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 와세다대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조선비즈·동아일보 기자, 일본 도쿄 IT 기업 근무, ‘오타쿠 진화론’ 저자
이진석 와세다대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조선비즈·동아일보 기자, 일본 도쿄 IT 기업 근무, ‘오타쿠 진화론’ 저자

 여름이 다가오면 일본인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표적인 풍물 몇 가지가 있다.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놀이, 지역별로 열리는 전통축제 ‘마쓰리(祭)’ 그리고 통칭 ‘고시엔(甲子園)’이라 불리는 하계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다.

고시엔은 꿈의 무대다. 일본 4000여 고교야구부 중 치열한 예선을 거친 한 줌의 팀만이 설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야구선수라도 평생 한 번 오르기가 쉽지 않다.

8월 5일 개막해 본선에 진출한 전국 56개 고교 대표팀이 2주간 대장정을 펼치게 될 고시엔은 올해 100회를 맞는다.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의 홈구장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한신고시엔구장이 그 무대다. 제10회 대회부터 쓰고 있는 이 구장은 갑자년(甲子年)인 1924년 완공돼 갑자원(甲子園), 일본어 발음으로는 고시엔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이후 고시엔은 일본 고교야구의 성지(聖地)가 됐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고시엔 고교야구 대회는 올해 100회를 맞아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지금까지 무료로 개방되던 외야석도 올해부터는 입장권을 사야 한다. 주요 방송사는 대대적인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전 경기를 중계한다. 개막전은 뉴욕 양키스 출신인 마쓰이 히데키(松井秀喜)가 시구한다. 그 또한 고교 시절 이 영광의 무대에 섰다. 5연타석 사구 출루라는 진기록도 남겼다.

고시엔 100년사는 태평양전쟁을 관통한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는 전쟁으로 열리지 못했다. 패전 후 미 군정(GHQ)은 고시엔구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대회 명칭에서 ‘전국’을 삭제했다. 신문사의 주최자 자격도 금지했다. 

우여곡절 끝에 5년 만에 다시 열린 1946년 고시엔은 혼란과 열광이 뒤섞였다. 선수들은 먹을 쌀이 부족했다. 패배한 팀이 한동안 경기장에 머무르게 될 승자 팀에 음식을 넘겨주고 엉엉 울며 돌아가기도 했다. 우승팀인 오사카 나니와상고는 시내 퍼레이드에 나섰는데, 미 군정 측이 이들이 든 붉은색 깃발을 공산당 적기로 오인해 제재하는 일이 벌어졌다.

고교야구 팬들이 고시엔의 역사를 논할 때 단골 화젯거리는 대만 고교야구팀의 준우승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대만뿐 아니라 조선과 만주 대표팀도 고시엔에 출전했다. 대만 자이농림학교는 1931년 준우승을 차지했다. 일본인 감독 곤도 효우타로(近藤兵太郎)가 이끄는 이 팀은 일본인과 대만인, 한족으로 구성됐다.

선수들은 일본 땅에서 일본인 관객이 보는 가운데 일본어로 소통하며 공을 치고 달렸다. 전통의 강호인 일본 주쿄(中京)상고와 맞붙은 결승전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승부였다. 관중은 자이농림학교의 일본식 발음인 ‘카노(嘉農)’를 목 놓아 외쳤다.

자이농림학교의 고시엔 출전은 2014년 대만에서 스크린으로 각색됐다. 영화 ‘KANO 1931 바다 건너 고시엔’은 식민지 시절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대만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종전 후 자이농림학교가 고시엔에 다시 모습을 보이는 일은 없었지만,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자이농림학교의 후신인 국립자이대학은 결승전 상대였던 주쿄대학과 2016년 친선경기를 가져 화제를 모았다.

조선의 고교야구팀도 고시엔구장을 밟은 적이 있다. 1923년 조선 예선 우승팀인 휘문고보(현 휘문고)다. 조선총독부는 내선일체(內鮮一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인 학생의 고시엔 참가를 독려했다. 내선일체란 일본 본토를 뜻하는 내지(內地)와 조선은 한 몸이라는 뜻이다. 휘문고보 야구부는 당대 최고의 조선인 야구팀인 황성 YMCA 야구단과 맞붙어 승리한 적도 있다. 휘문고보는 고시엔 8강까지 올랐다. 조선팀 최고 기록이다. 한국 야구계에서는 달갑지 않은 역사다. 당시 감독은 조선총독부 연구원으로 일제에 부역했던 박석윤이었다.


군인 양성 과정 같은 ‘고시엔 정신’

격랑의 근대사를 넘어 100회를 이어온 고시엔은 최근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사상 최악이라 불리는 올여름 폭염이 이유 중 하나다. 열혈 야구 소년들은 뙤약볕 아래 땅볼을 치고도 1루를 향해 전속력으로 헤드 슬라이딩을 한다.

2017년 8월 일본 고교야구 고시엔(甲子園)에 참가한 선수들. 사진 마이니치 신문
2017년 8월 일본 고교야구 고시엔(甲子園)에 참가한 선수들. 사진 마이니치 신문

이들에게서 정신론과 기합으로 무장한 전사의 모습을 본다. 새까맣게 얼굴이 그을린 까까머리 소년들의 눈에는 비장함이 가득하다. 이들이 고시엔에 서기까지 거쳐 온 수천 번의 스윙과 투구는 ‘근성’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에이스 투수의 연일 등판도 흔하다. 어깨가 망가져 선수 생명이 끝나게 될 위험도 개의치 않는다. 2006년 당시 와세다실업고 에이스 사이토 유키(齊藤悠葵)는 7경기 연속 선발로 등판해 69이닝을 던졌다.

의식 있는 일본 야구인들은 냉방시설이 완비된 인근 돔구장인 교세라돔으로 경기장을 옮기고, 투구 수 제한 규정 도입을 주장하지만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뛰는 고등학생들의 혈투에 열광하는 국민의 기대치를 낮추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최근 일본 스포츠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스캔들의 근원에 ‘고시엔 정신’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파 정치인 하시모토 도오루(橋下徹)마저 “군인 양성 과정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할 정도다. 감독의 지시로 악질적인 고의 태클을 감행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니혼대 미식축구팀, 스모 선수들의 위계질서를 놓고 벌어진 폭력 사태, 여자 레슬링 감독의 ‘갑질’ 파문 배경에 고시엔으로 대표되는 일본 스포츠계의 상명하복과 성적 지상주의가 끼친 영향이 묻어있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투수 다르빗슈 유는 후배들에게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과거의 영광에 젖어 고된 훈련을 강요하는 지도자들에게는 일침을 가했다. 

국민적 인기만큼 탈도 많은 고시엔이 변화할 수 있을까. 복잡한 감정이 엉킨 채로, 100번째의 ‘플레이 볼’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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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엔
고시엔(甲子園)은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西宮)에 있는 야구 구장 이름이다. 매년 일본 고교야구 대회가 이 구장에서 열리기 때문에 이 대회를 통칭할 때 고시엔이라고도 부른다. 일본 고교야구연맹과 아사히신문사의 공동 주최로 매년 8월 열린다. 연수로는 2015년 100주년을 맞았지만, 태평양전쟁으로 1942~45년 중단돼 횟수로는 올해 8월 5일 열린 대회가 100회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