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숙 연세대 도시공학과 도시계획 석사, 서울시 주택정책 자문위원
안명숙
연세대 도시공학과 도시계획 석사, 서울시 주택정책 자문위원

정부 정책은 때로는 과열된 시장을 식히는 소방수가 되는 한편 시장이 위축됐을 때는 불쏘시개가 된다. 정부 정책은 시장 참여자에게 제시하는 정부의 방향이자 시그널이다. 그러나 이런 시그널은 잘못 전달되면 오히려 시장이 왜곡되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유례없이 강력한 규제로 평가됐던 12·16대책에 이어 1월 20일부터 9억원 초과 고가주택 보유자에 대한 전세대출보증이 제한되고 보증부 전세대출을 받은 후 9억원이 넘는 주택을 매입하거나 2주택 이상을 보유하면 전세대출을 회수하는 전세대출 규제가 시행됐다.

더욱이 2월부터 매수인의 자금조달계획서를 포함한 실거래 신고 기한이 기존 ‘60일 이내’에서 ‘30일 이내’로 단축되고 3월부터는 투기과열지구 9억원 초과 주택 거래 시, 제출하는 자금조달계획서 작성이 강화돼 항목별로 예금잔액증명서, 납세증명서 등 증빙자료 제출이 의무화할 전망이다.

주택거래신고제 강화로 편법 증여나 자금출처가 분명한 자금이 아니면 앞으로 고가주택 매입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전문직이나 자영업자 등 소득 신고 누락 등으로 모아둔 현금성 자산을 주택을 매입하는 데 쓰다간 기존 사업장에 대한 세무조사의 철퇴를 맞는 ‘독배’가 될 수 있다.

올해 초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대통령이 집값 안정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고, 이는 정부의 후속 대책 등에서도 잘 드러난다. 주택시장은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정부 대책의 영향으로 거래가 많이 감소하고 강남권 고가주택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폭도 줄었다.

이미 강남권 초고가 아파트를 보유한 소유자는 올해 상반기까지 한시적으로 열린 10년 이상 보유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의 문틈으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문밖에서 보유세와 전쟁을 준비해야 할지 장고에 들어갔다. 그동안 자금은 있지만 강남권으로 진입하지 못한 대기 수요자들은 다주택자와 정부의 힘겨루기를 지켜보고 있지만, 정부의 의지대로 주택 가격이 잡힐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의 대책이 더욱 강력해지고 과도하게 올랐다는 심리의 영향으로 서울 아파트값 상승폭도 줄었다. 부동산114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7.2%로 2018년 21.4%보다 상승폭이 감소했고 12·16대책 이후부터 1월 말까지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은 0.83%로 아직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으나 그 폭은 현격히 감소했다. 구별 변동률을 보면 송파, 서초, 용산구 등은 서울 평균 상승률을 밑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상대적으로 상승폭이 서울 평균을 웃돈 곳은 마포구(1.68%), 구로구(1.61%), 서대문구(1.52%), 강동구(1.47%), 노원구(1.37%), 도봉구(1.09%), 동대문구(1.06%), 양천구(0.94%), 강남구(0.87%), 관악구(0.87%), 동작구(0.84%) 순으로 나타나 집값 상승폭이 크지 않았던 지역이 많이 올랐다.

1월 중 계약된 서울 아파트 단지별 현황을 보면 9억원 이하 비중이 크고 재건축이나 신축 비중이 작았다. 정부가 짜놓은 판대로 ‘9억원의 딜레마’는 상대적으로 자금조달이 용이하고 보유세 부담이 작은 9억원 이하 아파트의 약진으로 이어진 셈이다.

경기도에서 이런 분위기는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12·16 대책 이후부터 지난 1월 말까지 경기도 아파트값 변동률은 0.43%로 대책 이전보다 상승폭이 줄었으나 의왕시(1.22%), 수원시(1.18%), 과천시(0.89%), 화성시(0.78%), 용인시(0.67%), 광명시(0.52%), 안양시(0.47%)로 비조정대상지역이 포진된 곳의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아직 정부 정책의 영향이 극명하게 시장에 나타나기에는 평가 기간이 충분치 않으나 호재가 있는 비조정대상 지역, 9억원 이하 주택, 분양권 전매가 가능한 아파트 청약에 투자 수요가 몰리는 것을 보면 아직 주택시장은 ‘활화산’이다.

앞으로 주택시장의 흐름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9억원 이하 및 조정대상 외 지역으로 투자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의견과 조정기로 반전될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시장의 흐름을 전망하기 위해 과거 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참여정부 시절 6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 축소 및 종부세 강화 등으로 당시 주택시장은 ‘6억원의 딜레마’에 빠졌다. 이전 상승기에 해당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강남, 서초, 송파, 양천구가 200% 이상 올라 서울시 집값 상승세를 주도했으나, 정부의 규제 영향으로 2007년 이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서울 아파트는 강남권이 약세를 보이는 대신 강북 외곽이 강세를 보였다. 6억원 이하 주택이 포진한 강북, 노원, 도봉구 등 강북 외곽지역으로 집값 상승세가 번져갔다.

최근 집값 상승의 근본적 원인은 저금리로 인한 과도한 유동성이다. 그렇다고 유동성 조절을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정부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유동성 조절 정책 일환인 대출 규제를 선택했다. 주택 구입자금뿐만 아니라 전세 보증금을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갭투자를 막기 위해 전세자금 대출 규제까지 강행했다. 이미 거대한 흐름이 되어 버린 유동성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조절하고 방향을 틀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정부의 선택은 9억원 이하 아파트였고 결국 돈은 규제가 약한 곳으로 흐른다.

서울은 중위권 아파트 가격이 9억원을 넘어섰고 이미 전 지역이 투기과열지구 및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여 있어 추가적인 투자에는 부담이 따른다. 결국 서울 이외 수도권에서 9억원 이하, 개발 호재가 있는 조정대상 이외 지역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집값 상승의 근본적 원인은 저금리로 인한 과도한 유동성이다. 정부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유동성 조절 정책의 하나인 대출 규제를 선택했다. 정부의 선택은 9억원 이하 아파트로 속도를 조절하고 방향을 틀어주는 것이다.
최근 집값 상승의 근본적 원인은 저금리로 인한 과도한 유동성이다. 정부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유동성 조절 정책의 하나인 대출 규제를 선택했다. 정부의 선택은 9억원 이하 아파트로 속도를 조절하고 방향을 틀어주는 것이다.

수원·부천·화성·고양으로 자금 모이나

부동산114 자료에 따르면 지난 대세 상승기였던 2001년보다 2008년 경기도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과천시가 212%로 가장 높았고 △광명시 173% △안산시 161% △성남시 159% △의왕시 146% △안양시 144% △의정부시 144% △부천시 140% △구리시 139%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2003년 1월과 비교해 2019년 12월 경기도 상승률은 여전히 과천시가 가장 많이 오른 98% 변동률을 기록했고 △광명시 70% △성남시 57% △하남시 54% △안양시 44% △구리시 40% △의왕시 29% 순으로 나타나 경기도는 일부에서만 상승세가 이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12·16대책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경기도로 자금이 이동할 경우 아직 서울 등에 비해 덜 오른 수원시, 부천시, 화성시, 고양시 등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7년 연속 상승세를 보였던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값도 이젠 상승세를 마감하는 변곡점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무리하게 주택 수를 늘리는 투자는 보유세 부담 및 양도세 중과 등으로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보유 또는 매각에 따른 세 부담을 고려해 출구전략을 노리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필요한 때다. 변곡점에 다다른 2020년 주택시장은 자본 이득보다 현금 흐름을 중시하는 투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아파트로 몰렸던 관심이 수익성 부동산으로 옮겨갈 확률도 높다.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는 2020년에는 부동산 투자도 다양한 포트폴리오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