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권용진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이 공매도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자유한국당 조경태 의원이 지난 9일 같은 당 의원 9명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의원 3명과 함께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개정안에서 의원들은 공매도를 아예 금지하도록 했다.

조 의원은 개정법안을 낸 이유에 대해 “10월 29일 코스피지수가 약 22개월 만에 2000선 이하로 내려가면서 우리나라 증시의 급락 원인으로 공매도 제도가 지적됐다”며 “이달 들어 추가 하락은 없는 상황이지만 외국계 헤지펀드(전문 사모펀드) 등 대형 자본의 대량 공매도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외국자본이 대규모로 공매도를 하는데 이게 주가 하락의 주범이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매도는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한 후 나중에 주식을 매입해 빌린 주식을 돌려주는 것인데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경우 많이 발생한다. 공매도 거래가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많은 이유는 주가가 하락하면 공매도 투자자들이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가가 6만원인 주식 100주를 30일 후에 갚는 조건으로 빌려서 이것을 매각(공매도)해 600만원을 받은 A투자자가 있다고 해보자. 그는 30일 후에 주가가 4만원이 됐다면 시장에서 100주를 400만원에 사서 빌린 주식을 갚으면 200만원의 차익을 남길 수 있다. 여기에 주식을 빌리면서 약정한 이자를 제해야 하지만 그래도 주가 하락으로 이익을 본 셈이다.  

하지만 공매도 투자자가 주가가 하락하면 이익을 본다는 것과 공매도 때문에 주가가 하락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법으로 공매도만 금지하면 주가 하락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시장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규제 일변도의 탁상공론일 뿐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에서 공매도 거래대금이 전체 주식거래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7%에 불과하다. 국회의원들과 일부 투자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5~7%의 매도량이 전체 주가지수를 끌어내린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주식시장은 공매도 거래보다 훨씬 많은 정상적인 매도와 매수거래 규모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주가를 고의로 떨어뜨리기 위해 외국계 펀드들이 공매도한다는 주장을 좀 더 들여다보자.

일단 공매도를 하려면 주식을 빌려야 해서 적정한 신용도가 있어야 하고 이자까지 내야 하므로 외국계 펀드들이라고 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쉽게 특정 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결정할 수는 없다. 또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매도하기 때문에 주가가 상승할 경우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위험한 거래이기도 하다. 100주를 빌려 5만원에 판 투자자는 주가가 7만원이 되면 700만원에 100주를 사서 갚아야 한다.

이자를 내야 하고 주가상승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투자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고난이도 투자이며 가장 복잡한 금융거래 중 하나다. 단순히 주가가 하락할 것 같다는 임의적 판단이나 고의로 주가를 내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공매도 투자를 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외국계 펀드나 기관투자자가 공매도를 하는 데는 다양한 목적이 있겠지만 주로 주가가 하락했을 때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보조적 성격의 투자가 많다. 분명한 것은 고의로 주가를 내리려 공매도를 하는 투자자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공매도가 주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분석은 해외에서도 다양하게 검증됐다. 미국 재무학회(American Finance Association)가 발간하는 ‘금융저널(Journal of Finance)’ 2013년 10월호에 실린 실험에 따르면, 일부 주식에 대해 공매도를 금지하고 공매도를 금지하지 않은 주식과의 변동성, 상승률 등을 비교했을 때 큰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2008년 미국에서 일부 금융 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했을 때에도 이런 조치가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를 찾기 어려웠다는 연구도 있다. 이렇듯 실제로 공매도 자체는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시장의 다양성과 안정적인 주가 형성을 위한 투자 방식에 더 가깝다.


‘공매도개선을위한주주연대’와 ‘희망나눔주주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9월 17일 국민연금 대토론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KT스퀘어 앞에서 국민연금의 공매도 투자자에 대한 주식대여 중지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공매도개선을위한주주연대’와 ‘희망나눔주주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9월 17일 국민연금 대토론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KT스퀘어 앞에서 국민연금의 공매도 투자자에 대한 주식대여 중지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책임회피 위한 극단적 규제는 무책임

국내에서 어떤 규제를 시행할 때, 문제가 된 사태나 위험 상황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극단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가 드러나 주식거래가 정지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같은 산업군에 속한 제약‧바이오 회사들의 주가가 요동쳤고 이런 혼란의 주범으로 공매도를 탓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매도 전면 금지 규제가 이야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공매도는 단순히 주식을 거래하기 위한 주문방식이며 도구일 뿐이고, 도구에 선악(善惡)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는 마치 칼(도구)은 무기로 사용될 수 있고 위험하기 때문에 악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칼을 사용하는 방식에는 선악이나 의도를 구별할 수 있지만 칼 자체의 선악을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금융시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규제만을 외치는 것은 무책임하다.

공매도 전면 금지처럼 금융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규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금융당국이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고 정확한 금융현장의 목소리를 정치인들에게 전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다양한 전문가와 협업을 한다고는 하지만 각 분야의 실무 전문가와 함께 규제안을 만들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다양화되는 만큼, 규제 또한 더욱 세밀하고 전문적이어야 한다.

또 법과 규제의 테두리를 만드는 기관이라면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현업 전문가들을 배제한 채 규제안을 만들면서 무조건 전면 규제만 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귀담아 듣고 산업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나가는 금융당국의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