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정책에 대한 논쟁이 잠재적인 탄소 감축 기술이나 에너지 전략을 다룰 때마다 근본적인 질문이 항상 따른다. 간단하고 비교적 값싼 기술에 얼마나 의존해야 하는가,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저탄소 기술로 바꾸면 되는 건가, 아니면 우리가 사는 방식과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방법을 바꿔야 하는 건가.
이러한 질문들은 단순한 철학적·학문적 질문이 아니다. 오늘날의 정치 환경에서 이들 문제는 대부분 좌우로 대립된 이슈들이다. 한편에서는 시장과 신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 정책이 (문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모습은 매우 조악하다. 많은 정치인과 논객, 그들의 지지자들이 이들 문제를 어떤 식으로 (좌우의) 프레임으로 엮는지를 알게 되면 새로운 청정 기술이 어떻게 채택될지를 분석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우선 핵융합 분야에서 지난해 12월 획기적인 진전이 이뤄지자 원자력 에너지와 관련한 해묵은 논쟁이 다시 시작됐다. 기술 낙관론자들은 무제한으로 청정에너지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는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관심사로, 인류의 창의성이 기후 위기의 열쇠를 쥐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듯하다.
하지만 기술 자체만으로는 그 기대를 현실화할 수는 없다.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실제 핵융합 실험의 결실은 세금으로 운영하는 미국 정부 연구기관 LLNL이 이뤄냈다. 물론 스타트업도 10년 안에 핵융합 기술을 실용화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 역시 정부 보조금이나 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도입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대출 지원 등 정부 자금을 요구하고 있다. (신기술 실용화가 정책에 의존하는 현실이) 핵융합 같은 특정 기술이나 특정 지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② 기술 자유주의(technolibertarianism)의 보루인 실리콘밸리조차 정부의 지원책에 의존하고 있다.
두 번째 사례는 가스레인지다. 가스레인지는 지난해 말 대기질 악화를 우려한 미국 연방 소비자보호기관의 ‘가스레인지 사용 금지 검토’로 논쟁의 중심에 놓였다. 여기서 가스레인지는 오래된 기술을, 그 대체품인 인덕션은 새로운 기술을 대표한다. 통상적으로 친기술적인 우파는 인덕션을 지지해야 했지만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이유로 구시대 기술인 가스레인지의 편에 서는 난센스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온화한 기후의 지역이든, 추운 지역이든 많은 곳에서 요리보다 난방에 가스를 더 많이 사용한다. 가스레인지에서 인덕션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가정의 가스 선을 자른다’는 상징 그 이상을 의미한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싸움의 상징적인 사례가 됐기 때문이다. 핵융합과 가스레인지 논쟁은 기술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선 단순히 좌우의 ‘예, 아니요’를 외치는 싸움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탄소 배출을 적절한 속도와 규모로 줄이기 위해 새로운 기술은 물론 정책도 함께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농부와 목장 주인들을 대표하는 텍사스 토지·자유 연합은 (정책보다 시장을 중시하지만) ‘재생 가능한 에너지 프로젝트’를 위한 정부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기술 낙관론자는 이 연합과 같은 행동을 보여야 한다
또한 기술 낙관론자들은 한 가지 신기술만으로 기후 위기를 해결할 것이라 믿어선 안 된다. 대중은 이미 모든 기술적 해결책이 동등한 상황에서 제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인덕션, 열펌프(가스를 대체할 수 있는 조금 더 효율적인 전기 장치), 태양열과 풍력 등의 기술은 실제 생활에 쓰일 수 있을 정도로 준비돼 있다. 하지만 주로 핵융합이나 ③ 녹색 액체 연료(Green Liquid Fuels) 등은 그 정도로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이 에너지들은 분명하게 더 많은 연구를 통해 미래의 이익을 창출해낼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가능성 자체가 향후 10년간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방해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핵융합 기술은 30년이나 뒤처져 있다는 농담이 있다. 이제야 실험실 세팅에 성공한 것을 보면 어쩌면 그 농담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21세기 후반에 들어선 뒤에나 핵융합 기술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타임라인을 고려하더라도 기후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핵융합을 기후 위기에 대응할 유일한 기술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화석 연료로 인한 대기 오염으로 약 700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은 상황이다. 기후 변화를 억제하는 것은 지금부터 2030년까지, 그리고 2030년부터 2050년까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어떤 기술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화석 연료와 관련한 잠재적 비용이 높은 현재, 이미 증명된 기술의 사용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신기술의 투자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어나갈 새로운 지원책도 필요하다. 기술만으로는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기술 낙관론자들은 이러한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가장 시끄러운 지지자가 돼야 한다. 통상 신기술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에 있는 쪽은 조용히 사적으로 정부에 로비하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는 쪽의 목소리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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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미국이 급등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해 8월 16일 발효한 법. 법안에는 에너지 보안 및 기후 위기 대응 투자, 최저 법인세율 15% 적용, 의료보험(ACA) 보조금 연장 등이 포함됐다. 법안의 전체 예산 4330억달러(약 532조5900억원) 중 86%에 달하는 3690억달러(약 453조8700억원)가 에너지 보안과 기후 대응에 할당됐다.
② 1990년대 초 실리콘밸리의 사이버펑크(강력한 암호 기술의 광범위한 사용을 옹호하는 모든 개인을 가리키는 말) 문화와 미국 자유주의에 뿌리를 둔 정치·철학. 정부 정책과 규제·검열 등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미국 기술 저널리스트인 폴리나 보숙(Paulina Borsook)이 ‘기술 자유주의자(technolibertarian)’라는 용어를 쓰면서 대중화됐다.
③ 풍력, 태양열, 원자력 등 지속 가능 발전원에서 얻은 수소와 이산화탄소·일산화탄소를 사용해 제조되는 탄소 기반 합성 연료. 연소될 때 제조 시 사용된 탄소량이 거의 그대로 배출되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대체 에너지로 사용된다. E-연료(electrofuels)라고 불리기도 한다.