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일러스트 : 양승용

미국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월트디즈니의 최고경영자(CEO) 밥 아이거는 작년에 6560만달러(약 750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급여와 성과급, 스톡옵션, ‘21세기 폭스’ 인수와 관련한 주식 보상 등을 모두 합친 금액이다. 아이거 회장의 작년 보수 총액은 디즈니 직원들이 받은 연봉 중간값의 1424배에 이른다. 이에 대해 디즈니 상속녀이자 영화감독인 애비게일 디즈니는 “어떤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직원과 CEO의 보수 격차가 1000배가 넘는다는 사실은 미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이거 외에도 미국에선 CEO가 중간 수준 직원 연봉의 1000배, 2000배를 받아 가는 경우가 있다. 평균적으로는 CEO와 직원의 연봉 격차가 훨씬 줄어들지만 그래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상위 350개 상장기업 CEO의 작년 연봉은 평균 1720만달러(약 200억원)로 중간 수준 직원 연봉의 278배에 이르렀다. 1965년엔 그 격차가 20배 수준이었다. 1978년부터 2018년까지 40년간 CEO 보수는 100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반 노동자 임금은 11.9% 오르는 데 그쳤다.

당연히 CEO의 초고액 연봉을 둘러싼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보수적인 공화당에서도 소득 불평등 확대의 주원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부끄러운 줄 알라”고 CEO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정치·사회적 논란과는 별개로 기업 내부에서도 CEO의 엄청난 보수에 걸맞은 성과에 대한 요구와 압력이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돈값’을 하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경영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CEO들이 기대에 부응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그로 인해 CEO 재직기간이 짧아지고 있고, 이사회에서 떠밀려 나듯 퇴출당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사무실 공유 업체인 위워크, 전자담배 업체인 쥴랩스, 전자상거래 업체인 이베이 CEO가 거의 동시에 물러났다. 10월엔 스포츠의류 업체인 나이키와 언더아머 CEO가 같은 날 퇴진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자리에서 물러난 미국 CEO들이 1332명에 이른다고 한다.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02년 이후 최대 기록이라고 한다. 상장·비상장 기업과 함께 공공기관, 비영리재단 등을 포함한 조사 결과다. 11월 들어서도 패스트푸드 체인점 맥도널드와 의류 회사 갭 등 대기업 CEO들의 퇴진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추풍낙엽’이라고 할 정도다.

CEO들의 사임 이유는 다양하다.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과 함께 기업 환경의 변화로 인한 리더십의 변화 필요성 등이 주로 거론된다. 맥도널드 CEO처럼 사내 연애 등 부적절한 처신을 했거나 회사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책임을 진 경우도 있다. 공공기관과 비영리 재단에서는 정부 정책이나 권력 지형의 변동으로 CEO가 바뀌는 사례가 많다. 업무 스트레스가 덜한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물러난 CEO들도 있다.

CNN 비즈니스는 ‘CEO 되기에 좋지 않은 시절(Bad time to be a CEO)’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사회와 주주, 이해관계자들이 CEO에게 요구하는 일들이 거의 실현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매 분기 실적 향상에 집중하면서 장기 성장을 위한 혁신도 추구하고, 경영의 제반 변수를 충분히 살피고 숙고하는 동시에 필요한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내려야 한다는 식이다. 한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동시에 다른 손으로 네모를 그려야 한다는 주문과 비슷하다. 그것으로 CEO의 초고액 연봉을 합리화할 수는 없겠지만, 돈값을 하기 쉽지 않은 세상인 것은 분명하다.

김기천 조선비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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