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카네기멜런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권용진
카네기멜런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유사과학(Pseudo-Science)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을 말한다. 유사과학이 일반 주장보다 무서운 점은 과학적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해서 맹목적인 믿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을 자면 사망한다든가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나타난다는 주장 같은 것들이 유사과학이다.

IT와 핀테크 업계에서도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을 이용한 유사과학이 판을 치고 있다. AI를 이용해 여행 갈 만한 곳을 알려주거나 기업에 적합한 인재를 소개하기도 하고, 맛집이나 데이트 상대까지 추천해준다고 한다. 소비부터 문화생활, 투자까지 AI가 전부 자동으로 추천하기 때문에 훨씬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을 모토로 이렇게 다양한 서비스가 나타났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자동화’와 ‘프로그램’ ‘AI’의 구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컴퓨터가 했기 때문에 더 정확하고 정교한 시스템을 가졌다는 식의 홍보나 논리를 쉽게 볼 수 있고, 이를 통해서 투자자를 모집하거나 소비자를 현혹하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AI란 자동화된 기계를 뜻하기는 한다. 실제로 오락실에서 테트리스(컴퓨터 퍼즐게임)의 상대편이 되어주던 컴퓨터 또한 ‘AI’라고 불렸었다.

하지만 테트리스와 같은 이런 프로그램들은 정해진 규칙, 이를테면 ‘공간을 남기고 쌓다가 작대기가 나오면 공간에 넣어라’라는 식의 규칙을 미리 명령어로 집어넣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AI가 아니다. 스스로 학습과 판단을 통해 기존 명령어를 변형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홍보로 많은 사람이 AI로 오해하는 서비스는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떻게 이를 구분할 수 있을까? 몇 가지 사례들을 통해서 이를 알아보자.

먼저 AI로 가장 많이 오해하는 경우는 단순 자동화 서비스다. 산업 혁명 이후로 수많은 것들이 자동화돼 왔지만 여전히 수동으로 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를 끊임없이 자동화시키는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자동화된 음식배달이나 주문과 같은 시스템이다. 마찬가지로 (영화, 공연 등의) 리뷰를 카테고리별로 모아 보여주는 것도 자동화를 통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다. 자동화하는 것은 현대 비즈니스의 가장 기본이자 가치를 생성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부문을 자동화하고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드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과거에 DB화가 잘 되어 있지 않았던 것들을 DB화하면 굉장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병원 정보를 한데 모으거나 예약을 도와주는 서비스인 미국의 ‘자크닥(ZOCDOC)’은 1조60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아 투자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똑닥’이나 ‘굿닥’ 같은 비슷한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맛집 리뷰를 한데 모은 ‘옐프(YELP)’는 3조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망고 플레이트’ 같은 서비스가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업들의 핵심 가치는 수동으로 모으거나 처리하던 일들을 자동화한 것이다. 어떤 회사들은 이렇게 자동화한 것에 대해 마치 ‘알파고(구글의 AI 바둑 프로그램)’를 만들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홍보한다.

두 번째로 AI 서비스로 가장 많이 오해하는 경우는 인간의 판단을 프로그램화한 서비스들이다. 의사의 진료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 어떤 프로그램을 작성했다고 가정해보자. 의사가 자신의 진료 방식을 반영해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X 이상이고 몸무게가 Y 이상이면 성인병 환자라고 진단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하면, 이는 AI일까? 앞선 예와 같이 넓은 의미로는 AI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전문가의 판단을 자동화한 자동 프로그램에 더 가까운 개념이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을 해야 하는데, 이런 프로그램은 사람이 직접 조정해주고 조정하는 사람의 편향성이 그대로 투여되기 때문에 AI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이렇게 설계된 프로그램을 AI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자동으로 투자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투자 AI’, 전문가가 생각한 다양한 마케팅 방법들을 적용한 광고 추천 프로그램을 ‘마케팅 AI’라고 하는 식이다. 시장에서 통하는 패션 법칙들을 사용자에게 추천해 맞춤형으로 코디를 해주는 프로그램 또한 ‘패션 AI’라고 홍보하기도 한다.

진정한 의미의 AI는 ‘무엇을(what)’과 ‘목표(goal)’만 입력하면, ‘어떻게(how)’를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목표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구글의 AI 개발 부문인 딥마인드 팀이 알파고에 기보(기존에 뒀던 바둑의 순서를 기록한 것)와 승리 조건은 알려주었지만, 일일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바둑을 두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은 것과 같다.

물론 ‘AI’가 지금은 일종의 마케팅 용어처럼 쓰이기 때문에 이런 기술적 부분을 엄밀히 따질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투자를 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이러한 AI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나 투자자 입장에서 어떤 서비스나 기업이 AI를 제대로 이용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그 서비스나 기업이 어떠한 데이터를 이용하고 있는지, 학습을 하기에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면 된다.

AI를 이용해 헤드헌팅을 하는 서비스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기업과 인재를 연결해주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케이스가 필요하다. 일단 인재에 대한 다양한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기업의 요구 조건도 수많은 요소를 감안해 카테고리를 분류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데이터 축적 없이 AI 채용 추천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기존의 채용 공식을 자동화한 서비스이거나 통계적으로 비슷한 요소(feature)를 임의로 정해 묶어주는 프로그램으로 서비스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러한 서비스나 프로그램의 질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AI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오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미 캘리포니아 LA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아메리카 행사. 미국 통신기업 스프린트의 전시장에서 인공지능(AI) 로봇 페퍼(Pepper)가 참가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스프린트는 지난해 초 일본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페퍼를 도입해 업무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블룸버그
지난해 9월 미 캘리포니아 LA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아메리카 행사. 미국 통신기업 스프린트의 전시장에서 인공지능(AI) 로봇 페퍼(Pepper)가 참가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스프린트는 지난해 초 일본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페퍼를 도입해 업무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블룸버그

투자자, AI 현혹에 속지 말아야

이런 오해가 가장 심한 곳은 단연 금융투자업계다. 퀀트(수학‧통계를 이용한 컴퓨터 투자 프로그램)나 프로그램 매매(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자동으로 이뤄지는 주식거래), 로보어드바이저(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투자 추천 시스템) 등이 인기를 끌면서 수많은 금융 투자 회사들이 ‘AI’라는 단어로 투자자를 현혹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들을 실제로 뜯어보면 과거의 성공적인 투자 패턴을 입력해 자동화한 프로그램 매매의 연장선이거나 고수 트레이더를 데려다 놓고 그들의 투자패턴을 프로그램화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한 투자 AI라면 끊임없이 최근 데이터를 학습하며 자신의 변수나 로직 자체를 수정해나가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술력과 데이터를 가진 금융사는 아직 많지 않다.

AI란 단어가 남용돼서 그 기술적 의미나 가치가 낮게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진정한 의미의 AI를 잘 활용하는 곳은 일부 기업에 그치고 있다. 정부 기관, 투자자, 소비자 모두 AI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인지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