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훈한국 외국어대 졸업,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장지훈
한국 외국어대 졸업,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애플의 2019회계연도 1분기(2018년 10~12월)의 예상 실적이 하향 조정(890억~930억달러→840억달러)되자, 또다시 많은 이들이 애플 위기론을 들고나왔다. 물론 대부분 내용은 그동안의 비판과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애플의 혁신은 사라졌고,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내용. 몇 년 전부터 계속해서 들어왔던 이야기다.

하지만 올해는 특히나 그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쟁사의 제품들이 카메라 수를 더 많이 늘리거나 화면 상단의 노치(액정 상단의 움푹 팬 부분)를 없애고, 더 나아가 폴더블 디스플레이(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 화면)를 준비하는 동안 애플은 늦게나마 트리플 카메라(스마트폰 뒷면에 3개의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탑재할 것이라는 소식 정도만이 들린다. 물론 그동안 애플은 확실한 기술을 더 완벽히 적용하는 애플 특유의 기조를 유지해왔지만, 애플과는 반대로 퍼스트 무버 전략(시장 내에서 가장 먼저 기술을 도입해 시장을 선도하는 전략)을 택한 중국 기업들 때문에 애플의 기술 도입이 상대적으로 늦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의 기술력이 뒤떨어졌다고 단정하는 기사마저 등장하고 있다. 빠름과 완벽함, IT 기업이 오랜 시간 고민해 온 두 개의 방향성 중 반드시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폭발적인 속도로 시장을 잠식해가는 중국 기업들의 모습을 근거로, 시장에는 그동안 애플이 추구해 온 퍼펙트 팔로 전략(타사보다 조금 늦지만, 유력한 기술을 더 완벽한 상태로 출시하는 전략)에 대한 의문이 팽배해 있다.

애플 위기론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바로 가격이다. 최고가 모델 기준 100만원대 중반까지 치솟은 아이폰의 가격은 소비자의 인식 속에 있는 ‘프리미엄 휴대전화’ 가격대의 한계치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최신 기술이 없는 최고가 스마트폰’, 애플의 현 상황을 정리하며 자주 등장하는 묘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애플을 성토하는 언론 칼럼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특히 ‘애플은 오만하다’ ‘(망해버린) 노키아, 모토롤라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무장한 기사는 사실관계를 절묘하게 끼워 맞춰 애플을 이윤만을 추구하는 괘씸한 기업으로 만들고 있다.

물론 개별 기업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주관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논조의 칼럼이 IT 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왜곡을 가져온다는 점인데, 그 시각이 시장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먼저 기술과 관련된 부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어느 산업보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추구가 강한 IT 시장일지라도 ‘최신 기술’과 ‘혁신’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혁신은 더욱 포괄적이고 궁극적인 개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사진을 만드는 법이 예쁜 여자들의 가장 예쁜 부분을 짜깁기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스마트폰 시장에도 가장 멋진 스마트폰을 만드는 방식이 있다. 애플의 혁신이 멈췄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타사보다 애플의 카메라 수가 적다거나 혹은 당장 폴더블 디스플레이 스마트폰을 내놓지 못한다는 이유가 그 근거가 돼서는 곤란하다.

두 번째는 가격과 관련된 부분이다. 냉정하게 들릴지라도, 기업의 목표는 이윤 추구다. 애플이 하청 업체에 부당한 행위를 강요했거나 소비자의 건강이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부품을 사용했다면 비난받아 마땅할 일이지만, 제품에 책정한 가격만을 근거로 괘씸한 기업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타사의 제품과 비교해 애플 제품의 가격이 높다는 주장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애플의 매출이 하락했다는 이야기는 사실과도 다를뿐더러 인과관계가 성립되는지는 시기상 아직은 좀 더 따져봐야 한다.

애플의 매출 하락과 관련해서는 애플 스스로 밝힌 내용처럼 매출 비중이 큰 중국 시장의 경기 하락, 달러화 강세에 따른 환차손, 일부 제품의 생산 지연 등, 복잡한 이슈가 얽혀 있는데 이를 단순히 높은 가격 정책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마치 엄청난 위기에 봉착한 것처럼 묘사되는 애플은 성장이 멈춘 스마트폰 시장에서 판매량 2위를 고수하고 있고,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은 평균 판매가를 기록 중이다.

대부분의 애플 위기론은 포괄적인 문제를 단순화해 원인을 찾아내려 하고, 개연성 없이 이미 결론 난 부분들을 끼워 맞춘 격이다. 따라서 그런 위기론에서는 애플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애플 위기론이 제시하는 해답은 한결같다. 혁신을 창출하고, 값싼 아이폰을 발매하라는 것. 하지만 가격 경쟁력으로 무장한 중국 업체들의 약진 속에 2018년 애플이 택할 수 있었던 가장 효과적인 전략 방향을 생각해본다면, 애플의 프리미엄 가격 정책을 무조건 실책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애플 위기론을 부르짖는 이들이 현 상황을 타개할 대단한 해결책처럼 제시하는 저가형 아이폰 출시는 2018년보다는 올해가 적기다. 높은 가격대의 아이폰을 통한 프리미엄 전략이 선행된 지금 그 폭발력이 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매출 하락의 근거를 비싼 가격에 두고 괘씸한 기업의 이미지를 조장하는 것 역시 이런 부류의 위기론이 가진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다. 시장에는 아이폰보다 더 비싼 제품도 자신 있게 출시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그리고 가격에 대한 판단은 언론이 아닌 온전히 소비자의 몫이어야 한다.

정리해보면, 애플의 실적이 하락하는 것이 정말 언론의 주장처럼 ‘괘씸한 가격’ 때문인지, 아니면 애플이 주장하는 것처럼 중국 내 보조금 하락과 경기 둔화, 달러화 강세 등이 이유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위기론의 근거가 된 2018년 4분기 실적은 아직 발표되지도 않았다. 현재 일반인이 느끼는 애플의 위기는 실제 모습보다 훨씬 더 과장돼 있고, 답 없는 위기론이 오히려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열린 애플세계개발자콘퍼런스 (WWDC)에서 연설하고 있다. 팀 쿡은 1월 2일(현지시각) 투자자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중국 경기 둔화로 2019년 1분기 회계연도(2018년 10~12월) 매출이 840억달러(약 94조2900억원)를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1월 말 제시한 자체 전망치 890억~930억달러보다 5~10% 낮은 수준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열린 애플세계개발자콘퍼런스 (WWDC)에서 연설하고 있다. 팀 쿡은 1월 2일(현지시각) 투자자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중국 경기 둔화로 2019년 1분기 회계연도(2018년 10~12월) 매출이 840억달러(약 94조2900억원)를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1월 말 제시한 자체 전망치 890억~930억달러보다 5~10% 낮은 수준이다.

진짜 위기 조장하는 위기론 경계해야

오늘의 이야기는 이미 잘나가고 있는 어느 외국 기업을 변론하고자 함이 아니다. 애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특히나 올해 우후죽순처럼 등장할 것이 뻔한 한국 경제의 위기론으로 야기될 수 있는 진짜 위기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올해 한국 경제의 관전 포인트는 명확하다. 수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가격은 하락하고 중국 경기는 침체될 것이다. 이제 핵심은 반도체 가격이 언제쯤 다시 상승 국면에 진입할 것인지, 혹은 그전까지 얼마나 잘 버틸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근거로 때를 노려 다시 끼워 맞추는 식의 위기론을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그 내용을 꼼꼼히 따져 볼 일이다.

월가의 위기론이 확대 재생산되며 애플 주가가 속절없이 하락하는 최근 몇 주간을 보며, 주기를 가지고 반복되던 지난 시간의 애플 위기론을 떠올려본다. 위기론은 실적 등이 악화된 실제 위기가 온 후에야 여러 사실을 조합해 등장했고, 이런 위기론은 대체로 제대로 된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애플 위기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말했던 그 뻔한 해결책, 과연 그때의 애플이 몰랐을까? 위기론은 단지 또 다른 위기만을 만들었다.

올해는 스마트폰, 반도체 어느 분야를 가리지 않고 IT 업계에 힘든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 위기론의 본질에 대해서는 깊이 논의해 볼 만하지만, 자극적인 제목으로 많은 이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위기론이 득세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