 통과될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미국 가계저축률이 너무 낮다는 것과 이를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이 같은 유형의 법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Keyword

401(k)
1981년 도입된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제도다. 회사와 근로자가 급여의 일정 비율을 정년 때까지 갹출하며, 근로자가 직접 투자 상품을 고른다. 가입 여부와 납입 금액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게 한국의 현행 DC형 퇴직연금과 다르다.

개인퇴직계좌(IRA)
퇴직연금의 일종으로 근로자가 이직하더라도 퇴직금을 계속 적립하여 노후 소득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 퇴직금의 운용과 성과는 근로자 개인이 책임진다.

Plus Point

美 저축률 급등?… 산정 방식 변경 ‘착시효과’

2%대 후반~3%대 초반에 머물던 미국의 가계저축률이 최근 급등했다.

미 상무부가 지난 6월 발표한 5월 개인소비지출 보고서를 보면, 4월까지 2.8%에 머물던 미국의 가계저축률은 6.8%로 한 달 만에 4%포인트 급등했다. 그렇다고 저축액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 정부가 저축률 산정 방식을 바꾸면서 생긴 일종의 착시효과일 뿐이다.

저축액은 전체 수입에서 지출과 세금을 빼고 남은 금액이다. 최근 저축률이 상승한 이유는 그동안 산정에 포함되지 않았던 자영업 소득(proprietors’ income)이 수입 항목에 새로 추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포함된 항목이 소득 상위 계층의 저축액과 관련이 있을 뿐이어서 새로운 저축률이 이전 저축률만큼 ‘잠재 소비력을 평가하는 잣대’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한편 미국의 6월 개인소비지출(PCE)은 전월대비 0.4%(계절조정치) 증가했다. 상무부는 서비스 소비의 증가로 소비지출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물가 상승도 소비지출 확대의 원인으로 꼽혔다. 가계 소비지출은 미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최대 성장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