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한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 공학과, SK브로드밴드 미디어 전략 담당,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플랫폼 전쟁’ 저자
김조한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 공학과, SK브로드밴드 미디어 전략 담당,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플랫폼 전쟁’ 저자

플랫폼 전쟁이 한창이다. 디즈니가 올해 하반기 중 선보일 예정인 ‘디즈니 플러스’, 애플의 ‘애플TV 플러스’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서 넷플릭스와 승부를 겨룰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최대 동영상서비스 플랫폼 ‘웨이브(WAVVE)’도 지난달 열린 ‘2019 국제방송영상마켓(BCWW·BroadCast WorldWide)’에서 오리지널 콘텐츠에 적극 투자해 넷플릭스와 경쟁하겠다고 밝혔다. BCWW는 아시아 최대 방송·영상콘텐츠 행사다.

올해 말에는 HBO를 자회사로 갖고 있는 워너 미디어가 ‘HBO맥스’라는 동영상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HBO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으로 인기를 끌었다.

많은 콘텐츠 기업들이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자체 서비스(Direct To Consumer·다른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플랫폼을 만들어 콘텐츠를 공급하는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현재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곳은 디즈니다. 지난달 열린 디즈니의 자체 미디어 행사인 ‘D23(디즈니 엑스포)’ 참석자들은 온통 ‘디즈니 플러스’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디즈니는 이 행사에서 극장 개봉이 가능한 콘텐츠도 ‘디즈니 플러스’에서 독점 공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넷플릭스가 주도해온 OTT 시장에 디즈니 등 콘텐츠 기업들이 진입하면서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셈이다.


아마존, 자체 드라마 ‘더 보이즈’로 대박

그런데 넷플릭스가 만약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면 과연 OTT 시장의 선두 기업은 어디가 됐을까. 필자가 조심스럽게 예상해보면 아마존이 선두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요새 행보를 보면 아마존이 넷플릭스를 뛰어넘어 선두 기업이 될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성급한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왜 아마존이 넷플릭스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보는지 이야기하기 전에 간략하게 아마존의 동영상 서비스 사업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살펴보자. 아마존이 동영상 서비스 시장에 뛰어든 시점은 넷플릭스(2008년)보다 1년 빠른 2007년이었다.

‘언박스’라는 이름으로 제공된 이 서비스는 넷플릭스와 같은 구독서비스(일정 금액을 내고 무제한으로 콘텐츠를 시청하는 것)가 아니었다. 콘텐츠를 단품으로만 구매할 수 있었다. 당초 아마존은 매달 구독료를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주도하는 동영상 시장에 관심이 커지면서 아마존도 ‘언박스’ 서비스를 대신해 ‘아마존 인스턴트 비디오’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2가지 종류의 서비스를 내놨다. ‘아마존 인스턴트 비디오’는 콘텐츠별로 구매해 시청하는 단품형 서비스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넷플릭스와 같은 구독형 서비스다.

그리고 아마존의 전략은 성과를 거뒀다. 네트워킹 장비회사 ‘샌드바인’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6년까지만 해도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사용량 차이는 9배에 달했다. 하지만 이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아마존이 인기 콘텐츠를 독점계약을 통해 공급하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미스터 로봇(Mr. Robot·USA네트워크 방송)’ ‘디스 이즈 어스(This is us·NBC 유니버설 방송)’ 등 인기 있는 방송 콘텐츠를 독점계약으로 공급하면서 영향력을 키웠다. 지난해 톰 클랜시(미국 유명 스릴러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리지널 드라마 ‘잭 라이언’ 시리즈가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사용량을 늘리는 데 기여했다.

아마존은 그 후에도 계속 오리지널 콘텐츠로 흥행에 성공했다. 영국 소설가 테리 프래쳇과 닐 게이먼이 쓴 소설을 기반으로 한 미니시리즈 ‘좋은 징조들(Good Omens)’이 평단과 시청자의 호응을 얻어 큰 성공을 거둔 것이 대표 사례다.

아마존은 최근 히어로 장르(초인적인 영웅이 등장하는 콘텐츠)에도 도전했다. 넷플릭스가 ‘엄브렐러 아카데미(Umbrella Academy)’라는 오리지널 시리즈로 마블이 떠나간 디즈니의 빈자리를 채웠다면, 아마존은 기존 마블과 DC코믹스의 히어로와는 전혀 다른 스토리를 갖고 있는 ‘더 보이즈’라는 콘텐츠를 7월 26일 공개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콘텐츠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자발적으로 언급·추천하는지를 분석해 ‘바이럴 스코어’ 형식으로 발표하는 기업인 ‘패럿애널리틱스’ 자료에서도 ‘더 보이즈’의 인기는 드러난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더 보이즈’가 공개된 직후 바이럴 스코어는 ‘엄브렐러 아카데미’가 공개된 직후의 바이럴 스코어보다 32%포인트 높았다.

또 공개 한 달이 지난 시점에도 10%포인트 높았다. 이런 잇따른 흥행 성공으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사용량은 크게 증가했다. 초창기 9배 차이가 나던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사용량 차이는 현재 2.8배로 좁혀졌다.

지금까지 아마존의 동영상 서비스가 발전해온 과정을 요약하면, 넷플릭스보다 먼저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지속적으로 넷플릭스에 밀리다 최근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넷플릭스와 간격을 좁히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광고 기반 무료 OTT서비스인 투비(Tubi)도 넷플릭스와 경쟁하기 위해 뉴욕에서 광고를 시작했다. 사진 버라이어티
미국의 광고 기반 무료 OTT서비스인 투비(Tubi)도 넷플릭스와 경쟁하기 위해 뉴욕에서 광고를 시작했다. 사진 버라이어티

최강 자본력 동원해 콘텐츠로 승부

아마존이 과거에 넷플릭스에 밀렸던 이유는 구독경제라는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현재 넷플릭스의 구독경제는 아마존에도 보편적인 방식이 됐다. 이제부터 아마존과 넷플릭스의 경쟁은 콘텐츠 전달방법이 아니라 콘텐츠 그 자체에 있다는 의미다. 필자가 아마존을 넷플릭스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업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 최강 자본력으로 무장한 아마존이 콘텐츠 생산에 집중한다면 넷플릭스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최근 오리지널 콘텐츠를 강화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유명 콘텐츠인 ‘반지의 제왕’ 판권을 3000억원에 구매한 뒤 ‘반지의 제왕’ 속편을 2조원 가까운 금액을 들여서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고 있다. 첫 번째 시즌에 20편을 만들어 2021년 공개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콘텐츠 제작에 투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콘텐츠에 집중 투자하는 것은 전체 사업영역에서 시너지를 얻기 위해서라는 게 아마존의 입장이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는 신발을 많이 팔기 위해서”라며 “오리지널 콘텐츠를 보기 위해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했더라도 (비싼 돈을 내고 가입한 만큼, 함께 제공되는 구매 혜택을 누리기 위해) 결국엔 쇼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콘텐츠로 진검승부를 시작한 아마존의 진짜 목적이 어디에 있든 넷플릭스와 OTT 시장의 선두 기업 자리를 두고 벌이는 전쟁은 점점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은 과연 이 전장(戰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까. 아마존이 넷플릭스를 제치고 승리의 고지를 밟을 수 있을지 지켜보면 재미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