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적 가설인 임금주도 성장론을 각색한 소득주도 성장론 실험은 참혹한 실패로 끝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설계자인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의 후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출신의 경제 각료는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포용적 성장’이라며 새롭게 포장하는 데 애쓰고 있다. 구체적인 정책의 변화가 없는 가운데 명분으로 무엇을 내세운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편 투자, 소비, 성장은 물론 일자리와 미래 전망까지 한국 경제는 글로벌 경제와 정반대로 움직이며 경고음을 내고 있다.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71년 이후 한 번도 예외 없이 꾸준히 상승세를 거듭하던 제조업 생산능력지수가 올 2분기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서서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근본부터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 정부의 참사에 가까운 경제 정책 실패는 시장과 기업을 보는 근본적인 시각에 커다란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은 무엇이 가치가 있고 없는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자신의 행복을 최대한 추구하기 위해 제한된 자원을 배분할 뿐이다. 자유시장은 이들의 의사 결정 현실을 반영하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일 뿐이다.

그런데 시장이 주는 신호를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시장과 경제주체를 불온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경제주체의 자유로운 거래를 누군가 하나를 얻으면 다른 누군가가 하나를 잃는 ‘제로섬 게임’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경제를 힘이 우월한 ‘갑’이 ‘을’을 수탈하는 체제라고 인식한다. 재벌은 그 수탈 체제의 정점에 있기에 정부는 이들을 적폐로 본다.

이런 시각 때문에 이번 정부의 큰 정책 목표 중 하나가 재벌의 독점 경제력의 해체다. 이 목표는 경제민주화니 동반성장, 공정경제라는 미사여구로 포장된다. 현 정부가 내건 ‘재벌 총수 일가 전횡 방지 및 소유·지배구조 개선’은 양보할 수 없는 국정과제로 돼 있다. 정부의 모든 권력기관이 재벌 해체 내지는 재벌 통제 강화가 정의로운 일이라고 보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시장경제 본질에 대한 부인이고 매우 위험한 시각이다. 이번 정부가 주목하는 소득 격차의 확대나 청년 실업은 재벌이 없는 서구에서 훨씬 더 심하다. 유럽의 대기업과 히든 챔피언 기업들은 대를 이어 경영권이 상속된다.


기업 경영권 위협하는 정부

재벌 총수의 전횡을 방지한다고 하지만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경영권이란 바로 능력 있는 경영자에게 권력을 주는 데서 장점이 생긴다. 기업 경영에 대해 잘 모르는 투자자들이 자본을 모아주고, 사업을 잘할 수 있는 경영자에게 통제권을 위임해 그 과실을 나누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장점이다. 모든 주주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위임된 권력으로 만들어진 게 우리나라 최고 기업인 삼성이다. 하지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삼성의 지배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일갈하고 있다. 근거도 없을 뿐더러 오만하기 그지없다. 경영권을 위협받는 기업이 첫 번째 하는 일은 경영권 보호다. 투자나 일자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얘기다.

>단기적으로 불합리하게 보이는 이러한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시장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시장을 규율하는 마지막 수단 중 하나는 관계를 철회할 자유다. 가맹주가 가맹점을 착취한다면 가맹점은 재계약하지 않는다. 그러면 좋은 가맹점을 모을 수 없다. 고용주가 피고용인을 비인간적으로 착취한다면 그 기업은 인재를 모을 수 없다. 내부거래로 기업의 자원을 배임적으로 빼돌리면 그 기업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시장에는 이외에도 모순을 해결하는 수많은 대안이 있다.

하지만 정부가 공정과 정의를 판단하는 순간 경제 주체들은 혁신 경쟁이 아니라 로비 경쟁을 하고 정부는 약자의 대리전에 이용당한다. 원청기업의 가격 인하 압력을 혁신으로 극복하는 하청업체만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 갑질이라고 정부가 개입하는 순간 하청업체는 혁신 대신 정부를 방패막이로 이용한다. 이런 일이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