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2011년 박선숙 당시 민주당 의원의 최초 발의 후 9년 만에 금융 당국의 숙원 법안 ‘금융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금소법)’ 제정안이 3월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간 14개의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9건이 기한 만료로 폐기되는 등 최종 통과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과도한 규제로 금융회사의 영업을 위축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 펀드(DLF)와 라임 사태 등 사모펀드와 관련한 스캔들이 연이어 터졌고, 이에 힘을 얻은 금융 소비자 보호 목소리 덕에 높은 국회 문턱을 겨우 넘을 수 있었다. 본회의를 통과한 금소법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하는 절차만 남았다. 공포일로부터 1년 후 법안은 시행된다.

이번에 통과된 금소법의 핵심 골자는 일부 금융 상품에만 적용됐던 ‘6대 판매 규제’를 모든 금융 상품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 불공정 행위 금지 △부당 권유 금지와 허위 과장 광고 금지를 포함한다. 설명 의무를 위반한 경우 손해배상 입증책임은 소비자에게 있었으나 금소법은 고의나 과실 입증책임을 금융사에 돌렸다. 판매원칙 위반 시 제재 강화도 법안에 포함됐다. 적합성·적정성을 제외한 다른 원칙을 위반하면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토록 했다.

나아가 금소법은 지배구조법을 기준으로 금융 소비자 피해에 대해 피해 유형과 규모 등에 따라 해당 금융사의 담당 임원을 포함한 직원 징계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내부 통제와 관련된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과거 법령상 따로 규정이 없기에 앞서 열린 DLF 사태 관련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은행 측은 최고경영자(CEO) 중징계를 놓고 내부 통제의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금소법 통과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경우 이런 주장은 힘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간 고위험 상품을 이해도가 떨어지는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이는 명백히 시정돼야 할 일이다. DLF가 좋은 예다. DLF는 낮은 확률로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대신 높은 확률로 적은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다. 헤지펀드 매니저와 같은 ‘선수들’을 위한 상품이지 평범한 금융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기준 DLF 투자자 중 개인 투자자가 90%(총액 8224억원 중 7326억원)를 차지했으며, 80%가 50대 이상 주부인 정황마저 있다.

라임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라임은 올해 2월 14일 기준으로 모펀드는 반 토막 났고 인공지능(AI) 펀드 등 자펀드 중 일부는 전액 손실을 냈다. 라임이 출시한 펀드의 특징은 ‘고위험’ ‘불투명성’이다. 투자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은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하지만 환매 중단된 펀드의 60%(총액 1조6679억원 중 9943억원)가 개인에게 팔렸다. 심지어 특정 은행에서는 직원이 임의로 개인 고객의 투자 성향을 조작한 일마저 있었다. 금소법이 이러한 관행을 막음으로써 금융 소비자 권익 향상에 큰 역할을 할 것은 명확하다.

다만 금소법이 금융 혁신을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있다.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혁신상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금소법은 은행들을 투자 상품 판매에 보수적이 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수익 상품은 필연적으로 고위험을 동반한다. 손실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금소법은 이런 고위험·고수익 상품 출시를 꺼리게 하고, 궁극적으로 고객이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기회를 박탈할 가능성이 있다.

자본시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 즉 잉여자산이 적재적소에 투자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저해할 여지조차 있다.

금융 소비자 보호와 금융 혁신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 AI(인공지능)를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금소법이 정의한 6대 판매 규제 중 현장 적용이 어려운 것은 적합성 및 적정성 원칙이다. 적합성은 고객의 재산이나 수입이 해당 상품의 위험을 취하기에 충분한지 따지는 것이며, 적정성은 고객의 투자 성향이 위험 자산에 투자할 정도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다른 규제는 실무자들이 매뉴얼을 따르면 별문제 없이 지킬 수 있지만, 적합성과 적정성은 고객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실무자가 고객과 충분한 소통을 해야만 하며, 이는 상품 판매에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함을 의미한다.


사회적 합의 바탕으로 AI 활용 논의돼야

AI가 아주 잘하는 것은 데이터 기반 학습을 바탕으로 한 분류(classification)다. 고객이 특정 금융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적합’하고 ‘적정’한지 판단하는 것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AI 기반 개인별 투자 적합성 및 적정성 평가 시스템’이다. 굳이 알파고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AI가 이미 다양한 영역에서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나은 성능을 발휘함을 고려하면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신용카드 발급이나 대출 시 활용되는 신용평가 시스템과 같은 원리를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봤을 때, AI 알고리즘을 훈련시킬 충분한 데이터만 주어진다면 아주 좋은 성능의 시스템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

AI 기반 개인별 투자 적합성 및 적정성 평가 시스템의 도입은 다양한 장점이 있다. 첫째, 상품을 판매하는 창구 직원의 부담이 줄어든다. 주관적인 판단과 그에 따르는 법적인 책임에서 자유롭기에 판매 직원은 상품 설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이는 판매량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둘째, 생산성 향상 및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창구에 온 고객이 특정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적합하고 적정한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금융 상품 추천 과정이 간략해지고 투명해진다. 수없이 많은 금융 상품을 이해하고 고객에게 맞는 금융 상품을 추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AI 기반 접근법은 이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넷째, 법적인 책임 소재가 명확해진다.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금융 소비자의 권익 침해 가능성을 줄일 수 있으며, 비즈니스 프로토콜의 표준화를 통한 관리의 용이성 역시 기대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AI 기반 시스템을 적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만 사회적인 합의가 사전적으로 필요한 지점이 있다. 데이터 기반의 접근법은 필연적으로 오류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적합한 투자자를 그렇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고(1종 오류), 반대로 적합하지 못한 투자자에게 투자를 권유하는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2종 오류). 1종 오류와 2종 오류는 트레이드 오프 관계에 있어서 동시에 줄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금융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는 2종 오류를 최소한으로 맞춰야겠지만, 이는 투자해도 괜찮은 수많은 고객을 부적합하다고 판정하게 한다. 1종 오류를 줄이다 보면 선의의 피해자가 많이 나오게 될 것이다. 1종 오류와 2종 오류의 적절한 수준은 주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며, 따라서 사회적인 합의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관리 당국, 즉 금융위나 금감원이 금융산업 역량 강화와 소비자 권익 보호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이와 관련한 논의를 선제적으로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