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일러스트 : 양승용

브라질 북부 호라이마주에 베네수엘라 난민 수용을 위해 유엔난민기구(UNHCR)가 세운 1000명 규모의 난민 캠프 시설이 지난달 들어섰다. 집권 좌파 노동자당을 꺾고 당선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페이스북 동영상을 통해 “브라질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번영과 자유, 가족과 신(神)의 편으로 가는 길, 다른 하나는 베네수엘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브라질 경제도 추락 중이지만, 베네수엘라 난민이 겪는 참담한 모습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더 왼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했다.

베네수엘라는 2015년 이후 인플레이션과 식량 부족 등으로 주변 국가로 탈출한 국민이 3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12%가 먹고살 수 없어서 자기 나라를 떠났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1년간 물가가 83만%나 올라 지폐 뭉치를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고, 물가가 비싸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 국민 몸무게가 평균 11㎏이나 줄었다고 한다.

세계 최대 원유 보유국 가운데 하나로 남미 최대 부국(富國)이라던 베네수엘라는 1999년 우고 차베스 정권이 들어서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이 나라와 국민을 동시에 망가뜨렸다.

브라질도 최근 15년 중 13년간 정권을 잡았던 좌파 노동자당의 경제 실정(失政)에서 뒤늦게 국민이 깨어났다. 브라질 경제는 2015·2016년 연속 -3.5% 성장하고 지난해엔 1% 성장했다. 헤알화 가치는 2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신임 대통령은 국영기업 민영화와 감세, 연금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20년 가까이 중남미를 휩쓸던 좌파 포퓰리즘이 퇴조하고 친기업·친시장 정책을 앞세운 우파 정권이 잇따라 집권하고 있다.


우파 정권 택한 남미

남미 포퓰리즘은 아르헨티나를 빼놓을 수 없다. 제1차세계대전 직후 세계 5~6위권 부국(富國)이었지만, 제2차세계대전 후 노동자의 지지로 출범한 페론 정권이 씨를 뿌린 포퓰리즘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르헨티나는 2015년 대선에서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당선되면서 12년 만에 좌파 정권을 퇴진시켰지만, 그 후유증을 앓으면서 IMF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다.

칠레에서도 지난 3월 억만장자 사업가 출신의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재집권하면서 ‘남미의 ABC(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로 불리는 세 나라 모두 우파 정권을 선택했다. 파라과이와 콜롬비아에서도 지난 8월 우파 정권이 출범했다.

남미는 수십 년간 포퓰리즘 단맛에 빠져 끌려다니다 이제야 우회전을 결정했다. 우리 정부도 포퓰리즘에 한 발 담그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북유럽 복지국가로 간다고 하는데 과속·탈선하면 남미로 직행이다. 아르헨티나 최대 일간지의 주필은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 것에 대해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자책했다고 한다.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가리키는 데모크라시는 그리스어로 ‘대중’이라는 뜻의 ‘데모스’가 어원이다. 공교롭게도 포퓰리즘도 대중을 뜻하는 ‘포풀루스’라는 라틴어에서 시작한다. 사람·국민 등을 뜻하는 단어다. 포퓰리즘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일부에서는 기원전 2세기 로마에서 농지 무상 분배 등을 내세웠던 ‘그라쿠스의 개혁’을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 1891년 미국에서 결성된 포퓰리스트당은 급격하게 세력을 키웠지만, 20년도 못 돼서 해산했다. 민주주의가 왕정이나 귀족정보다 우월한 체제이긴 하지만, 언제든 포퓰리즘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걱정하던 것이다. 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은 포퓰리즘 출현을 어떻게 막느냐에 따라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포퓰리즘 위험의 예로 독재자 히틀러를 들었다. “히틀러는 권력을 훔치지 않았다. 그는 국민에 의해 선출됐고, 그러고 나서 그의 국민을 파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