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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서울대 법학과, 제18기 사법연수원, 현 블록체인법학회 부회장 겸 기획학술위원장, 현 가상자산업권법 TF 위원

2009년 1월 최초 비트코인 블록이 형성된 이래, 토큰이라 부르는 암호화 기술과 분산원장기술로 만든 새로운 가상자산의 등장, 기존의 실물 자산의 토큰화, 자산들의 이전 방식의 통일화(化)가 심상찮은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모든 가상자산의 시가총액은 2000조원, 프로토콜 기반으로 토큰을 보관, 거래하고 이자를 지급하는 디파이(DeFi)에 예치된 가상자산의 총액은 1500억달러(약 181조6500억원)로 각 추산된다. 디지털 콘텐츠의 특정된 사본에 대한 권리를 표창하는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의 거래 금액은 지난해 상반기 25억달러(약 3조275억원)에 이르렀고,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들의 하루 거래 금액 총액은 4000억원에 육박한다

세상의 소통방식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의 영향으로 급격하게 온라인화됐고,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의 확산이 가상자산의 생성, 거래를 부추기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비난 속에서 탄생한 비트코인은 소수의 자유로운 프로그래머들 사이의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기술적 또는 정치․사회적 논쟁으로 그칠 것 같은 예측을 깨고, 글로벌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신개념의 자산에서 제도 변화의 방아쇠로

비트코인은 IT 기술을 이용한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사이퍼 펑크 운동의 일환으로, 국가의 화폐 주권 남용에 저항하는 목적으로 나왔다. 어떤 거래 내역을 암호화한 후 합의를 거쳐 다수의 원장에 분산 기록, 저장할 수 있고, 그 기록은 누구도 조작할 수 없다는 기술적 장점은 여러 분야로 확산, 활용되고 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이후의 많은 토큰이 지급·송금 수단으로 사용되고, 대중에게 판매되는 과정에서 각국 정부는 가상자산의 탈중앙화 추구가 중앙화된 국가권력과 제도에 위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자금세탁 연루 위험, 투자자 내지 소비자 피해, 건전한 자본시장의 안전성 훼손 등을 우선 고려한다. 하지만, 가상자산의 활용이 경제에 가져올 거래의 투명성, 보안성, 비용 절감 등 혁신의 효과를 고려해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는 국가도 생겨났다.

미국 상⋅하원은 2021년 디지털 자산 시장구조 및 투자자보호법, 토큰유형구분법, 블록체인 규제명확성법 등 25개의 법안을 발의했다. 가상자산 생태계에서는 DAO(헌법 탈중앙화 자율 조직)라는 조직 형태가 자본주의 경제 활동의 중추인 가상의 조직인 회사를 대체할 조짐까지 엿보인다. 놀랍게도 미국 와이오밍주는 지난해 DAO를 법적 주체로 인정했다.

이미 우리가 익숙한 서비스들이 가상자산에 대해서도 제도화되고 있다. 토큰선물거래, 토큰 투자 펀드와 비트코인 선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인가한 미국, 증권형 토큰의 STO(증권형토큰공개)를 허용하는 독일과 일본, 토큰 현물 ETF를 허용한 캐나다, 가상화폐공개(ICO) 라이선스를 인정하는 사업성장혁신법을 만든 프랑스가 예다.

탈중앙화가 가져올 가치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지만 실현까지 과정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자산 생성과 거래를 프로토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탈중앙화는 별문제 없이 달성될 수 있는지, 프로토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개인이나 법인이 악의를 가지거나 왜곡을 시도할 경우에 이용자를 보호할 방안은 있는지 등 쉽지 않은 이슈가 있다. 이를 고민한 결과, 2021년 10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가 발표한 수정 가이던스에는 DeFi도 누군가 통제 권한이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경우 자금세탁방지의무를 지는 사업자로 봤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게리 겐슬러 위원장은 DeFi도 개발팀 등이 가버넌스에 관여하면 탈중앙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를 강조했다.


한국에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이란

우리도 원점으로 돌아가 공동체 차원에서 제대로 질문을 던져볼 때다. 가상자산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 가상자산시스템은 그동안 촘촘하게 사회를 구성하고 신뢰를 받아온 중앙화된 기관들을 제대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인지, 그동안 초기에 형성된 극단적인 비관론과 낙관론만 고수한 것은 아니었는지 등이다. 특히 화폐 주권에 저항하는 최초의 의도에만 집착하거나 탈중앙화를 이상적으로만 보는 극단을 벗어나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본질에 다가갈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 가상자산정책을 발표하기 시작한 2017년 말과 비교하면, 지금 한국은 시장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고, 규제 정립도 최소한에 머문 듯하다. 그러나 이제는 제도화의 보류가 가져올 리스크, 즉 가상자산 분야의 기업가정신은 억제되고, 국내 투자자의 자산 형성 기회 제한, 블록체인 규제 불투명 국가로 평가될 오명도 회자되고 있다.

제도화의 출발점은 가상자산의 유형 구분, 법적 정의와 가상자산 소유자의 지위를 민사법상 명백하게 정립하는 것이다. 자본시장, 자산운용, 외환규제, 조세 분야의 규제를 포괄적이고 상호연관성 있게, 산업을 키우면서도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제도 정비를 해야 한다. 해외의 자본과 인재를 끌어들일 명실상부한 블록체인 특별경제구역 설치 같은 남다른 국가전략도 괜찮을 것 같다. 블록체인 제도화의 선도국이 되면 국제기구 차원 또는 초국가적 논의를 주도할 기회도 있을 것이다.


대선, MZ 세대, 블록체인의 함수

주요 정당에서 가상자산 감독청, 가상자산위원회, 블록체인 게임 아이템 상장 허용, 부동산 개발 이익 토큰의 전 국민 지급 같은 대선공약이 발표됐다. 특히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에게 호소하려는 열의는 보이나, 문제 인식이 체계적, 포괄적이지는 않아 보이고, 장기적으로 어떤 정책을 지향하는지도 잘 읽히지 않는다.

대선이 블록체인 정책과 규제를 대전환할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후보들은 MZ 세대의 지원에 목말라하고, MZ 세대는 가상자산에 대한 바람을 정치가 경청하고 실행해주기를 희망한다. 변혁의 시대에 기성세대는 현상 자체에 대한 이해가 힘들고, 젊은 세대는 제도화할 힘과 경험이 없다. 시대에 걸맞은제도화는 양 세대의 진정한 소통과 협력이 있을 때만 가능해 보인다.

지난해 5월 당시 금융위원장이 젊은 세대들이 가상자산에 몰려드는 현상에 대해 “어른들이 잘못된 길로 가려는 젊은 세대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걱정한 충정은 이해되나, 자산 소유를 거쳐 산업의 주역으로 글로벌 진출까지 희망하는 청년의 욕구를 살피지 못하고 국가 내에서 누구를 가르치는 방식을 제안한 것은 본질을 비켜간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우선, 정부와 시민사회가 가상자산의 ‘가상’이란 용어에 딸린 부정적 뉘앙스를 극복하고 객관화하는 것에서 출발하면 좋겠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통찰처럼, 호모사피엔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개념과 제도인 문자, 화폐, 자유주의, 자본주의 등을 끊임없이 창안하면서 지구의 지배 세력이 됐다. 가상자산 생태계도 컴퓨터 네크워크와 암호화 기술에 근거한 또 하나의 가상제도이고, 그 외 부정적인 내포는 없다.

전담 규제기관을 새로 만들지 또는 기존 규제기관에 역할을 부여할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규제 불필요, 엄격 규제, 중간의 영역을 합리적으로 구분하고, 규제의 명확성과 명문화되지 않은 그림자 규제의 최소화를 미래 세대들이 체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MZ 세대가 가상자산의 소비자이면서 서비스 공급자이기도 하고, 그들이 해외의 같은 세대, 같은 업계와 비교할 때 국내 규제로 한쪽 발이 묶인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지 않는지 살피기를 바란다. 1992년 미국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의 참모 제임스 카빌이 복잡하고 불리한 상황에서 사용해 역전을 이룬 문구를, 지금 더 큰 반전을 기대하며 외쳐 본다. “바보야, 문제는 블록체인이야.”

박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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