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SK바이오사이언스가 올해 3월 실시한 기업공개(IPO)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투자자는 청약 증거금 1억원을 내고도 공모주 5주를 받았다고 한다. 최근 대어급 IPO에서 자주 나타난 현상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복된 것이다.

초대형 IPO가 잇따르며 식지 않는 공모주 투자 열풍에 개인 투자자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진다. ‘투자 수익률은 높은데 목돈 들여 받는 공모주 수가 너무 적지 않은가.’ 사실 다른 곳에 투자해 수익을 낼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공모주 투자 수익률이 높다고 하기도 어렵다.

이런 딜레마가 고민 중인 사람이라면, 시선을 돌려 아직 상장하지 않은 비상장기업에 투자해보는 것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기업은 비선형적 성장세를 보이기 때문에 상장기업보다 비상장기업의 투자 수익률이 높을 수 있다. 벤처기업에 초기 투자자로 들어가 어마어마한 수익을 기록하는 사례가 화제를 모으지 않나. 기업이 상장 가능한 시점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어느 정도 성장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당연히 상장 후 기업 성장의 폭은 비상장기업보다 작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막대한 자금이 벤처 투자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우리나라가 제2의 벤처 붐을 맞이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지난해 우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서도 유동성이 증시를 끌어올리는 폭발적인 힘을 확인한 바 있다. 이는 벤처 투자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2020년 신규 결성된 벤처 펀드의 규모는 사상 최초로 6조원을 돌파했다.

잠재력을 갖춘 벤처기업이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는 자금 조달 갭(Financing Gap)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방법 외에도 벤처기업에 위험 자본을 공급하는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정부 재원으로 모펀드를 조성해 다른 벤처 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 펀드(Fund of funds)로 벤처 투자 시장에 유입되는 자본의 양을 늘리는 형태가 주를 이루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모태펀드다.

모태펀드는 정부 부처로부터 받은 재원으로 국내 벤처 펀드의 약 21%에 해당하는 금액을 평균적으로 출자해 왔다. 2020년의 경우 모태펀드 비중이 18%로 전년 대비 줄었지만 같은 기간 민간 출자는 4조3000억원으로 52% 급증했다. 이는 벤처 투자를 주저하던 연기금과 금융기관까지도 저금리 시대의 새로운 투자처로 벤처 펀드를 주목하고 있음을 뜻한다.

한국벤처투자·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등 주요 정책 출자기관이 역대 최대 규모의 자펀드를 조성했고, 펀드 규모가 커진 각 운용사는 국내 유망 벤처기업 발굴에 나섰다. 벤처 투자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은 도약에 필요한 자금을 유치하려는 창업자에게 크나큰 기회다. 성공한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기업)의 뒤를 따르려는 창업 열기도 어느 때보다 뜨거운 상황이다.


리스크 관리 가능한 펀드 투자

이런 분위기에서 개인이 벤처 투자에 잘 합류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우선은 좋은 비상장주식 펀드에 투자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본다.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과 비교해 펀드 수수료가 아깝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비상장주식 투자의 리스크를 헤지(위험 회피)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다.

실제로 비상장주식 거래는 사기 피해가 잦다. 비상장주식은 매매가 어렵기 때문에 상당수 개인 투자자가 전문 브로커를 통해 사고파는데, 이 점을 악용한 사기가 기승을 부린다. 예를 들어 통일주권을 발행하지 않는 기업에 투자할 때는 투자 후 주권미발행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주식 인수 대금을 납입하고 주권미발행확인서를 받기까지 최소 몇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이사이에 사기 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사기꾼은 매수자 A에게 비상장기업 C의 주식 1억원어치를 매도한 뒤 A가 C기업의 주권미발행확인서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매수자 B에게도 C기업 주식을 1억원 받고 판다. B는 매수 시점에 확인 차원에서 C기업에 전화할 수 있는데, 그때는 사기꾼 명의로 주주명부가 작성돼 있어 B는 안심하고 돈을 지급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B가 C기업에 주권미발행확인서를 요청할 때는 주주명부가 매수자 A로 바뀌어 있다. 결국 B는 허공에 돈을 날리게 되는 것이다.

직접 투자와 달리 벤처 펀드 투자는 자산운용사가 벤처기업 성장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벤처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벤처기업과 운용사는 투자 계약 단계에서부터 리스크 최소화 장치를 포함하는 여러 계약을 체결한다. 운용사는 투자 이후에도 수시로 해당 기업을 모니터링하며 법률·회계 관련 지원을 제공한다.

또 운용사는 벤처기업이 향후 상장할 때 거래소와 금융 당국이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개인 투자와 달리 상장 리스크도 관리 가능하다는 말이다.

개인 투자자가 선택할 수 있는 벤처 펀드 유형으로는 신기술투자조합, 벤처투자조합, 개인투자조합, 창업∙벤처전문 경영 참여형 사모집합투자기구, 전문투자형 사모집합투자기구 등이 있다. 펀드마다 투자 대상, 투자 의무 비율, 상장 주식 취득 제한, 중견기업 투자, 해외 투자 등의 조건이나 세제 혜택이 상이하다.

이 중 가입 금액이 가장 큰 것은 전문투자형 사모집합투자기구인데, 1억원이던 최소 가입 금액이 올해부터 3억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로 국민 불안과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금융 당국이 가입 자격을 제한한 것이다.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이긴 해도 고액 자산가가 아닌 개인 투자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의 폭이 좁아진 점은 아쉽다.

규제에서 가장 자유로운 펀드는 신기술투자조합이다. 신기술투자조합을 운영할 수 있는 신기술사업금융회사로 등록하려면 자본금만 100억원이 필요하다. 덩치가 큰 금융사만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신기술사업금융회사와 신기술투자조합을 공동 운용하는 식으로 규제를 회피하려는 펀드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일종의 풍선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불필요한 공동 운용으로 운용보수가 증가하는 부작용이 생기기 쉬운데, 결국 과도한 규제에 따른 라이선스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금융 당국의 규제를 피해 사각지대에 놓인 개인투자조합에 투자하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개인투자조합은 결성하고 운용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여유 있다. 그러다 보니 운용 주체가 불분명한 개인투자조합에 지인 소개로 투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위험 정도가 일반적인 펀드 투자와 다르다는 점을 유념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작년 8월 벤처투자법 시행과 함께 중소기업창업투자조합과 한국벤처투자조합이 통합된 것처럼 언젠가는 벤처 투자 목적의 모든 펀드를 통합하고 일원화하는 것이 현재의 복잡다기한 벤처 투자 제도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다만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 비상장주식 투자에 관심을 둔 개인 투자자는 각자의 투자 여건에 적합한 벤처 펀드를 고르는 훈련을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