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최근 홍콩의 반(反)정부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점령해 항공편이 전면 취소되는 등 홍콩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범죄인의 중국 인도를 허용하는 법 개정에 대한 반대에서 시작된 홍콩 시위가 최근 두 달 정도 이어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홍콩 시민은 ‘범죄인 인도법’이 개정되면 홍콩 내 반중(反中)·민주 인사들이 중국으로 대거 송환돼 정치·언론의 자유가 질식당할 것이라며 시위를 벌였다. 홍콩 시민은 법안의 완전 철폐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행정수반)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칼럼 필자들은 중국 측 입장에서 바라본다. 홍콩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국제적인 도시’라는 이미지를 중국 전체 발전에 이용해야 하는데 시위 때문에 홍콩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들이 무시하는 부분도 있다. 홍콩 시위는 영국 식민지 시절 누렸던 법치와 자유의 틀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결과였다는 점이다. 중국은 1997년 홍콩 반환 때 50년 시한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를 약속했다. 홍콩 대다수 사람은 범죄인 인도법이 일국양제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라고 여긴다.
앤드루 셩(Andrew Sheng) 홍콩대 아시아글로벌연구소 최고연구위원 / 샤오 겅(Xiao Geng) 베이징대 HSBC 경영대학원 교수
앤드루 셩(Andrew Sheng) 홍콩대 아시아글로벌연구소 최고연구위원(왼쪽)
샤오 겅(Xiao Geng) 베이징대 HSBC 경영대학원 교수

홍콩은 오랫동안 동서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아시아의 세계 도시’라고 불렸다. 그러나 현재 홍콩의 지위는 흔들리고 있다. 이는 홍콩이 자초한 일이다.

지난 두 달 동안 홍콩에서 ①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이 법은 범죄인을 중국, 대만, 마카오로 이송하는 과정을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위 이후 해당 법안의 시행은 무기한 유예됐다.

일각에선 홍콩 정부가 개정을 추진했던 범죄인 인도법이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의 ②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 약속에 의해 보장된 홍콩 시민의 자유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틀렸다.

범죄인 인도 협약은 흔한 일이다. 홍콩은 20개국과 범죄인 인도 협약을 맺고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홍콩이 중국과 서양의 통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통합한 ‘평화롭고 부유한 세계적 도시’라는 기존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중국 정부에 이익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홍콩에 많은 것을 양보했다. 홍콩 시민은 중국 시민보다 세금을 적게 낸다. 이는 홍콩 시민이 외교·국방·안보 분야 등 국가 공공재를 구성하는 데 덜 기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범죄인 인도법이 있든 없든 간에 홍콩 시민은 자유와 자치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홍콩이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해지면서 자유와 자치라는 가치가 위험에 처했다. 여기에 몇몇 사회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최근 수십 년 동안 중국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금융·물류·무역 중심지였던 홍콩의 역할을 일부분 대체하는 중이다.

홍콩은 1997년 중국 대외 무역의 절반을 담당했다. 홍콩 국내총생산(GDP)은 중국의 5분의 1에 육박했었다. 중국 본토에서 GDP와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았던 상하이를 크게 앞섰었다. 그러나 현재 홍콩의 무역량은 중국의 8분의 1에 불과하다. GDP는 상하이뿐만 아니라 베이징, 선전보다 낮다.

특히 홍콩 부동산 가격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폭등해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홍콩 젊은이의 영어·중국어 실력이 떨어지면서 국제 경쟁력마저 잃고 있다.

홍콩에 저렴한 공공주택을 공급하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조치를 막고 있는 것은 중국 정부가 아니라 홍콩이다. 홍콩, 마카오를 포함한 9개 도시를 아우르는 ③ 주장삼각주(珠江三角洲) 지역은 성장 잠재력이 큰 곳이다. 하지만 홍콩 일부에선 이 지역을 통합할 경우 홍콩 시민의 정치 자율성, 경제력, 지역 정체성이 약화될 것이라며 통합에 반대하고 있다.

왜 홍콩에서 발생한 불만이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켰을까. 심지어 6월 16일 일어난 시위에는 200만 명이 참여했다. 이는 홍콩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 부분적으로는 인터넷 때문일 수도 있다. 소셜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④ ‘디지털 에코 체임버(Digital Echo Chamber)’의 영향일 수도 있다. 디지털 에코 체임버는 홍콩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2009년부터 2012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시위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때 반정부 시위인 ‘아랍의 봄’이 튀니지에서 시작돼 아랍 중동 국가와 북아프리카로 확산됐고, 미국에서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 등이 벌어졌다.

스페인 출신의 사회철학자 마누엘 카스텔은 저서 ‘분노와 희망의 네트워크’에서 정치·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진 사회 운동은 권력자들에 대한 냉소 때문이 아니라 빈곤과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분노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타고 집단행동으로 이어진다. 카스텔은 권력자에게 굴욕감을 느낀 이들이 정당(政黨)을 무시하고 언론을 불신하고 정치 지도자를 인정하지 않는 등 모든 사회 조직을 거부한다고 말한다. 대신 이들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자신들만의 조직을 만들어 권력자와 대항할 힘을 키우려고 한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과정을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는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대신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을 접할 기회를 차단했다. 결국 사람들의 의견을 극과 극으로 나누고, 두려움을 분노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감정적으로 고조된 상태의 사람들이 수평적인 네트워크에서 만날 경우 폭력 사태도 빚어질 수 있다. 홍콩 시위처럼 말이다. 홍콩 시위대는 7월 초, 입법회(의회) 건물을 점거했고 중국 중앙정부를 상징하는 베이징 연락사무소에 검은 페인트를 투척하기도 했다.

이런 시위 형태가 홍콩 곳곳으로 확대되면서 경찰이 감당할 수준을 벗어났다. 이는 시위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복면을 한 수십 명의 사람이 지하철역에서 시위를 마치고 돌아오는 여행객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홍콩 시민이 흥분하고 시위가 격해질수록 과거 홍콩의 지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홍콩은 그동안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도시였고 중국과 다른 나라를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중국과 홍콩 정부 양측이 ‘일국양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나라’에서 홍콩 정부가 요구하는 ‘두 가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자율성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홍콩 사람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중국 정부는 현재 지속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참여하려 하고 있고 개방된 사회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홍콩은 중국의 가장 ‘국제적인 도시’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만약 이 역할을 포기한다면 중국 정부는 홍콩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Tip

홍콩 정부가 중국, 대만, 마카오 등에 범죄인을 넘길 수 있도록 개정을 추진한 법. 범죄인 인도법 논란은 홍콩인 찬퉁카이의 살인사건에서시작됐다. 찬퉁카이는 대만에서 홍콩인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피했다. 홍콩 정부는 찬퉁카이를 대만으로 인도해 처벌하길 원했으나 범죄인 인도 협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아 물거품이 됐다. 이를 계기로 홍콩 정부는 대만은 물론 중국·마카오와 범죄인 인도 협약을 맺으려 법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홍콩 시민은 “법 개정이 이뤄지면 중국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공산당이 좌우하는 중국의 법정에 합법적으로 넘겨지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며 시위를 시작했다.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 1997년 당시, 중국이 2047년까지 50년간 홍콩 체제를 인정하기로 약속한 것. 홍콩이 중국의 정치 체제인 사회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홍콩은 영국이 1842년 청나라와 벌인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뒤 빼앗은 지역이다. 이와 별도로 영국은 1898년 홍콩 인근의 신계지구를 99년간 조차(租借)했는데, 1980년대 들어 신계지구의 중국 반환 시기(1997년)가 다가오면서 홍콩 반환 문제도 함께 불거졌다. 중국은 홍콩도 돌려받기를 원했지만, 홍콩은 영국이 영구적으로 가져간 것이었기 때문에 반환을 위해서는 양국 간 협의가 필요했다. 결국 영국은 홍콩 경제권과 밀접하게 연결된 신계지구가 중국에 반환된 뒤에 홍콩만 단독으로 경영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 신계지구 반환 때 홍콩까지 함께 반환키로 1984년에 중국과 협정을 맺었다. 영국은 협정을 맺으면서 몇 가지 조건을 달았는데, 이 중 하나가 중국이 홍콩의 일국양제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첫 개항지이자 개혁·개방 이후 제조업 본거지가 된 주장삼각주는 광저우를 기준으로 동쪽에 홍콩, 선전, 둥관, 서쪽에 마카오, 주하이, 포산, 중산이 있다. 삼각주 하구 양쪽에 있는 홍콩과 마카오는 육로로 이동하려면 중국 본토를 거쳐야 했다. 홍콩·마카오·주하이를 연결하는 강주아오 대교가 2018년 10월 개통되면서, 이동 시간이 3시간 30분에서 30분으로 단축됐다.

에코 체임버(Echo-chamber)의 사전적 의미는 에코 효과를 만들어내는 ‘반향실’.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정보만 믿고 그 믿음을 더욱 강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앤드루 셩, 샤오 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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