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이 칼럼의 영어 제목은 ‘통화정책의 미스터리(Mysteries of Monetary Policy)’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 경제 선진국들은 저성장·저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제로금리에 양적완화,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동원했다. 그럼에도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에 미치지 못한 기간이 오래 지속됐다. 필자는 금리 조정을 통한 전통적 통화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장기간 저물가가 지속된 이유가 통화정책 때문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다고 했다. 최근 금융시장에서는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그만큼 경기가 좋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주가가 상승하기도 한다. 금리 인상이 오히려 경기 호조 신호로 작동하기도 하는 것이다. 양적완화 정책 이후의 상황은 전통적인 통화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필자는 이 같은 상황을 미스터리라고 표현했다.
로버트 배로(Robert J. Barro)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 세계은행 자문역
로버트 배로(Robert J. Barro)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 세계은행 자문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1980년대 중반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나타났던 물가 안정이었다. 1970년대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6.6%였다. 1979년과 1980년에는 10%를 넘었다. 1970년대 초중반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온건한 통화긴축과 함께 잘못된 가격 통제로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노력했다가 실패했다. 그 후 취임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처음에는 비슷한 정책을 유지했으나 1979년 8월 폴 볼커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임명했고 FRB는 곧 인플레이션을 잡을 때까지 단기금리를 올렸다.

볼커는 1981년 1월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도 신임을 받았다. 그는 정치권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을 고수했다. 볼커는 그해 7월 ① 연방기금금리(정책금리)를 최고 22%까지 올렸다. 이 정책은 제대로 작동했다. 연간 물가상승률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연평균 3.4% 수준으로 급속히 하락했다. FRB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연방기금금리를 물가상승률보다 높게 유지했다.

그 이후 FRB는 단기금리, 특히 연방기금금리를 주요 통화정책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방기금금리를 제로(0) 수준까지 떨어뜨리면서 단기금리를 정책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워졌다. FRB는 양적완화(QE)와 ② 선제적 안내(Forward Guidance)를 주요 정책 수단으로 추가했다.

수십 년간 미국 물가상승률로 판단하건대, FRB의 통화정책은 훌륭하게 작동했다. 2010년 이후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1.5%로 FRB의 물가안정목표(2%)를 밑돌았을 정도로 매우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이렇게 낮은 물가상승률이 어떻게 달성됐느냐다. 물가상승률이 1.5~2% 수준을 넘으면 연방기금금리를 급격히 올릴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하기 때문일까?

연방기금금리의 변동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가 있다. 에미 나카무라와 존 스타인손은 2018년 경제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통화긴축 정책의 충격(예상치 못한 연방기금금리 인상)은 3년 또는 5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을 촉발하고 2년 후 국채 금리가 정점(peak)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같은 통화긴축 충격은 인플레이션 전망을 낮추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 다만 그 영향은 완만하고 3~5년 후에야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다.

예상치 못한 연방기금금리 인상은 전통적으로 통화긴축적이라는 딱지가 붙지만, 나카무라와 스타인손은 예상치 못한 금리 인상으로 성장률 전망이 실제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③ 금리 인상 때 오히려 성장률이 높아진다고 예상하고, 금리 인하 때 성장률이 낮아진다고 전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패턴이 나타나는 이유는 FRB가 전통적으로 예상보다 경기가 과열될 것이라는 정보가 있을 때 금리를 인상했고, 경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빠진다고 우려할 때 금리를 인하했기 때문이다.


폴 볼커 전 FRB 의장. 사진 블룸버그
폴 볼커 전 FRB 의장. 사진 블룸버그

나카무라와 스타인손의 논문에는 많은 금융전문가가 언급했던 것과 같이, 예상치 못한 연방기금금리 인상이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내용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상치 못한 금리 인하 폭이 0.5%포인트일 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약 5%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주식의 대체 투자처인 채권의 기대 수익률이 낮아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금리 인하 효과는 기업의 미래 수익 감소로 인한 주가 하락 효과를 상쇄한다.

여기서 문제는 효과가 약한 데다 뒤늦게 나타나는 금리정책에 의존하면서 FRB가 어떻게 연평균 1.5~2%의 낮은 물가상승률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냐는 것이다.

볼커 시대 이후로 금리 조정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지만 급격한 금리 조정이 물가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은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짐작하건대 이런 것이다. 만약 물가상승률이 1.5~2% 를 넘어 상당한 수준으로 오르면 FRB는 1980년대 볼커가 했던 방식으로 단기금리를 극적으로 올리기 시작하고 이런 변화는 물가 하락 쪽으로 즉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사하게 물가상승률이 목표물가 아래로 떨어진다면 아마 FRB는 정책금리를 인하하고 제로금리 상황에서는 양적완화 등 추가 정책을 사용할 것이다. 이는 물가 상승 쪽으로 즉각 영향을 미칠 것이다.

FRB의 극단적인 대응, 즉 볼커 시대의 정책이 실제 되풀이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솔직히 이 같은 설명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최근 실제 인플레이션과 기대 인플레이션(향후 물가가 어느 정도 오를 것이라는 기대치)이 모두 안정돼 있다는 것에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 둘은 쌍둥이처럼 연결돼 있다. 그러나 오늘날 실제 인플레이션과 기대 인플레이션이 낮고 안정된 이유가 통화정책이 잘 작동돼 왔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Tip

미국에서 은행 간 자금 거래에 적용되는 대표적인 단기금리로 우리나라의 콜금리에 해당한다. 부족한 지불준비금이나 필요자금을 연방기금에서 조달할 때 일반 상업은행들이 부담하게 되는 금리다. 이 금리를 기준으로 일반은행의 대출금리 수준이 결정된다. 따라서 재할인율과 함께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쳐 FRB가 통화량을 조절하는 중요 정책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저성장, 저물가가 지속되자 FRB가 향후 금리정책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 것을 의미한다. 2013년 10월 FRB는 경기부양을 위해 양적완화를 지속적으로 시행하겠으며 실업률 6.5%, 인플레이션 2.5% 이하가 되지 않으면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2015년 2월에 열린 FRB의 통화정책 보고 기자회견에서도 미국의 경기 여건이 꾸준히 개선된다고 확신할 때까지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며, 고용이 개선되고 물가상승률이 2% 가까이 근접해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미리 시장에 선제적 안내를 통해 금리 인상 가능성을 고지하겠다고 밝혔다.

전통적인 통화정책 이론에서는 금리를 인상하면 차입 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투자와 소비가 감소하면서 성장률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금리를 인하하면 그 반대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발전하고 각종 정보와 분석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금리를 인상하면 중앙은행이 경기 과열을 전망해 금리를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경기 호조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전통적인 통화정책 이론이 먹히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