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일러스트 : 양승용

올해 초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새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밥 스완은 제너럴 일렉트릭(GE) 출신이다. MBA 과정을 마친 뒤 GE에 입사해 15년간 재무부서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 HP엔터프라이즈와 이베이 등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냈고 2016년 인텔에 영입됐다. 작년 6월 크르자니크 전 CEO가 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사임한 뒤 스완이 직무대행을 맡았다가 지난 1월 말 정식으로 CEO 자리에 올랐다.

스완은 GE가 ‘CEO 사관학교’로 불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과거 GE 전성 시절 잭 웰치의 ‘일등주의’ 경영철학과 함께 체계적인 리더십 훈련을 받은 임원들이 다른 대기업 CEO로 활약한 사례가 많았다. 홈디포, 3M, 하니웰, SPX, TRW 등 유명 대기업을 포함해 GE 출신이 CEO를 지낸 기업이 수십 개에 이른다고 한다.

요즘엔 아마존이 ‘CEO 양성소’로 떠오르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 태블로 소프트웨어, 의류 전자상거래 회사 주릴리, 쿠폰 구매 사이트 그루폰 등이 아마존 출신을 CEO로 영입한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사무실 공유 업체인 위워크에서 창업자 애덤 노이만이 물러난 뒤 사태 수습을 위해 공동 CEO로 선임된 서배스천 거닝햄 부회장도 아마존 출신이다. 콘텐츠 스트리밍 사이트 훌루, 전자상거래 플랫폼 베리숍 등 아마존 출신이 창업한 스타트업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아마존 ‘졸업생’들의 활약 덕분에 창업자이자 CEO인 제프 베이조스가 경영의 구루(guru)로 부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투자자들이 워런 버핏 회장이 매년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연구하는 것처럼 대학의 경영학 전공자들이 베이조스의 주주 연례 서한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계속해서 혁신하고 전통적인 방식에 도전하도록 부추기는 공격적 스타트업 사고방식과 함께 파워포인트 이용을 금지하고, 회의 시작 후 30분간 참석자 전원이 회의 자료를 읽도록 하는 등 아마존의 독특한 기업 문화도 함께 확산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오래전부터 ‘페이팔 마피아’와 ‘구글 동창회’가 거론되기도 했다. 결국 ‘최초’ 또는 ‘최고’의 기록을 세우는 과정에서 임직원들이 특별한 경험을 하는 기업,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이 자연스럽게 인재 양성소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내에선 과거 대우그룹이 유명했다. 특히 건설 업계에서는 시공능력 30위 이내 업체 CEO 중 절반이 대우건설 출신이었다고 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김우중 회장의 ‘세계 경영’ 영향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증권 업계도 사장단 회의를 열면 대우 동문회를 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외환위기 영향으로 대우그룹이 몰락한 이후 대우 출신이 정계와 관계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는 삼성그룹 출신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 500대 기업의 대표이사 중 23명이 범삼성 출신이라고 한다. 최근엔 직접적인 경쟁 관계인 LG전자와 SK하이닉스도 삼성 출신 고위 임원을 영입했다. 과거 오랫동안 주요 그룹 사이에서는 고위직들을 서로 데려가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는데 요즘은 그런 관행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분위기다. 이해진 NHN 창업자를 비롯해 삼성 출신 벤처기업 창업자도 부지기수다. 삼성 출신은 내부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업무 능력과 함께 삼성 특유의 조직 관리 방식을 몸으로 익힌 사실이 강점으로 꼽힌다. 삼성이 과거 GE의 크로톤빌 연수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서 만든 체계적인 사내교육과 ‘세계 1등’의 경험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어디서나 정상에 올라선 기업이 인재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기천 조선비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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