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시한이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번에도 영국과 유럽연합(EU)은 협상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0월 10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EU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에게 “북아일랜드(영국령)의 잔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브렉시트에 합의해 줄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존슨 총리는 완전한 탈퇴를 고집하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가 되더라도 10월 31일 무조건 EU를 떠난다는 입장이다.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을 지낸 금융감독 전문가 하워드 데이비스 RBS 이사회 의장은 이 시점에서 런던의 금융 허브 지위를 재점검하고 있다. 3년 전 브렉시트 논의가 본격화한 시점부터 유럽에서는 런던을 대신할 금융 허브를 찾는 움직임이 거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까다로운 파리(프랑스)의 노동법, 상대적으로 작은 프랑크푸르트(독일)의 규모 탓에 이전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하워드 데이비스(Howard Davies) RBS(Royal Bank of Scotland) 이사회 의장, 런던정경대학(LSE) 총장,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
하워드 데이비스(Howard Davies)
RBS(Royal Bank of Scotland) 이사회 의장, 런던정경대학(LSE) 총장,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

영국이 (간발의 차였으나) EU 탈퇴에 투표한 지 3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영국이 EU를 떠난 후 남게 될 27개 회원국과 어떤 경제적 관계를 맺게 될지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추측 가능한 수준에서 가능성이 큰 결과를 예측하면, 다음과 같다. 브렉시트 찬성론자들이 예상했던 것, 투표 직후 많은 논평가가 예상했던 것보다 영국은 훨씬 더 ‘외로운’ 상황에 처하리라는 점이다.

그런데 아직 런던에서는 기업이나 금융 회사들의 대규모 ① ‘엑소더스(exodus·대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베이커리’나 독일 ‘소시지 가게’가 여전히 런던에서 활기차게 장사하고 있다. 왜일까.

브렉시트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최근 두 가지 사실을 통해 현장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회계 법인 EY는 지난 3년간 브렉시트에 대한 기업들의 태도 변화를 꾸준히 모니터링해왔다.

브렉시트로 런던이 금융 중심지 지위를 잃게 되면 적게는 수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 인력이 유럽에 재배치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9월 중순 공개된 가장 최근 설문에 따르면, 222개 기업의 41%가 일부 운영 조직이나 직원을 런던 외 다른 유럽 도시로 이동시킬 계획이라고 답했다. 브렉시트 논쟁 이후 글로벌 은행의 63%가 본사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것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 같은 조사에 따르면, 런던 외 다른 유럽 도시로 옮겨갈 예정인 ② 일자리는 7000여 개 정도에 불과했다. 브렉시트 투표 당시 예상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흥미로운 점은 런던을 떠난 기업들의 목적지가 ③ 더블린과 룩셈부르크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두 곳 모두 ‘틈새’ 도시다. 규모 면에서 차이가 큰 탓에 국제 금융 시장에서 런던의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작다는 의미다. 만약 기업들이 런던을 떠나 프랑스 파리나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자리를 옮겼다면 장기적으로는 런던의 경쟁력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숫자를 보면 두 도시의 마케팅 캠페인은 별다른 소득이 없어 보인다.

다만 런던 입장에서 경계해야 할 부분도 몇 가지 확인됐다. 기업들이 영국 밖으로 대규모 자산을 옮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영국을 떠나겠다는 기업들의 자산 규모는 1조파운드(약 1463조원)에 이른다. 당분간은 자산과 이를 관리하는 직원이 런던에 남아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바뀔 것이다.

또 다른 자료는 런던의 국제적 위상이 약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 금융 컨설팅 기관인 지옌(Z/Yen)은 6개월마다 ‘글로벌 금융 센터 지수’를 발표한다. 지난 9월 중순 공개한 최근 자료에 따르면, 런던은 뉴욕에 이어 2위 자리를 사수하긴 했지만 격차가 점차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6개월 전 두 도시의 격차는 7포인트였는데 지금은 17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유럽의 경쟁 도시인 파리와 비교할 경우 런던의 지수가 6개월 동안 14포인트 하락한 반면 파리의 지수는 29포인트 상승했다. 두 도시 격차가 88포인트에서 45포인트로 축소됐다. 여기엔 최근 ④ 유럽은행감독청(EBA)이 파리로 본부를 이전한 것,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파리로 유럽 본사를 이전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금융 회사들이 모여 있는 런던의 금융 구역. 브렉시트로 런던의 금융 허브 지위가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으나 실제 진행 속도는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블룸버그
금융 회사들이 모여 있는 런던의 금융 구역. 브렉시트로 런던의 금융 허브 지위가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으나 실제 진행 속도는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블룸버그

대안 못 찾아 이전 꺼리는 금융 기업들

한편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기업 실무진들은 임원급에게 회사 이전을 설득하는 것이 예상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을 토로한다. 이탈리아인이나 프랑스인조차 밀라노나 파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망설인다고 한다.

자녀들이 벌써 학교에 정착한 데다 배우자 역시 런던에서 직업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상황이 혼란스러운 것은 세계 시장의 복잡한 생태계를 반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트레이더 인력이 런던을 떠나기는 상대적으로 쉬울지 몰라도 새로운 도시가 런던의 IT 인프라나 지원 조직처럼 정교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숙련된 컨설턴트나 변호사도 런던처럼 손쉽게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은 폭넓은 움직임을 주저하고 있다.

대신 이들은 영국이 EU를 떠나면 직면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극복할 해결책을 찾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골치 아프다. 정치권은 브렉시트를 놓고 무질서하게 대립하고 있다. 영국이 또 국민투표를 해 그동안의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작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상황은 영국이 전면적인 구조적 개혁 없이 비틀대며 브렉시트 문턱을 넘는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유럽 금융 시장의 진화를 가까이서 지켜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유럽은 각각의 비교 우위를 활용한 다극적 금융 모델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더블린과 룩셈부르크는 자산 운용 분야에 특화한 도시가 될 것이고, 유럽중앙은행(ECB)은 프랑크푸르트 입장을 대변할 것이다. 유로화 표시 거래는 유로존에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단일 경제권이 확실히 효율적이고 저렴하기 때문에 이 경제권을 이용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브렉시트 이후, 단일 경제권을 이용할 수 있는 방책은 런던에 제공되지 않을 것이며, 이에 대한 다른 27개 회원국 간 합의도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Tip

골드만삭스는 브렉시트를 앞두고 런던 본사 건물을 매각했다. JP모건체이스도 애초 수천 개 일자리가 영국을 떠날 수도 있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다.

EY 조사에서 지난 3년간 런던에서 다른 유럽 도시로 옮겨간 일자리는 1000개였다. 기업들이 밝힌 계획의 15% 수준이다.

독일 상업은행 ‘헤센 튀링겐주 은행’은 2021년까지 브렉시트 영향으로 독일에 새로 창출될 금융 기관 일자리를 3500개로 예상했다. 애초 예상치(8000명)를 밑도는 수준이다.

EBA는 EU 산하 금융 기구다. 직원 100명 정도로 규모는 작지만 유럽 은행에 대한 각종 규제를 담당하는 핵심 기관이다. EBA는 2017년 본부를 벨기에 브뤼셀에서 프랑스 파리로 옮기기로 했고, 지난해 최종 이전했다.

하워드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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