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여진 연세대 경영학,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연세대 경영학,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사기)’로 촉발된 사모펀드 사태로 금융소비자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일부 사모펀드 운용사는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금융감독원이 7월 초에 밝힌 바에 따르면, 투자자들에게 원금을 돌려주지 못해 분쟁 조정 절차에 돌입하는 사모펀드가 22개나 되며 판매 규모는 총 5조6000억원에 달한다.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 이어져 당분간 사모펀드의 인기는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운용사의 도덕적 해이와 운용사를 감독·검증해야 할 기관·회사의 허술한 시스템이 만든 결과물이다. 앞으로 제도 보완을 통해 반드시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사모펀드들은 해당 운용사를 일약 스타로 성장시킬 만큼 인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피해 규모도 상당히 큰 상태다. 그들의 불법적 운용 행태는 향후 수사가 진행되면 명백하게 밝혀질 테지만, 현시점에서 우리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판매사의 감독망을 뚫고 고액 자산가의 마음마저 현혹시킬 수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사기 수법에서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우선 피해 금액만 무려 500억달러(약 60조3000억원)로 금융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로 기록된 메이도프 사건을 되짚어보자. 당시 버나드 메이도프 투자증권(BMIS)은 의외로 낮은 연 10% 내외의 수익률을 제시하며 펀드를 판매했다. 고수익 보장을 미끼로 쓰는 전형적인 금융사기 수법과 달랐다. BMIS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을 제시하면서 “위험한 자산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말로 고객을 유혹해 거액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그런 다음 실제로는 투자 없이 새로운 투자자의 자금을 기존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폰지 사기로 가짜 수익률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금융감독원이 사기·부정 판매로 판단해 전액 환급을 명령하고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인 ‘무역금융 펀드’와 펀드명세서의 투자자산을 허위 공시한 것으로 밝혀진 ‘공기업 채권 펀드’ 등도 모두 안정적인 수익을 강조해왔다. 시중금리 1%대보다 조금 높은 수준인 연 3~4%의 수익을 내세우며 보수적이고 신중한 투자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운용사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한 수법도 구체적이었다. 무역금융 펀드는 규모가 무려 6000억원에 이르렀는데, 무역금융 대출의 담보가 확실할 뿐 아니라 여러 헤지펀드에 분산투자하므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투자자를 설득했다. 5000억원 규모의 공기업 채권 펀드는 공공기관 발주사업을 수주한 기업이 발주처에서 받을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내용이 모두 허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계약서나 펀드명세서도 모두 거짓으로 작성됐다.

이 펀드들은 수익률이 낮은 대신 안전하다는 말로 소비자를 현혹했다. “수익률과 리스크는 비례한다”라는 상식을 역이용한 셈이다. 여러 대안 가운데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간에 위치한 대안을 고르는 소비자 심리를 일컫는 ‘타협 효과(Compromise Effect)’도 겨냥했다.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은 해당 펀드들을 히트 상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실상은 씁쓸했다. 문제가 된 대부분의 대체 투자 및 신종 투자자산은 안정적인 수익률은커녕 수익률을 산출하기 어려울 만큼 과거 운용 실적이 없었다. 당장 투자 손실이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리스크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운용사들은 온갖 생소하고 난해한 용어를 동원해 선진 투자 기법을 구사하는 것처럼 꾸몄다. 운용사를 믿고 돈을 맡긴 일반 투자자가 투자제안서만 보고 수익률과 리스크를 예상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일부 사모펀드 운용사는 수수료를 없애고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PBS(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를 쓰지 않고 직접 수탁하거나 증권사 없이 직접 판매한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판매사나 수탁사로부터 부적격 운용사로 지정돼 수탁 계약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펀드를 판매할 증권사가 없을 정도로 평판이 좋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리고 사실 연 3~4%의 수익을 고객이 수취하려면 실제 펀드는 이보다 더 높은 투자수익률을 달성해야 한다. 운용사·증권사·수탁사·사무수탁사 등에서 각각 수취하는 수수료가 이 수익률에 모두 반영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 터진 사모펀드 사태는 “위험한 자산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말로 자금을 모은 버나드 메이도프 폰지 사기와 닮은 구석이 많다.
최근 국내에서 터진 사모펀드 사태는 “위험한 자산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말로 자금을 모은 버나드 메이도프 폰지 사기와 닮은 구석이 많다.

투자 대상 검증 노력 철저해야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저물가·저금리라는 뉴노멀(새로운 표준) 시대를 겪으며 안전 자산에 대한 투자자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해왔다.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위험이 가중될 때 시중 자금이 저위험 자산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일컫는 안전자산 선호현상(Flight to Quality)은 어느덧 뉴노멀의 한 축이 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투자자는 고수익이라는 표현에는 의심의 눈길을 주기 마련이지만, 꾸준하고 안정적인 수익이라는 표현에는 경계심을 낮추게 된다.

워런 버핏이 정신적 스승으로 꼽는 성장주 투자의 거장 필립 피셔는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Conservative Investors Sleep Well)’라는 저서에서 안전 투자로 불안감 없이 마음이 편하려면 투자 대상을 이해하고 검증하려는 노력만큼은 편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보수적으로 투자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리스크로 자산의 구매력을 가장 잘 유지함을 의미하는데, 이는 반드시 두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우선 투자자는 투자 대상의 건전성을 충분히 이해해야 하고 자신이 하려는 투자가 보수적인 투자인지 판단하는 일련의 검증 절차를 충실히 따라야 한다. 좋은 사모펀드를 고를 때도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 세상에 쉬운 투자는 없다. 쉽다고 속삭이는 사람에게는 의심과 경고의 시선을 안겨야 한다.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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