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지금까지 독일은 모범적인 재정 운용의 대표 사례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최근 독일을 비롯해 전 세계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자 기존의 엄격한 재정 준칙에 매달리는 정부의 고집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은 적극적으로 독일의 재정 지출 확대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확장적 재정 정책을 쓰면 해당국 통화가 절상 압력을 받게 되고 그와 동시에 달러화 가치는 떨어져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미국은 자국 지분이 많은 IMF를 통해 독일에 재정 정책 확대 ‘압력’을 넣고 있다. 반면 독일은 균형 예산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독일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경기침체가 아닌 소프트패치(soft patch·경기 회복 국면에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대규모 재정을 쏟아붓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게 독일의 주장이다.
달리아 마린(Dalia Marin) 독일 뮌헨대 국제경제학과장, 경제정책연구센터 연구원
달리아 마린(Dalia Marin)
독일 뮌헨대 국제경제학과장, 경제정책연구센터 연구원

①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독일 흑자 규모는 전 세계적인 화두가 돼왔고 국제통화기금(IMF) 등 글로벌 기관도 여전히 관심을 두고 있는 이슈다.

한데 올해 초 피터 알트마이어(Peter Altmaier) 독일 경제장관의 자문기구인 과학자문위원회(Scientific Advisory Council)가 황당한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독일이 직면한 거대한 불균형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해당 보고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재차 독일 흑자를 비판하며 독일을 상대로 수입 관세를 부과하거나 다른 보호무역 조치를 하겠다며 위협해오자 독일 재정 정책을 방어하기 위해 발간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시절에도 미국은 독일 정부에 흑자 축소를 거듭 요구했다. 최근 주요 20개국(G20)은 ‘글로벌 불균형’을 주요 의제로 삼기도 했다.

이 보고서에서 과학자문위원회는 독일이 경상수지를 조정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발전적인 조언을 하지 않았다. 경상수지는 수출과 수입의 차이를 반영한다. 막대한 흑자를 줄이기 위해 독일은 수출을 줄이거나 수입을 늘리거나, 둘 다 할 수 있다. 두 가지 정책 모두 정부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예를 들어 공공투자를 늘리면 수입 규모를 손쉽게 확대할 수 있다. 과학자문위원회는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가 지나치게 많은 저축과 지나치게 적은 투자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이같이 간단하고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독일 정부는 매년 ② 슈바르츠 눌(schwar ze Null)로 알려진 균형 예산 정책을 고수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일 기업도 프랑스와 이탈리아 기업보다 투자 규모가 매우 작다. 투자를 늘리면 수입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예산을 투입해 새로운 도로를 건설할 경우 건설 기계가 추가로 필요하고 또 다시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식이다. 게다가 독일 정부가 공공투자에 투입하는 예산의 30~40%는 수입을 하는 데 쓰인다. 따라서 공공투자의 확대는 자동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감소시킬 것이다.

공공투자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정책인 데다 실질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 좋은 방안이다. 독일의 주요 공산품 수입국인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독일 경제도 불황 위기에 놓여있다. 금융위기 이후 독일의 대중국 수출은 3배 가까이 늘었으나 앞으로도 증가 속도가 지속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와 같은 거시 경제 상황에서 정부는 더 많은 투자를 해 다가올 경기침체에 대비할 것이다. 최근 논문은 금융위기 이후 공공투자 정책이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냈다. 단기 명목금리가 0 또는 0에 가까울 때는 민간투자 규모가 작은 데다 공공 지출의 효과가 배가 된다.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미국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제74차 UN총회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EPA 연합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미국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제74차 UN총회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EPA 연합

또 독일은 자국 통화를 재평가함으로써 수출을 줄일 수 있다. 독일은 유로 환율에 대한 통제권이 없지만 수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리면서 통화 절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은 조세 정책 개선을 통해서도 달성할 수 있는 효과다. 하버드 대학의 에마뉘엘 파히(Emmanuel Farhi)와 기타 고피나트(Gita Gopinath), 프린스턴 대학의 올레그 이츠호키(Oleg Itskhoki)의 연구는 부가가치세(VAT)의 감소가 소득세 인상과 결합해 실질적인 환율 상승으로 이어질 것을 보여준다.

독일이 2000년대 중반에 조세 정책을 통한 재정 평가절하를 추진했던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시점에서 재정 재평가는 매우 적절하다고 본다. 워싱턴 대학의 파비오 기로니(Fabio Ghironi)와 분데스방크의 벤저민 웨이거트(Benjamin Weigert)는 독일의 경제 회복 사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독일이 2008년 부가가치세를 16%에서 19%로 올리고 평균 소득세율은 57%에서 47.5%로, 법인세율은 56.8%에서 29.4%로 낮춘 사례를 제시했다. 이런 정책을 통해 독일 수출품의 가격을 크게 떨어뜨리고 수입품의 가격을 높여 경상수지 흑자로 이끌었다. 독일은 언제든 이 같은 정책을 반대로 뒤집을 수 있다.

공공투자 확대와 재정 평가 절상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공공투자 확대가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독일 경제가 약화된 시기에 나라의 경쟁 우위를 떨어뜨릴 수 있는 재정 정책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다자주의가 갈수록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제 몫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과학자문위원회는 이 점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Tip

독일의 9월 무역수지는 계절 조정 기준 192억유로(약 24조6000억원) 흑자로 집계됐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183억유로 흑자를 웃도는 결과다. 같은 달 수출은 전월 대비 1.5% 늘었고 수입은 1.3% 증가했다. 9월 경상수지는 255억유로 흑자를 기록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슈바르츠 눌(Schwartz null), 영어로 black zero로 불리는 균형 예산을 고수하고 있다. 예산을 편성할 때 수입 금액 총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즉 적자 재정 편성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19년 독일 국내총생산(GDP)은 4조1000억달러로 일본에 이은 세계 4위다. 독일의 2분기 경제 성장률은 -0.1%를 기록했는데, 유럽연합(EU)은 메르켈 총리에게 재정 확대 정책을 펴 세계 경제 회복에 일조하라는 압박을 넣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건전 재정이 글로벌 경제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