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새해부터 ‘중국발 애플 쇼크’가 글로벌 증시를 뒤흔들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2일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1분기(지난해 10~12월) 매출이 (기존 전망치인 900억달러보다 낮은) 840억달러 수준이 될 것’이라며 ‘매출 하향 조정의 주요 원인은 중국’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 여파로 하루 동안 애플 주가는 10% 폭락했다. 세계 투자자들은 ‘중국 부진이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 우려하며 주식 투매에 나섰다. 우량주 중심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은 이날 하루 2.83% 급락했다. 중국은 21세기 들어 연평균 9.3%의 고성장을 구가하며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그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이 6.5%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짐 오닐은 이번 칼럼에서 중국의 소비 둔화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짐 오닐(Jim O’Neill)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영국 서리대 박사,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맨체스터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짐 오닐(Jim O’Neill)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영국 서리대 박사,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맨체스터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난 10년 동안 세계 경제에 기름을 부은 것은 ① 중국 중산층의 구매력 향상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는 미국과 중국이 일종의 ‘자리바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② 미국이 지금보다 저축을 더 많이 하는 대신 소비를 줄이고, 반대로 ③ 중국은 저축을 줄이는 대신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분명 지난해까지는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제 더는 아니다.

이달 초 애플은 주주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2019년 1분기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그 이유로 아이폰과 맥, 아이패드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경제 성장세 둔화를 들었다. 일부 IT 애널리스트들이 회사 내부 문제도 이번 전망치 하향 조정의 요인이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애플이 이번에 내놓은 새 가이드라인은 중국인들의 소비가 둔화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중국 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진행형인 미·중 무역전쟁보다 더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미국의 무역 정책이나 다른 외부적인 요소들이 중국인들의 소비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인 소비 감소 문제의 뿌리는 중국 경제 모델 그 자체에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이 위기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10년간의 변화들을 분석해보자.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국내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5.6%였다. 전체 경제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하는 미국은 물론, 세계 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매우 낮다. 달러화 기준으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중국의 내수 소비 규모는 2조2000억달러로 미국(10조5000억달러)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높았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소비 비중이 작다는 우려를 희석시켰던 요소였다. 높은 경제성장률은 애플, BMW, 버버리, 포드 등과 같은 해외 브랜드에 대한 중국 소비자의 소비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2017년 기준 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9.1%를 기록했다. 달러화 기준 5조달러에 달하는 수준이다. 7년간 소비가 3조달러 넘게 증가한 것이다. 물론 미국의 소비자 지출(13조5000억달러·2017년 기준)에는 크게 못 미쳤지만, 적어도 격차는 좁아졌다.

중국 경제와 내수 소비가 지금 수준으로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2020년까지 소비자 지출은 지금보다 2조달러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소비의 절반 수준에 달하는 것이다. 중국 소비자들이 세계 경제에서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 이후 10년간의 경제 시나리오를 예측해보자. 2021~2030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8%대를 유지하면서 전체 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대까지 확대되고, 소비자 지출 규모가 18조4000억달러까지 증가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중국의 소비는 미국의 소비를 뛰어넘게 된다.

그런데 2019년이 막 시작된 지금 시점에서 떠오르는 의문점 하나. 만약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으면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까. 애플의 예상대로 중국인의 소비가 둔화될 경우 미국 소비자가 향후 10년간 세계 경제의 ‘유일한’ 엔진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렵다면 다른 나라가 이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부분적으로라도 이 역할을 해줄 나라가 있을까.

지난 40년간 내가 이 업계에 종사하면서 배운 점은 ‘절대 미국을 저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 소비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꾸준히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은 소비자 지출이 물가상승률, 높은 조달 비용, 저축에 대한 압박 등 여러 요소에 따라 휘청인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세계 경제 입장에서도 미국 소비자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과 같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돌이켜보면 ④ 미국이 재채기만 해도 세계가 감기에 걸렸던 경험이 있다.

최소 향후 10년 동안은 세계 소비 시장에서 중국의 자리를 대체할 나라가 마땅치 않다. 다른 선진국 경제는 최근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 데다, 여태껏 이들의 소비 지출이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쳤던 적이 거의 없다.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률은 글로벌 고가 명품 시장에 대한 중국 소비자의 잠재력이 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소비 시장도 꺾일 가능성이 크다. 사진 블룸버그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률은 글로벌 고가 명품 시장에 대한 중국 소비자의 잠재력이 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소비 시장도 꺾일 가능성이 크다. 사진 블룸버그

인도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와 같은 신흥국들은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쯤 세계 경제에서 미국과 중국이 담당하던 역할을 일부 나눠가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규모만 놓고 보면 지금의 중국 소비에 맞먹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2020년 인도의 GDP는 3조달러를 넘어서며 세계 5위 경제 대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도 소비자들이 중국 소비자 수준의 구매력을 갖출 때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중국의 소비가 ‘부활’할 가능성은 없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재정 지원에 나서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동시에 주민 등록 제도인 ⑤ ‘후커우(戶口·호적)’ 제도도 개혁해야 한다. 강력한 이주 제한 제도 탓에 지방의 노동자들이 도시로 이주해 일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 개혁 조치로 중국 경제의 안전성이 강화되면 중국 소비자들은 더 적게 저축하고 더 많이 지출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정책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게 불가능하다면 모두가 더 나빠지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Tip

중국의 내수는 중산층의 증가에 비례해 성장해 왔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 6년간 중국의 중산층은 4억 명으로 증가했다.

②③ 세계경제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중국의 가계 저축률은 37.1%, 미국의 가계 저축률은 7.8%로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같은 기간 한국의 가계 저축률은 8.1%다.
중국의 저축률이 급상승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부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낸 보고서에서 중국의 저축률이 높은 이유로 △‘한 자녀 정책’에 따른 인구 급감 △시장 중심 경제로의 변화에 따른 소득 증가와 소득 불평등 확산 △정부의 사회보장 지출 감소 등을 꼽았다.
세계적인 석학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도 짐 오닐과 같은 주장을 했다. 미국이 수년간 가진 것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지출하면서 살았고, 중국과 같은 해외의 과잉 저축을 바탕으로 돈을 흥청망청 써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무역수지 불균형이 일어난 탓에 국제 자본 흐름이 불안정해지면서 자산 거품이 커져 금융 불안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When the United States sneezes world catches cold.’ 금융 시장에서 많이 쓰이는 관용어다. 미국의 경기 사이클에 따라 세계 경제가 움직이는 패턴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재채기를 하면 세계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로 변형돼 쓰이기도 한다. 그만큼 중국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 중국에서 해당 지역에 장기 거주할 수 있는 일종의 자격이다. 최근에는 관련 제도가 많이 완화돼 후커우가 없어도 거주 자체는 가능해졌다. 다만 복지, 교육, 재산권 행사 등에서 차별을 받는다.
2016년 중국 정부는 1억 명의 농민공(農民工· 도시에서 일하는 농촌 출신 공장 노동자)에게 순차적으로 후커우를 발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들을 도시민으로 흡수해 내수를 진작하겠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