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 하버드 케네디 경영대학 석사, 타임·파이낸셜타임스 경제 칼럼니스트, ‘자본주의 4.0’ 저자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 하버드 케네디 경영대학 석사, 타임·파이낸셜타임스 경제 칼럼니스트, ‘자본주의 4.0’ 저자

 도널드 트럼프가 중국과 무역전쟁에서 물러서게 될까, 아니면 승리하게 될까. 답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이란의 수출 경쟁력 제로화’ ‘모든 중국산 물품에 관세 부여’. 트럼프 특유의 무시무시한 협박이 결국은 갑작스러운 악수와 포옹, 상호 이해관계 결성으로 끝맺는 것은 지금까지 많이 봐왔던 패턴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시는 트럼프가 북한의 비핵화 추진 계획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최근 트럼프는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위원장과 면담 이후 EU에 대한 관세 위협도 보류했다. 또 이란에는 전제 조건 없는 미·이란 회담을 제의하기도 했고, 중국에 대해선 무역전쟁이 협상 타결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시그널을 보내기도 했다.

트럼프는 왜 자꾸 공허한 협박을 일삼는 것일까. 트럼프를 비판하는 쪽에선 그를 단순한 허풍쟁이, 바보, 무식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비록 똑같이 암울한 말이긴 해도) 이보다 더 어울리는 설명이 있다.

트럼프의 외교 정책 접근법은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명언인 ‘말은 부드럽게, 징계는 엄하게(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와 대비된다. 트럼프 방식은 ‘말은 강하게, 퇴각은 쉽게’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책임하고 비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런 트럼프의 방식이 어쩌면 21세기 미국의 외교 정책 역사상 가장 정치적으로 효과적이면서도 합리적일 수 있다.

만약 미국이 세계 패권국 지위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미국 유권자들은 중국 고립책과 같이 달성하기 어려운 외교 정책에 수반되는 심각한 경제적, 군사적 희생을 거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 만약 미국인들이 세계 지배에 따른 비용을 더는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면 ‘트럼프식 위장 퇴각’은 최소한 신보수주의적 호전주의 혹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보다는 나은 정책일 것이다(신보수주의적 호전주의로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시리아와 리비아에 전쟁을 일으키고 아랍의 봄을 촉발시켰다).

미국의 퇴각을 자신의 정치적 승리라는 개인적 공(功)으로 가져가 버리는 트럼프의 ‘기술’은 최근 북한과의 거래나 러시아의 시리아 지배에 대한 침묵에서 잘 나타난다. 아마 비슷한 정책이 앞으로 중국, 이란, 우크라이나와 관계에서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정학·경제적 현실에 기반한 결론인 데다, 이 정책이 트럼프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엔 비합리적인 트럼프의 전략이 그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지를 알기 위해선 미·중 무역전쟁으로 되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시진핑 주석이 양국 간 무역 이슈의 근본, 즉 군사·기술적으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결의에 대해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또 트럼프가 미국과 중국의 구조적 차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므로 본인이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중국이 국민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 공산당 체제의 독재 국가인 반면, 미국은 국민이 경제난을 받아들이지 않을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가 미국의 무역 적자가 일종의 절도에 의한 결과이며 이를 촉발한 ‘도둑들’은 관세와 각종 금수 조치로 ‘처벌’돼야 한다고 믿는 이데올로기적 보호론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데올로기적 보호론자이기 이전에 정치인이고, 관세가 미국 소비자에게 고통을 줄 것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또 미국 경제가 완전고용에 가까울수록 보호무역에 따른 비용을 수출 주체인 중국보다 이를 수입해 소비하는 미국 소비자가 부담하게 된다는 점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잉여 노동력이나 초과 생산 능력이 없는 미국 기업이 자체적으로 중국산 제품을 대체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중국 수출 기업들이 마진을 줄이거나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제품 가격을 인상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완전고용 상황에서의 관세는 중국 벌 주기 효과로 이어지기보다는 미국 국내 기업과 소비자에게 추가 세금을 부과하게 되는 쪽으로 작용하게 된다. 관세 부과와 트럼프 감세 정책이 더해져 결국은 인플레이션 상승을 자극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상이 가속화할 수 있다.

미국 정부 곳곳에서 트럼프의 미·중 무역전쟁에 비판적인 반응이 나온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관세로 수입과 수출이 모두 감소해 무역적자가 거의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대국의 보복 관세뿐 아니라 미국 기업이 수출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증가해 결국 전체 수출 감소로 이어진다는 우려다. 지난달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상·하원 금융위원회에서 “무역전쟁의 결과는 매우 불확실하다”며 “보호무역주의는 경쟁력과 생산력이 떨어지는 경제 시스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반중 성향 인사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나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장,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중국을 상대로 치킨게임을 시작하도록 허용했을까.

아마도 트럼프는 퇴각을 통해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자국에 경제적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까지 대립을 격화시키고 중국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평화 조건을 제시하는 식이다. 트럼프는 이를 통해 상황을 무역전쟁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면서도 정치적 승자로도 보일 수 있다.


 “무역전쟁에서 후퇴해도 찬사 받을 것” 

트럼프는 중국산 소비재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미국 유권자들의 큰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관세 추가 부과 위협만으로도 ‘중국에 강경하다’는 인상을 주면서 미국의 일자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이미지까지 각인시킬 수 있다. 일단 트럼프는 이런 공격적인 메시지를 통해 충분한 정치적 이익을 얻고 나면, 다시 비현실적인 요구 대신 외교적인 후퇴를 조용히 내세워 중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유턴(U-turn)은 트럼프에게 정치적으로 해를 끼치기는커녕 그의 권력을 강화시킬 동력이 될 것이다. 트럼프는 집권기 내내 ‘겉모습이 실상보다 더 중요하다(근대 미국 정치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은 없었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트럼프식 ‘지그재그 전략’은 비현실적인 약속으로 지지를 얻고, 실용적인 현실 인식을 통해 다시 승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중 갈등에서 트럼프는 과격한 발언으로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를 공략했다. 그는 맹목적 애국주의로 이득을 극대화하고 나면 다시 자신의 무모한 위협으로 인해 벌어지는 피해를 피하는 식으로 온건파에게 호소할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결국 중국과의 싸움에서 슬쩍 후퇴한다 해도 그때 가서 그가 경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거나 신경 쓰는 유권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을 설득해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 무역전쟁의 위험을 피했다는 점에서 찬사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 무역전쟁 위험이라는 것을 트럼프가 만들어낸 것임에도 말이다. 전쟁을 선포하고 평화를 회복한 다음, 두 가지 모두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는 것, 이것이 바로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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