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일본 경제산업성은 새로운 미래 전략을 발표하면서 ‘메이드 인 재팬’을 벗어나 ‘네오 재패네스크’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10년, 21세기 문화 대국이라는 인식을 얻고 싶었던 일본은 ‘쿨 재팬’을 공식화했다. 사진 일본 경제산업성
2005년 일본 경제산업성은 새로운 미래 전략을 발표하면서 ‘메이드 인 재팬’을 벗어나 ‘네오 재패네스크’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10년, 21세기 문화 대국이라는 인식을 얻고 싶었던 일본은 ‘쿨 재팬’을 공식화했다. 사진 일본 경제산업성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말이다. 사전적으로는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지만, 주로 19세기 말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프랑스가 번성했던 시기를 회고적으로 부를 때 사용된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19세기 대영제국 황금기)’ 시기와 합쳐져 유럽 전역이 평화를 누리던 ‘백 년 평화’ 시절을 일컫는 말이기도 해, 이제는 ‘좋았던 옛 시절’을 표현할 때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사실 누구나 좋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한다. 지금보다 예전이 살기 좋았다고 여긴다. 세상이 갈수록 험해진다고 생각하고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착각한다. 사회심리학자인 리처드 아이바크는 이런 착각을 ‘좋았던 옛 시절 편향(Good-Old-Days bias)’이라고 명명했다. 편향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을 보는 관점은 세월에 따라 바뀌는데 우리는 자신의 관점이 변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한다고 느낀다면 그 변화의 상당 부분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처해있는 입장이 변해서인 것인데도 말이다. 이런 이유로 실제와는 다른 ‘장밋빛 회고(rosy retrospection)’가 생겨난다.

사회가 갈수록 쇠퇴한다고 믿는 사람은 보통 보수적인 메시지와 회고적인 표현에 쉽게 당한다. 미국의 벨 에포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서 월남전 이전까지로 본다. 1980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로널드 레이건은 캠페인 슬로건으로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듭시다(Let’s make America great again)’를 들고나왔다. 좋았던 그 시절, 미국의 벨 에포크로 돌아가자는 의미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는 이 슬로건에서 ‘Let’s’ 부분만 빼고 썼다. ‘좋았던 옛 시절’ 편향은 보수적 감성을 강하게 자극했고 결국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트럼프는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했지만 언제가 위대한 시절인지 말하지도 않았다.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된다. 일본이 그렇다.


우키요에(에도시대 유행 채색판화)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후카쿠 36경: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유럽 인상주의 화가 사이에 유행한 자포니즘(Japonism)에 영향을 줬다. 사진 위키피디아
우키요에(에도시대 유행 채색판화)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후카쿠 36경: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유럽 인상주의 화가 사이에 유행한 자포니즘(Japonism)에 영향을 줬다. 사진 위키피디아

‘자포네스크’에서 ‘네오 재패네스크’로

1980년대 말 정점을 찍었던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들어 계속 하락했다. 30년이 넘는 저성장인 셈이다. 일본인이 그리워하는 ‘좋았던 옛 시절’을 대표하는 국가 규모 행사가 두 개 있는데, 바로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다. 이는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는 것을 전 세계에 선포한 행사였다. 고령화 이전의 젊었던 일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담겨있는 행사이기도 하다.

일본은 2021년 치러진 ‘2020년 도쿄 올림픽’에 각별한 의미를 담으려고 했다. 사실은 ‘그렇게 좋았던 시절이 다시 온다’는 자기 최면이다. 그러나 실패했다. 일본인 외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오는 2025년에 만국박람회가 또 오사카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불행하게도 이 행사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20세기는 몰라도 21세기에 만국박람회는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을 만한 행사가 이미 아니게 된 탓이다. 게다가 일본은 국가 브랜드 정체성으로 이전처럼 ‘경제력’을 내세울 수 없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예전처럼 일본이 압도적인 경제력을 보여줄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매력 평가 지수(PPP·Purchasing Power Parity) 기준으로 일본은 2020년부터 한국에도 뒤처졌다. 두 번째는 일본 경제가 막강했을 때 들었던 ‘이코노믹 애니멀’이라는 멸칭(蔑稱)에 관한 아픈 기억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이 경제력, 국방력과 같은 하드 파워가 아니라 문화, 예술 등 소프트 파워로 브랜딩하려는 건 당연한 결과다.

일본에는 소프트 파워 측면의 벨 에포크가 분명히 있었다. 바로 자포니즘(Japonism), 그리고 자포네스크(Japonesque)다. 자포니즘은 19세기 중후반 유럽의 예술계를 휩쓸었던 일본풍의 사조를 지칭하는 말이다. 일본 에도시대 서민 계층 사이에서 유행했던 일본의 채색판화(浮世絵·우키요에) 영향을 받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자포니즘을 이끌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클로드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가 대표적이다. 고흐는 그의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모든 작품은 일본 미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라고 쓸 정도였다. 고흐 자화상을 보면 얼굴 뒤로 일본의 풍속화가 그려져 있다. 이런 문화적인 유행인 자포니즘 속에서 일본풍으로 만들어진 서양 물건을 자포네스크라고 불렀다. 자포네스크란 ‘Japan(일본)’과 ‘esque(~식의)’를 합쳐 만든 조어다. 게르만인이 로마인의 건축을 모방한 것을 ‘로마네스크’라 하고, 아라비아풍을 ‘아라베스크’라고 하듯이.

예상대로 일본은 이 현상을 잊지 못했다. 2005년 일본 경제산업성은 새로운 미래 전략을 발표하면서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을 벗어나 ‘네오 재패네스크(Neo Japanesque·신일본 양식)’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21세기판 자포니즘’의 선포였다. 일본 재계는 즉각 호응했다. 2006년 1월, 파나소닉과 도요타자동차 등 76개 대표 기업과 단체, 38명의 디자이너, 학자, 전문가가 나서 ‘신일본 양식 협의회’를 결성했다. 설립 취지문에는 “일본 브랜드 확립이 필요하다. 일본 고유문화와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일본 브랜드 가치를 향상해 세계에 발신하는 것이 일본 제품과 콘텐츠의 국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네오 재패네스크로 국가 브랜딩을 하겠다는 의지다.

다른 모든 나라가 ‘메이드 인 (국가 이름)’으로 표기할 때 스위스만은 ‘스위스 메이드(Swiss Made)’라고 표기했다. 이제 스위스 메이드는 스위스 국가 브랜딩의 중요 요소가 됐다. 그러나 15년 전 일본 정부가 호기롭게 선포한 네오 재패네스크는 지금 어떻게 됐나. 메이드 인 재팬 대신에 네오 재패네스크를 본 적이 있는가. 일본은 애칭이나 별명은 본인이 스스로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는 간단한 사실을 애써 무시했던 것이다. 별명은 남이 지어줄 때나 매력이 있는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얼굴 뒤로 일본의 풍속화가 그려져 있다. 사진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얼굴 뒤로 일본의 풍속화가 그려져 있다. 사진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쿨 재팬’의 재등장

1997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멋진 영국)’를 주창했다. 영국 대외 이미지를 ‘활기차고 멋진, 고루하지 않은 나라’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해 소프트 파워를 육성하고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그게 부러웠던 것일까. 일본도 2002년부터 ‘쿨 재팬’을 간헐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쿨 재팬이 핵심 국가 브랜딩으로 공식적으로 다시 등장한 시기는 네오 재패네스크의 실패를 받아들인 이후였다. 또 한 번의 자포니즘을 갈구하던 일본은 21세기 문화 대국이라는 인식을 얻고 싶었고, 2010년에 쿨 재팬을 공식화했다. 2010년 6월, 일본은 쿨 재팬 담당 부서로 ‘쿨 재팬실’을 경제산업성 산하에 설치했다.

일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시기적으로 쿨 재팬의 본격 등장은 한류(韓流)에 대한 경계심에서 나왔다. 쿨 재팬 또한 실패가 예견된 브랜딩이었다. 다음 이야기는 2편에 이어서 풀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