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일러스트 : 양승용

나는 1974년 당시 조선 강국이던 스웨덴 항구도시 말뫼의 코쿰스(Kockums)조선소에서 태어났다. 45층 건물 높이인 124m의 거인이라 골리앗이라고 부른다. 자체 무게만 6600t에 달하고, 최대 1600t을 들어 올릴 수 있다. 중형 승용차 1100대 무게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다. 나는 말뫼의 자랑이었고, 스웨덴 조선업의 상징이었다. 도시 어디에서나 초록색 거대한 몸체를 볼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초대형 유조선(VLCC)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조선업 호황은 끝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잔치가 어디 있겠나. 1980년대 스웨덴 조선업은 쇠퇴했다. 몰락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코쿰스조선소는 문을 닫았다. 한때 50만 명에 달했던 말뫼 인구는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20만 명대로 떨어졌다. 나는 10년 넘게 할 일이 없었다. 우두커니 서 있었다.

2002년 100억원이 넘는 해체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렸다. 1972년 코쿰스조선소의 전성기에 막 회사 문을 열어 체급이 다르다고 여겼던 한국의 조선소로 팔려가는 처지가 됐다.

2002년 9월 25일 말뫼 주민들은 크레인의 마지막 부분이 해체돼 운송선에 실려 바다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아쉬워했다. 이제는 막을 내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도시의 흉물을 돈 안 들이고 치웠다고 여긴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스웨덴 국영방송은 내가 떠나는 장면을 내보내면서 장송곡을 틀었다. 한 언론은 “말뫼가 울었다”고 보도했다. 그래서 내게 ‘말뫼의 눈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몰락한 도시의 비통함, 슬픔을 상징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울산으로 왔다. 거대한 내 몸체는 초록색에서 강렬한 붉은색으로 색깔이 바뀌었다. 해체·선적·설치·개조·시운전 등에 총 22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2003년 하반기부터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가동에 들어갔다. 한국인들은 근면했다. 한국 조선업은 세계 최초, 세계 최대라는 기록을 쌓으면서 성장했다. 한국은 결국 일본도 제치고 조선업 세계 1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호황은 길지 않았다. 2010년을 전후해 조선업 불황이 덮쳤다. 한국 조선사 ‘빅 3’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모두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혁신 없다면 다시 팔릴 운명

나는 다시 한 번 멈춰서게 될 것 같다. 이달 25일 현대중공업 해양 플랜트 공장이 일감이 없어 35년 만에 처음으로 가동이 중단된다. 45개월째 수주 실적이 없다. 회사에서는 무급 휴직을 추진할 모양인데, 노조는 반발하고 있다. 조선 물량 가운데 일부를 해양 플랜트 공장으로 배정하고, 해양 플랜트 인력을 다른 작업장에 배치해서 무급 휴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노조도 안다. 2016년(39억달러)과 지난해(47억달러) 겪은 극심한 ‘수주 절벽’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4분기 1600억원 적자에 이어 올 1분기에 1238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국내 조선 3사의 독무대였던 해양 플랜트 시장은 중국과 싱가포르의 추격에 밀리고 있다. 세계 최대 크레인이라는 타이틀은 중국 조선소들이 가져갔다. 1만1000t급 크레인을 세웠다. 나보다 7배쯤 크다. 싱가포르가 1만6000t급 크레인 건설을 추진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과거 수많은 유럽의 조선사를 파산으로 몰고 갔듯이 중국이 한국 조선을 위협하고 있다”며 “말뫼의 눈물이 울산의 눈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울산이 다시 조선업 세계 중심 도시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16년 전 내가 떠나온 말뫼는 연구·개발 중심 도시로 변신했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한 가지다.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 혁신 없이 이룰 순 없는 일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다시 한 번 팔려가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중국어를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진석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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