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한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 공학과, SK브로드밴드 미디어 전략 담당,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플랫폼 전쟁’ 저자
김조한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 공학과, SK브로드밴드 미디어 전략 담당,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플랫폼 전쟁’ 저자

최근 중국에서 한 편의 영화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영화는 3월 14일 개봉한 후 9억2000만위안(약 1554억원)의 흥행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국내서 가장 큰 흥행을 한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의 경우 1626만 명을 동원해 약 1396억원의 수익을 거뒀다. 중국에서 흥행 중인 이 영화는 이미 현지 역대 흥행 순위 67위까지 올랐다. 2800만위안(약 47억원)의 수익만 추가한다면 미국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을 깨고 66위로 올라설 수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은 ‘모어 댄 블루(More Than Blue)’다. 놀랍게도 이 작품의 원작은 2009년에 개봉했던 권상우, 이보영, 이범수 주연의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감독 원태연)’다. 중국에서 한국 영화를 리메이크했던 예는 많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 중국에서 흥행한 한국 영화 ‘베테랑(감독 류승완)’의 리메이크작 ‘대인물(大人物)’도 그중 하나다. ‘대인물’의 경우 3억7000만위안(약 637억원)의 수익을 기록했다. 이 영화는 기존까지 중국의 한국 영화 리메이크 작품 중 가장 크게 흥행한 작품이다. ‘모어 댄 블루’는 이미 ‘대인물’의 2배가 넘는 흥행을 기록하고 있으며 여전히 중국 박스오피스 3위에 올라 있다. 특히 1위인 ‘덤보(감독 팀 버튼)’와도 큰 차이가 없다. 장기 흥행할 분위기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영화가 중국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싱가포르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MM2가 제작한 대만 감독, 배우의 대만 영화다. 이 영화는 앞서 대만에서 개봉하자마자 히트했다. 지난해 흥행 수익은 2억4000만대만달러(약 88억원)로 현지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이 영화는 홍콩에서도 반응이 좋았으며 한국에서도 지난해에 개봉했다.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오픈시네마’ 섹션에서 공개됐으며 지난해 12월 12일에 개봉해서 10일 만에 상영을 종료했다. 누적 관객 수는 2만7000명으로 큰 흥행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한국 언론은 부산국제영화제 리뷰를 통해 ‘뻔한 스토리로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을 했었다. 원작은 2009년 한국 개봉 당시 손익 분기점 63만 명을 조금 넘은 7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었다. 호불호가 갈렸던 이른바 ‘최루성 영화’가 10년 만에 중화권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영화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영화의 원작 판권 비용은 5000만원 이하였다. 흥행 수익은 세계적으로 17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저비용 투자 성공의 케이스로 기록될 것이다.

한한령(중국 내 한류 금지령)이 풀린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중국으로 가는 길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소위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힌다면 단순히 판권 판매에만 노력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해외 제작사가 대만을 기반으로 영화를 제작해 중국에서 개봉한 이런 사례를 의미 있게 봐야 할 것이다. 이는 한국 제작사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리메이크 사례는 예능에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에서 큰 흥행을 한 MBC의 음악예능 ‘복면가왕’이다. 미국판 복면가왕인 ‘마스크를 쓴 가수(The Masked Singer)’의 경우, 첫 방송에서 미국 FOX 방송국 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를 기록한 리얼리티가 됐다. 평균 시청자가 10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큰 흥행을 했다.

특히 마지막 방송에서 기록한 18~49세 시청률 4.5%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방송 중 하나인 드라마 ‘빅뱅이론’ 시즌 11의 4.4%를 넘는 수치였다. 미국의 흥행 성공으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방영 미정), 포르투갈(방영 미정)에서의 제작도 확정됐다. 미국의 성공이 유럽까지 전파된 것이다.

복면가왕은 한국이 직접 미국으로 포맷을 판매한 것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성공 사례를 보고 미국에서 픽업을 한 사례다.


대만 영화 ‘모어 댄 블루(위)’의 한 장면. ‘모어 댄 블루’의 원작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한 장면. 사진 MM2 엔터테인먼트 페이스북 캡처
대만 영화 ‘모어 댄 블루(위)’의 한 장면. ‘모어 댄 블루’의 원작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한 장면. 사진 MM2 엔터테인먼트 페이스북 캡처

태국서 성공해 미국·유럽 진출한 복면가왕

복면가왕 포맷은 한한령 이전인 2015년에 중국에 판매됐지만, 시즌1을 끝으로 시즌을 이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복면가왕은 태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태국의 경우 2016년 이후 시즌 4개와 별도의 프로젝트까지 총 5개가 진행됐으며 올해도 시즌5가 방영되고 있다.

특히 유튜브의 ‘2017년 가장 화제의 영상’은 태국판 복면가왕으로 총 30억 뷰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중 2017년 비(非)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바이럴 영상으로 유튜브는 태국판 복면가왕 중 ‘노래하는 굴(Singing Oyster)’ 장면을 꼽기도 했다. 이 영상은 TV클립으로 조회 수만 2억8000만 뷰를 기록했다. 복면가왕은 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서도 제작됐다.

사실 이런 동남아에서의 성공이 FOX가 복면가왕을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심지어 제작하는 데도 많은 참고를 했다고 한다.

한국 예능이 재미있다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걸 제작했을 때 반드시 성공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하기 어렵다. 이건 일본 예능도 마찬가지인데 재미를 유도하는 자막과 한국·일본 특유의 상황을 이끌어 가는 애드립이 큰 영향을 끼쳐 포맷만으로 판단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동남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남아 시장을 타깃으로 제작된 예능이 글로벌로 진출한 사례는 또 있다. 바로 베트남 VTV3에서 지난해 초에 방영된 ‘첫 노래(Love At First Song)’라는 음악예능이다. CJ 블루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다. 이 회사는 CJ가 베트남 로컬 광고회사인 블루그룹을 인수하면서 만든 회사다. 14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이 프로그램은 베트남에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시아 시장에서의 큰 성공은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한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가수인 미국의 존 레전드는 3월 28일 미국판 ‘Love At First Song’을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의 제작자 사이먼 리스고와 함께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포맷 저작권을 가진 회사는 CJ ENM이다.

좋은 포맷을 만들어 놓고 해외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한국 제작사들이 대만, 태국, 베트남을 적극 공략해보는 것은 어떨까.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을 타깃으로 한다면, 바로 가는 것보다 돌아서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제2의 복면가왕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지 모른다. 위와 같은 성공 사례를 잘 연구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